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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그리움만 쌓이네

시인 김진수, 낭송 향일화, 영상 세인트1

 

그리움만 쌓이네_김진수

 

해가 팥죽 속에 빠진
동짓날, 난전에서 한 사발, 삼천원에 팔리는
고양이 선하품 같은 볕은
가로등 기침소리에 스러진다

여인숙, 두평짜리 바람벽은

갖가지 사연으로 점철된 한 폭의 유화다

간혹, 어설픈 춘화도 감상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낭낭하던 호객소리 빼내 횃대에 걸고

하루의 수확을 헤아릴 때

바람구멍 열린 아랫목이 검은 엉덩이 들썩인다

깜박거리는 기억을 붙잡은 형광등

거미가 쳐놓은 안테나에

해독이 어렵지 않은 외계의 음파가 걸려든다

 

불뚝거리는 아랫도리 잡고 견디기에는

얇은 벽은 밤새 불량하다

애국가가 끝나고 숨고르는

소리에 깬 이른 잠이 달콤하다

 

밤새 헌책방 뒤지듯

덧칠된 사연 탐문하다 든

새벽녘 토막잠에 두고 온 아이가 찾아온다

두 살바기는 넘어질 듯 뒤뚱거린다

 

삐걱거리는 방문과

붉은 현수막 사이에 낀 허름한 골목

깜박거리는 불빛을 놓치지 않으려

강심제로 버틴 30촉짜리 백열등

자리에 누울 때 쯤 하나 둘 길 떠난다

몸에 밴 이별도 아리다

 

[시인] 김 진 수

강원도 주문진 출생

2016년 《시와세계》 등단

시집으로 『설핏』 등

 

[시감상] 양 현 근

여인숙, 이름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애환이 많이 서린 장소이다.

한 시절 돈없는 청춘들이 부끄럽게 스며들어

푼돈 몇 푼으로 외로움을 달래던 곳이기도 하고,

여관에 갈 형편마저 못되던 서민들이 하룻밤 고단한 육신을 쉬어가던

많은 이들이 애환이 서린 곳이 곧 여인숙이다.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져 대부분 없어지고 일부 명맥만

유지되고 있지만 여인숙이야말로 70년대와 90년대를 이어주는

시대의 가교와 같은 곳이기도 하다.

방음처리가 되지 않은 옆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와 문틈으로

스며나오던 불빛은 우리들 삶 만큼이나 다채로웠을 터이다.

얇은 벽을 타고 스며들던 소리에 잠 못 이루던 붉은 빛 청춘의

한 페이지가 눈 앞에 선하다.

 

[낭송가] 향 일 화

시마을 낭송협회 고문

《시와표현》 시부문 등단

빛고을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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