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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여승(女僧)

시인 백석, 낭송 이혜선, 영상 개울

 

여승(女僧)_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인] 백 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필명은 백석(白石)
1912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1996년 사망)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 등을 발표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문학활동 시작
시집 『사슴』 등


[詩 감상] 양 현 근

  일제 강점기 여승이 된 슬픈 여인(민중)의 아픔이 배어있는 시다. 평안도 어느 깊은 산 작은 금광(금점판)에서 옥수수를 팔던 여인이 여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 온다. 돈 벌러 나가서 십여 년 넘게 돌아오지 않는 남편, 어린 딸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고, 옥수수라도 팔아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배고픈 딸 아이를 때리면서 가을바람처럼 서글프게 우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니 괜히 눈물이 난다. 식민지시대 조선의 민중들 삶이 그러했을 터이다. 그렇게 배고프다고 울던 딸아이는 홀로 차가운 돌무덤에 묻혀 있고, 지금도 돌무덤 주변에는 엄마가 보고 싶은 딸아이가 도라지꽃으로 하얗게 흐드러져 있다. 

 

[낭송가] 이 혜 선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현재 미국 버지니아에 거주
뷰티 서플라이 스토어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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