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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가 있는 아침]이사

시인 나호열, 낭송 최경애, 영상 송성인

 

이사_나호열


강남 이 편한 세상에 그가 왔다
검은 제복 젊은 경비원이
수상한 출입자를 감시하는 정문을 지나
대리석 깔린 안마당에 좌정했다

 

몸이 반쪽으로 쪼개져도
죽지 않고 용케
당진 어느 마을 송두리째 뭉그러져 사라져도
용케 살아남았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쓰다듬어 주고
비바람 막아 주며 죽은 듯
삼백 년 벼락 맞고도 살아 있더니
이 편한 세상에
한 그루 정원수로 팔러 왔다


푸르기는 하나 완강한 철책에 둘러싸여
손길 닿지 않는 그만큼의 거리
저 불편한 세상과
이 편한 세상 사이에서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침묵의 우두커니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은 이곳
집과 무덤 사이의 어디쯤이다


[시인] 나 호 열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저서로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 『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 『칼과 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낙타에 관한 질문』 등 다수


[시감상] 양 현 근
호화로운 불빛으로 번쩍거리는 아파트 단지 안
오늘도 우두커니 손발이 묶인 채 우두커니 서있는
삼백년도 더 된 낙락장송을 본다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무늬뿐인 나무로 연명하는 일이나
서른 몇 평 콘크리트 담벼락 안에서 미세먼지에 갇힌
우리들의 삶이나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참된 생의 가치나 삶의 의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낭송가] 최 경 애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계간 《힐링문화》 편집국장
cwn-tv "시와 함께하는 문학이야기"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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