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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답 없는 고액체납자, 강자 앞에 약한 법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사람이 살다보면 순식간에 무일푼이 되기도 한다. 인생파탄의 위기에서도 체납세금은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정부는 체납에 대해선 납세자 개인의 재산에 대해서만 징수권을 행사하고, 행정처분 이상의 처벌은 내리지 않는다. 세금 안 낸 것이 기본권을 박탈할 사유는 아니기에.

하지만 호화생활을 누리는 고액체납자를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부터 떠오른다. 

배우자나 자녀들의 명의의 재산으로 즐기는 호화생활. 해외 돈세탁을 거쳐 축적해 둔 비자금. 가족명의로 누리는 건강보험혜택. 

'날 털어봤자 거둘 세금은 없을 걸' 이라고 말하는 듯 장부상 재산가액은 ‘0원’.  

가끔 언론지상에서 서울시 38기동대나 체납자재산추적요원들이 피 나는 노력 끝에 호화체납자의 은닉재산을 찾아냈다는 보도가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러나 이렇게 발견되는 재산 역시 빙산의 일각이다.   

이들의 진짜 알짜배기 재산은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미 검정머리 한국인이 되어 있거나 가족 명의의 재산이 되어 있다. 미처 다 명의를 돌려놓지 못해 장롱 속에 숨겨뒀던 것이 들통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고액체납자의 악질성은 서민들의 생계에도 지장을 준다. 지역 지방고용노동청에 가보면, 사업자가 수 개월간 밀린 임금을 주지 않고, 경영상 위기라며 문 닫은 사례가 넘쳐난다. 

나중에 울분에 찬 노동자들이 여차여차 거주지를 찾아보니 아내 명의의 고급 맨션에서 아내 명의의 검정세단 외제차를 타고 골프 타러 가더라는 식의 카더라 소문이 팽배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정자는 항상 체납고민에 시달렸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한 인물은 중국 청나라 제5대 황제 옹정제가 유일하다. 

체납엔 무조건 재산몰수. 횡령엔 관직박탈과 3대까지 재산압류. 

옹정제가 이렇게 한 것은 부정하게 거둔 재산은 법을 피해 가족명의로 흩어진다는 생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는 4월부터 고액체납자가 해외에서 산 명품에 대해 국세청이 압류해 국고환수를 한다고 한다. 입법 취지만 보면 공감 가지 않을 것이 없다. 국회 본회의에서도 만장일치였다. 하지만 악질 고액체납자들이 그렇게 어수룩할까.

‘내가 재산이 없어서 세금도 못 내는 데 무슨 돈으로 사긴 사? 내꺼 아니야!’

이스라엘 속담에 훔칠 기회가 없는 도둑은 자신을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던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고의로 재산을 은닉했다면, 이는 세금의 착복이고, 나랏돈에 대한 횡령이다. 

300명의 국회의원과 2만여명의 국세청 직원, 4000여명의 관세청 직원이 동원된 제도가 왜 339년 전에 태어난 중국 전제군주의 법안보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출처불분명의 거액의 재산을 가진 가족을 둔 고액체납자에 대해 재산소명의 의무를 개인에게 지우고, 소명이 안 되는 재산은 가족명의라도 징수할 수 있는 특별법은 불가능한 것일까.

선의로 열심히 살다가 체납자가 된 사람의 미래를 막아선 안 되지만, 이들을 방패로 법망을 피해 호화생활을 누리는 사람들.

‘힘 없는 사람만이 세금을 낸다.’

미국의 부동산 재벌 리오나 헬름슬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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