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목록

취미, 단절된 인생은 없다(Ⅱ)

한 번 뿐인 인생이다

 

[취미 선택 기준] 취미를 선택하는데 어떤 기준이 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노후의 절반을 책임져줄 것이므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다.
 

[취미는 단순히 시간 보내기가 아니다] 은퇴를 앞둔 사람이 가장 먼저 제안받는 것이 ‘취미를 가져라’다.

생각해 보자. 취미는 단순히 시간 보내기가 아니다. 취미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은퇴 후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취미가 취미로서 가치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나의 내적 가치를 추구하고, 혹시라도 내가 모르게 나에게 잠재해 있는 가벼운 창조성을 계발하는 것이 진정한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한 취미활동이 항상 입문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이는 그냥 시간 보내기에 불과한 것이지 취미활동이라 할 수 없다.
음악 감상을 취미로 선택했으면 지휘자에 따라 어떻게 곡을 해석하는지, 오케스트라에 따라 어떻게 음색이 달라지는지 아는 수준이 되어야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 감상을 취미로 가졌다면 손주들에게 그림 보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는 되어야 한다. 사진촬영을 취미로 했다면 하다못해 동네 전시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취미다.
 

[취미는 2개 이상이면 좋다]  2개 이상의 취미는 서로 상반된 것이면 더 좋다. 말하자면 혼자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과 내가 싫어하는 것을 조합으로 할 수 있다면 좋다.

사진을 찍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대체로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다. 혼자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있으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취미, 이를테면 악기를 다루는 것이 좋다. 악기는 혼자도 할 수 있지만 동호회원끼리 협주도 가능하므로 좋은 취미다. 노후 우울증을 예방하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또 하나는 내가 진정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으면 이제는 평소 하기 싫은 것을 취미생활로 정해보자.
몸 움직이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높은 산을 등반하거나 자전거를 오래 타본 적이 없다. 동네 산을 오르거나 자전거로 동네 몇 바퀴 도는 것이 고작이다. 이 사람은 결심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을 해보자. 그래서 시작한 것이 탭댄스다. 그 얼마나 경망스럽고 땀 흘리는 짓인가. 아니 그 얼마나 신나고 새로운 세상인가. 일주일에 두 차례 땀에 흠뻑 젖어 무아지경에 이른 그 황홀함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싫어하는 취미를 가질 때는 절대 혼자 하는 것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을 골라야 오래 간다. 같이 하자고 꾸준히 관리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더할 나위없다. 싫어하는 데다 혼자 하는 것을 선택하면 선택한 날 바로 포기할 수 있다. 싫어하는 것을 선택했을 때는 바로 교육기관에 등록신청하자.
 

많은 돈이 들지 않아야 한다.
취미생활에 전혀 돈이 안 들 수는 없다. 여러 연령층이 모인 취미생활은 대체로 나이든 사람이 그 경비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지출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그 회원들은 다음에도 의례 그 사람이 경비를 지출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른바 호의가 권리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이유로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으면 비슷한 연령층이 모인 클럽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물론 젊은 층이 있는 클럽에 가입하면 나 자신도 젊은 분위기를 느껴 좋겠지만 이런 식으로 소요되는 경비를 무시할 수 없다. 잘못하면 야심차게 시작했던 취미생활은 오래 가지 못할 수 있다.

KT 2대 사장을 역임했던 이해욱 씨와 산부인과 의사였던 그의 부인 김성심 씨는 은퇴 후 세계 192개국을 다니면서 그 소감을 ‘세계는 한권의 책’에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가장 바람직한 은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은퇴 후 부부동반으로 배낭을 메고 세계여행을 다닐 수 있는 조건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건강, 경제력, 열정 중 하나라도 빠지면 불가능하다.
 

[이제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세상을 보자] 우리 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나이에 맞는 옷과 색상, 나이에 맞는 행동, 여자 같으면 나이에 맞는 화장을 요구한다. 나이에 맞게 행동해도 노인을 존경하는 것은 아니다.

언필칭, 한 번 뿐인 인생이다. 남의 눈으로 살다 죽으면 후회하기 마련이다.
나이에 맞는 자가용은 없다. 돈에 맞는 자가용만 있을 뿐이다. 나이에 맞는 화장이란 없다. 나에게 맞으면 진하게도 옅게도 한다. 나이에 맞는 취미는 없다. 내 취향에 맞는 취미가 있을 뿐이다.

‘내 나이에 이런 짓을….’이 아니고 바로 그 짓을 해야 한다. 바로 그 짓을 취미로 삼아보자. 은퇴하고 나서까지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나의 일상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사실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내 자신을 바라본다면 나중에 기필코 후회하게 된다. 그때라도 그 활동, 그 행동, 그 짓을 할 걸….


[시간은 쪼개는 것] 직업 없이 노는 사람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쁜 직 장인 중 누가 매일 헬스클럽에 나갈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은 사람은 시간이 없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시간을 낼 수 있다. 24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운동할 시간도, 취미생활을 할 시간도 없다.

시간 활용을 잘 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러니 취미생활에, 봉사활동에 시간을 낼 수 없다는 핑계는 대지 말자.


[취미생활이 중요한 이유는 취미는 나를 치유하기 때문이다] 청주시 성화동 피카소 오진애 할머니(당시 82세)는 평생 한 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림은 물감이 아니라 오로지 12색 사인펜으로만 그린다. 그것도 화선지가 아니라 달력 뒷장에 그린다. 그림 때문에 양쪽 다 백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한 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밤 11시가 넘어서도 그림을 완성해야 작업이 끝난다. 행복감 때문이다.

남편이 사업하는 관계로 할머니는 홀로 5남매를 키웠다. 그렇게 키운 큰 딸이 남편과 사별하게 되었다. “떠나간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불쌍해”라는 것은 할머니가 큰 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출근하는 딸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은 할머니의 첫 번째 그림이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할머니의 그림은 22년 세월이다.

그토록 그림을 그린 이유는 단 하나, 남편을 잃은 큰 딸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기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있으면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림을 붙잡고 그리기 시작하면 거기에 신경을 쓰니까 마음이 안정된다”는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이제 수 천 장이 되었고, 그 속엔 할머니의 세월이 새겨져 있다. 5남매는 할머니에게 선물을 했다. ‘성화동 피카소 오진애 여사 작품전시회’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