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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탈세범죄자에 대한 권익보호, 제2의 아레나는 웃는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초동수사 격에 해당하는 국세청 조세범칙조사에는 수사권이 없다. 게다가 피의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조세범칙조사는 세무조사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세무조사는 세금을 잘 냈는지 계산해보는 행정점검이다. 살다가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수가 있으면 고치면 되는 게 행정점검이다. 계도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납세자 권익도 보호해야 하는 이유다.

 

조세범칙조사도 겉으로는 범죄혐의를 조사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세무조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권한은 행정점검인 세무조사와 같다.

 

유일하게 허용된 강제권한이 압수수색권인데, 말이 좋아 압수수색이지 잠긴 사무실 문조차 열 수 없다. 수사행위가 아니라 행정점검행위이기 때문에 경찰처럼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갈 수 없다.

 

경찰을 예로 들어보자. 영장을 발부받아 받아서 도·감청, 압수, 전기톱을 동원할 수 있다. 어깨를 동원한다면? 현행범으로 바로 체포다.

 

반면, 국세청은 팔이 뒤로 묶인 채 상대방의 암수를 고스란히 견뎌내야 하는 꼴이다. 유흥업소들이 소위 '어깨'들을 동원해서 가로막아도 세무조사관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유흥업소의 이러한 행위에 대한 제재도 고작해야 과태료뿐이고, 탈세재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 '세무조사관 들어오면 사무실 문 잠그고 전화기 끄라'고 조언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유흥업소들은 기업과 달리 간판은 같은데 폐업과 신설을 거듭하면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지분관계도 복잡하게 만들고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세범칙조사 결과를 경찰에 넘겨 수사하게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 증거는 국세청에 있다. 탈세범죄를 밝혀내려면 그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소득과 거래내역을 알아야 하고, 그 자료는 국세청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세청이 이 자료를 경찰에 넘겨줄 때도 무제한으로 넘겨줄 수 없다는 데 있다. 국세청은 탈세 피의자에 대해서도 납세자 권익보호 의무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경찰이 증거수집을 위해 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진풍경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같은 불합리함 때문에 미국과 독일은 탈세범죄에 한해 국세청에 수사권을 부여한다. 일본도 특사경제도를 도입해 수사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한국의 탈세범죄는 범죄 피의자 권익보호 한도 내에서 조사 방법, 기간, 범위가 결정된다. 여기서 벗어나면? 재판에서 진다.

 

이러다 보니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경수사권 조정보다 더 어려운 것이 국세청 수사권 부여라는 말도 나온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동안 탈세범죄 엄단은 점점 멀어져 간다. 일반범죄는 수사선상에 오른 피의자 열 명 중 네 명을 재판에 넘기는데, 탈세범죄는 그 반 정도 수준에그친다. 탈세범죄 구속 비율 5.7%, 1심 실형 선고비율 14%. 일반범죄보다 모두 낮다.

 

피의자 권익 보호 개념에 묶인 초동수사, 권한을 다투는 국가기관, 무력화되는 탈세 처벌. 과연 누가 웃고 있을지 살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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