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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엇노리

시인 최정신, 낭송 김동현

 

엇노리_최정신

 

무릎은 복숭아 속살이어야 한다

한사코 피마자기름 들고

내 무릎에 집착하던 당신,

 

짐짓 당신 무릎은

무명 치마 속 깊게 숨긴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그 감춤을 자꾸만 들춰

두들두들 손마디로 음 소거 자장가를 듣곤 했다

 

신여성 날개 꺾은 시살이는

삼실 비벼 길쌈 짓느라 피멍 가실 날 없었다는 무릎을 들려주던 밤,

싸락눈 쌓이던 소리 귓등에 아삼했다

 

삼실처럼 질긴 명이 되라고

윤달에 지은 베옷 한 벌

것도 말짱 헛소리,

육순 막 넘긴 해 말끔히 차려입고 목실로 이주했다

폐업한 생이 십수 년,

월수 찍듯 보름밤이면

매끈하고 둥근 무릎이 창틀에 걸터앉아 궁금을 염탐한다

고해(苦海)에 두고 간 나룻배가 못 미더워 노심초사 내려 본다

 

어쩐 일로 빛이 처연할까

슬픔의 문양은 둥글었을까

 

사사건건 엇박자 장단이나 맞추던 나는

이승 버린 후에도 맘 못 놓는 애물단지,

무사한 무릎 접어

안심 한 잔 진설할 기일이 달 포 남짓 남았다

 

*고려 가요의 하나로, 아버지의 사랑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더 크고 지극함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읊은 노래

 

[시인] 최 정 신

경기도 파주 출생

2004년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구상나무에게 듣다』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느티나무의 엽서를 받다』 등

 

[詩 감상] 양 현 근

어머니의 사랑만큼 조건없는 사랑이 있을까.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주고도 늘 모자라기만 한 사랑이 어머니의 사랑이다.

칭얼대는 나이 어린 자식 돌보랴

거친 농사일하랴 지친 몸이지만

저녁에는 바느질과 길쌈으로 가사를 돌보아야 했던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숙명이기도 했다.

길쌈을 하느라 어머니 무릎에는 힘든 세월만큼이나

푸른 멍자국이 소리없이 내려앉곤 했다.

그 어머니도 이제는 안 계시고,

회한과 그리움을 가득 채워 진설하는 마음을 누가 알랴.

 

[낭송가] 김 동 현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기술국장

무진어패럴 재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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