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대법원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만장일치를 토대로 나온 무죄 판결을 항소심에서 뒤집으려면 한층 더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새로운 판단을 내놨다.
기록 검토만으로는 만장일치 무죄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판례였는데, 한발 더 나아가 추가 증거조사 자체도 예외적일 때만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2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무죄인 1심 판단을 뒤집은 원심은 국민참여재판 항소심의 심리·증거조사에 관한 법리, 증거재판주의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 환송 이유를 밝혔다.
A씨는 2011년 12월∼2013년 7월 대부업자 B씨에게 거액을 벌 수 있는 물류사업이 있다며 차량구입자금을 빌려주면 원금과 수익금 일부를 지급하겠다고 거짓말해 총 31억5천900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은 배심원 7명 전원의 의견 일치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빌린 돈을 차량구입자금 용도로 사용하겠다고 말한 점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증거가 없어 사기죄의 구성 요소인 '기망 행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그러나 2심은 이를 깨고 징역형을 선고했다. 2심은 검찰의 신청을 받아들여 B씨와 B씨의 배우자 등 4명을 추가 증인신문했고, 혐의에 부합하는 진술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유죄로 뒤집었다.
상고심의 쟁점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선고된 1심에 대해 2심에서 어디까지 추가 증거조사를 할 수 있느냐였다.
대법원은 "2심의 추가 증거조사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2심에서 추가로 조사된 증인의 진술은 1심이 이미 고려했던 사정 중 일부에 불과하거나 부수적·지엽적 사정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시했다.
일단 항소심에서 새로 채택된 증인 2명은 검찰이 1심에서 신청하지 못한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또다른 1명은 1심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해 검사가 철회했다가 다시 신청한 증인이고, 피해자 본인은 이미 1심에서 증인 신문을 마쳤기 때문에 추가 신문 필요성이 명백하게 인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1심 법원에서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으로 내린 무죄 평결이 재판부의 심증에 부합해 그대로 채택됐다면, 항소심에서의 추가적이거나 새로운 증거조사는 형사소송법·규칙 등에서 정한 증거조사의 필요성이 분명하게 인정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해 실시해야 한다"고 설시했다.
또 "이런 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1심 법원의 판단을 쉽게 뒤집는다면 배심원의 만장일치 의견의 무게를 존중하지 않은 채 법리에 반하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만장일치 무죄 평결은 항소심에서 기록만 검토해 유죄로 바꿀 수 없다는 기존 법리에서 나아가 추가로 증거조사해 결론을 바꾸는 것도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진일보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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