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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

(조세금융신문=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은 1955년 N. 파킨슨(Parkinson)이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에 발표한 이론으로 일반적으로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 집착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몇 조원대의 큰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은 잘 모르고 복잡하니까 잘 따져보지도 않고, 몇 억원 짜리 조그만 지역사업이나 작은 공사 등에 대해서는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을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기도 하다. 나눠 가질 떡이나 파이가 클 경우 적당히 타협도 하고, 나눠먹기가 가능하지만, 작을 경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정부의 정책이나 대규모 예산 등에 대해서는 감시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반면, 지역내 조그만 사업에 대해서는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다.

 

모두 나서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자기 또는 해당 지역의 이해관계가 최대화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되도록 목소리를 높인다. 말하자면, ‘회의 안건을 다루는 데 들이는 시간은 그 안건의 중요성에 반비례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회의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다만, 잘 인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조직 단위에서도 큰 것보다는 오히려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성과를 못내는 프로젝트나 사업계획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정작 중요한 것에 투자해야 할 시간과 재능이 단위부서 또는 개인 단위 이해관계 등으로 엉뚱한 곳에 낭비되는 것이다. 복잡하고 부담스런 과제는 잘 모르니까 건들지 않고,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본질과 관계없는 사소한 과제를 붙잡고, 시간과 인적자원을 투입하는 사례가 어디 한 둘이겠는가.

 

그러는 사이 가용자원은 고갈되고, 골든타임을 놓치기 마련이다. 개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고 전체적인 개요와 요점을 파악하는 대신 손쉽게 눈에 보이는 책가방은 무슨 색으로 장만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사소한 것에 매달려 있는 사이 중요한 과제는 자꾸 뒤로 미뤄지게 되고,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회의나 조직에서의 리더는 사소한 것에 집착하기 마련인 인간의 성향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논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사전에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 사소한 것보다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가닥을 잘 잡아주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라 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와 고용사정에 대한 우려가 많다. 원인과 진단도 많고 백가쟁명식 해법이 난무한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조망이나 해결방안 제시보다는 단편적인 시각에서의 해결책이 주를 이룬다. 이제 정책입안자나 우리 국민도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의 법칙’에서

벗어나 보다 큰 관점에서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치우쳐 눈앞의 쉬운 과제에 집중하기 보다는 우리 경제의 백년대계를 보다 큰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당장 취업이 어렵고, 살림살이가 팍팍하더라도 먼 미래를 위해 희생할 것은 희생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속도는 감정의 지배를 받고 감정은 속도에 부응하는 현상이 생긴다. 그럴수록 건전한 이성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게 마련이다.

 

먼 미래를 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고, 그리고 작은 것보다는 큰 그림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기다.

 

[프로필] 양현근 한국증권금융 부사장, 시인

•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은행감독국장·기획조정국장

• 전) 금융감독원 외환업무실장

• 조선대 경영학과, 연세대 석사, 세종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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