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정욱 기자) 수도권 6만가구 공급대책이 발표되기 전, 정부의 메시지는 유난히 강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수요자 중심의 세제 강화 가능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공급대책 발표에 앞서 매수 심리를 선제적으로 제어하려는 신호가 먼저 시장에 전달됐다. 공급 대책의 내용보다 정책 방향이 먼저 시장에 각인된 발표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주간통계표를 보면 서울 아파트 가격은 1월 들어 상승 흐름을 이어갔지만, 정책 발표 전후 시장이 과열 국면으로 급격히 치닫는 모습은 뚜렷하지 않았다. 공급 발표 이전에 먼저 던져진 경고가 시장의 움직임을 일정 부분 눌러둔 셈이다.
◇ 왜 경고가 먼저였나…공급대책의 ‘시간차’ 전략
이 경고가 먼저 나온 이유는 공급대책의 ‘시간표’에 있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제시한 착공 시점은 2027~2030년, 실제 입주는 2030년 이후다. 단기적으로 시장에 풀릴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공급 발표가 먼저 나올 경우, 오히려 대기 수요가 자극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업계는 정부가 이 같은 시간차를 인식하고 심리 관리부터 선제적으로 나섰다고 본다. 공급 확대 메시지가 매수 심리를 다시 자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책 발표에 앞서 경고성 메시지를 먼저 던졌다는 해석이다. 정책 효과보다 메시지 효과를 먼저 설계한 셈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를 “공급 발표로 인한 추격 매수 심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정책 순서의 설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공급 대책이 나오면 시장은 다시 움직이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반응을 미리 눌러둔 뒤 정책을 발표했다”며 “1월 중순 이후 대통령 발언 수위가 높아진 흐름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선택이 단기 시장 안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후 지표에서 확인될 전망이다.
◇ 핵심 입지 집중, 의지는 분명하지만 효과는 미지수
이번 공급대책의 또 다른 특징은 공급 입지다. 과거 외곽 신도시 중심의 발표와 달리, 정부는 용산·과천·태릉CC 등 서울과 수도권 핵심 입지에 물량을 집중했다.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두터운 지역에 직접 공급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은 분명해졌다.
전체 6만가구 가운데 약 40%가 용산국제업무지구와 과천 경마장 부지에 집중됐다. 용산국제업무지구·캠프킴 일원 1만2600가구, 과천 경마장·방첩사 부지 9800가구로, 이들 지역은 입지 자체가 상징성을 갖는 곳들이다. 정부가 가용할 수 있는 최상급 입지를 한꺼번에 묶어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이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그는 “이번 대책은 공급 물량보다 입지 선택이 더 강한 메시지”라며 “청년·신혼부부에게 ‘기다리면 좋은 입지에서 내 집 마련이 가능하다’는 심리적 안정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효과는 분양가, 주택형, 분양·임대 비율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입지가 좋을수록 분양가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심 핵심지 공급은 토지비·기반시설 비용이 높아 공공 분양이라 하더라도 가격 통제가 쉽지 않다. 자칫 ‘좋은 땅에 지은 집이지만 실수요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핵심 입지 집중 전략이 실제 집값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공급 방식과 속도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다음 쟁점은 발표된 물량이 계획대로 착공과 공급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 발표 물량과 실제 공급 사이의 간극
이번 대책을 둘러싼 가장 큰 의문은 발표된 물량이 실제로 얼마나 공급될 수 있느냐다. 정부는 수도권 6만가구라는 숫자를 제시했지만, 정책 효과는 착공과 입주로 이어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발표 시점과 실행 시점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정책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핵심 물량인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서울시와의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책에 포함됐다. 서울시는 기반시설 수용 한계를 이유로 공급 물량 상한선을 제시해온 만큼, 향후 조정 과정에서 축소 또는 지연 가능성이 남아 있다. 정책 발표와 행정 현실 사이의 간극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지점이다.
태릉CC 역시 과거 주민 반발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입지·물량·절차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갈등이 반복될 경우, 일정 지연 가능성은 피하기 어렵다. 발표 숫자와 실제 착공 물량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휴부지를 활용한 도심 공급은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반복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공급은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민간 정비사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구조적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공 주도 방식이 갖는 속도의 한계도 부담이다. 인허가, 주민 협의, 교통·환경 영향평가 등 절차가 누적될수록 착공 시점은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발표된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물량이 실제 착공 단계까지 도달하느냐다. 이 지점에서 이번 대책의 실행 속도는 정책 신뢰도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 2030년 이후 입주, 실수요자는 기다릴 수 있나
정부가 제시한 시간표는 실수요자에게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착공은 2027~2030년으로 제시됐고, 입주는 2030년 이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급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필요한 구조다. 현재 집값 부담과 전월세 불안을 동시에 겪는 수요자에게 이 시간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실수요자가 매매를 미루고 공급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분양 시기, 분양가, 주택형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입지와 물량 중심 발표에 그쳤고, 가격·유형·공급 방식에 대한 설명은 제한적이었다. ‘기다림의 보상’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실수요자는 공급 숫자보다 실제로 감당 가능한 가격과 당첨 가능성을 본다”며 “특히 청년층은 자금 조달 부담과 경쟁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막연한 기다림은 선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대 물량을 제외하면 실제 분양 물량은 3만가구에도 못 미친다. 서울의 연간 주택 필요량이 신규 가구 증가와 멸실 대체 수요를 합산할 경우 8만가구 안팎으로 거론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책의 서울 공급분은 구조적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다.
이런 정보들이 구체화되지 않는 한, 실수요자의 대기 수요 전환은 제한적일 수 있다.
◇ 물량보다 중요한 건 속도…이제 시험대에 오른 정부
이번 수도권 6만가구 공급대책이 시장에 던진 가장 큰 메시지는 ‘물량’보다 ‘의지’다. 정부는 용산·과천 등 상징성 높은 입지를 대책에 포함시키며 공급 확대 기조를 분명히 했지만, 실제 시장 안정 효과는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확실하게 실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착공과 입주까지의 시차, 실현 가능성, 민간 공급과의 연결 여부가 동시에 해결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이번 대책을 “신호는 줬지만, 해답은 아직 남아 있는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공급 숫자가 아니라 속도와 신뢰”라며 “정부가 공급을 진짜 카드로 쓰려면, 다음 대책에서는 언제, 어디서, 얼마에 공급할지가 더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정부가 공급대책 발표 전에 먼저 실수요자 중심 세제 강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시장 심리를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대책이 실질적 효과를 내려면, 경고 이후 이어지는 후속 조치가 얼마나 빠르게 나오느냐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이번 대책은 숫자로 시장을 설득하기보다는 메시지로 시간을 벌기 위한 정책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급 확대라는 방향성은 분명해졌지만, 그 방향이 실제 주택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이제 정부의 실행력에 달려 있다.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발표된 6만가구가 아니라, 후속 조치가 언제 실행 계획으로 구체화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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