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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종망 의혹-기자수첩]'묻지마 특별감면'…청와대 기준만 맞으면 OK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대통령 사면권은 크게 개인의 형사처벌 및 법규위반 관련된 사면·감면·복권, 업체에 대한 행정재제를 감면해주는 특별감면으로 나뉜다.  


개인에 대한 형사처벌의 경우 사면법 제4조의2에 따라 법무부에서 임시 소집되는 사면심사위원회에서 적정성을 검토해 대통령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으나,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것이 법학계의 중론이다. 

사면위원은 법무부 장관과 차관, 검찰부장, 그리고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과 다섯 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되는 데, 수만여건의 안건 중 3시간의 회의시간 동안 물리적으로 이들이 심사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물의대상이 되는 소수의 재벌총수 등이 한계다.

실제로 현재 공개돼 있는 2008, 2009년 사면심사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2008년의 경우 사면방침이, 2009년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면건이 논의 대상이 됐다. 

업체 행정제재에 대한 특별감면의 경우엔 아예 중간 검토 단계가 없다.

청와대에서 기준을 정해 각 행정부처로 감면대상 후보를 제출하라는 기준을 내려주면, 행정부처는 해당 기준에만 맞으면, 후보를 선정해 청와대로 상신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선정된 후보는 곧바로 감면대상이 된다. 

정부에선 중대위반행위 등을 거론하며 ‘관용’이란 사면의 취지를 넘어 ‘상습범죄’에 대해선 사면을 해주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4대강 담합이나 LG CNS 등과 같이 처벌을 받아도 최종 종착지가 대통령 특별감면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면권이란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우리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논란이 되는 사안이다. 지난 2001년 빌 클린턴의 퇴임직전 총알 측근사면은 도널드 트럼프-힐러리 클린턴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해외는 국내처럼 대통령의 의중에게만 판단을 맡기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미국연방규칙에 따라 형을 선고받은 지 최소 5년 이상인 자가 대상이 되며, 집행유예와 가석방은 사면대상에서 제외된다. 사면신청자는 연방수사국에 의해 조사를 받아 피해자와 담당사건의 판검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독일 역시 사면신청자는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하며, 사건을 담당한 수사, 사법기관 담당자의 설명을 들은 후 피해자 의견 및 의무 부과 등을 검토해 사면이 이뤄진다.

프랑스는 법무장관의 심의가 있어야 사면대상에 올라갈 수 있으며, 테러범죄, 전범옹호죄 등 극악범죄에 대해선 사면을 배제한다.

이들 국가의 경우 담합에 대해선 감면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인데, 미국과 EU의 경우 매출의 곱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매기고, 관련 임직원들에겐 징역형을 내리는가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천문학전 민사배상금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조차도 기업들의 반발로 실행하고 있지 못하다. IT기업인 LG CNS가 건설업 면허로 특별감면을 받아도 버젓이 배를 내밀 수 있는 것은 거듭 담합으로 적발돼도 ‘특사’로 풀려나는 건설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선 정부기관들이 담합을 절단하기 보다는 담합에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최근 특검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벌총수들의 사면을 살펴본다고 한다. 설령 썩은 가지를 쳐낸다 해도 썩은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병들어 죽게 되어 있다. 

지금, 법치주의의 뿌리가 썩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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