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거주 직장인 김씨(34)는 최근 시중은행에서 받은 신용대출 4000만원 중 1400만원을 중도 상환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지난해 중순에 비해 말이 되면서 말 대출금리가 급격하게 늘면서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 경기도 거주 직장인 이씨(42)는 최근 시중은행을 돌다 지방은행까지 찾았다. 아파트를 매매했고 2월 잔금을 치를 예정인데 이때 필요한 자금을 적격대출로 감당하려는 계산에서다. 주변에서 적격대출이 금리도 낮고 고정금리라 부담이 적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시중은행에서 지난해보다 적격대출 한도가 더 줄어든데다가 총량 규제 문제까지 있어 승인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답을 듣게 됐다. 결국 그는 지방은행 지점을 찾아 적격대출을 신청했다.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대출규제 강화에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 적격대출만은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빠르게 마감되는 등 완판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중순부터 은행권에 발생한 대출총량 규제 강화와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차주들이 대출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나아가 올라버린 대출 금리를 내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지속되면서 일명 ‘영끌’과 ‘빚투’에 대한 열기가 차츰 식고 있는 분위기다.
은행들은 올해 연초 지난해 연말 일시적으로 축소했던 우대금리를 되돌리고, 대출 상품들 판매를 재개하며 대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새해 들어 대출 잔액은 오히려 줄었다.
이와 관련 시중은행 관계자 A씨는 “작년말까지만 해도 한도 등 대출 관련 문의가 잇따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으로 바빴다”면서도 “새해 들어서는 오히려 뜸하다. 대출 금리가 올랐고 최근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도 대출 수요 자체를 줄어들게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 6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전년 말 대비 4619억원 감소한 708조5909억원이었다. 항목별로는 주택담보대출이 2054억원, 신용대출이 845억원 각각 줄었다.
◇ 하루만에 다 팔려…오픈런 해야하나, 하소연도
이런 분위기에도 적격대출만큼은 예외다. 시장금리 상승기에 장기 고정금리 정책대출 상품인 적격대출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실수요자들의 한숨이 깊다.
일부 시중은행에서는 적격대출의 올해 한도가 이미 동났다. 지방은행의 경우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예비 차주들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다. 오픈런(매장이 오픈하면 달려가 바로 구매)도 고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일단 적격대출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주택금융공사가 은행이나 보험사를 통해 공급하는 최장 40년 장기 고정 금리 정책 대출 상품이다. 최대 대출 한도는 5억원으로 10년 이상 40년 이하의 기간 동안 만기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은행에서 1월 기준 연 3.4%의 고정금리로 이용할 수 있다.
유사 상품인 보금자리론의 최대 대출 한도인 3억6000만원(미성년 자녀가 3명인 가구의 경우 4억 원)과 비교해도 대출 한도가 꽤 높다.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초저금리 시기, 적격대출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기 고정 금리 상품 특성상 변동금리 주담대나 5년 혼합형 고정 금리 상품보다 금리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상으로 적격대출 상품이 변동형이나 혼합형 금리 상품보다 금리가 낮은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적격대출을 찾는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으나 공급은 부족한 상황이다.
분기별로 한도를 관리하는 농협은행은 지난 3일 적격대출 판매를 시작했고, 하루만인 지난 4일 오전 11시 올해 1분기 한도가 모두 소진됐다. 농협은행은 올해 3월 말까지 적격대출을 잠시 중단하다가 올해 2분기가 시작되는 4월부터 판매를 재개할 계획이다.
월별로 판매 한도를 관리하는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30일부터 1월 적격대출 신청을 받았지만 신청 당일인 하루만에 1월분 한도 330억원을 모두 소진했다. 주금공에서 적격대출 한도를 분기마다 받지만 이를 월 단위로 쪼개서 판매하는 우리은행은 오는 2월부터 적격대출을 재개할 계획이다.
하나은행에서도 지난 6일 적격대출 취급 개시 후 7일까지 이틀 동안 1분기 한도의 20%에 해당하는 대출 접수가 진행됐다.
이외 SC제일 등 일부 은행의 경우 취급 한도가 남아 있지만 업계에서는 대부분 조기 소진 될 것이란 관측이 높다.
◇ 지방은행으로 쏠린 눈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다음달부터 올해 1분기 적격대출 물량 접수를 시작하는 일부 지방은행에 예비 차주들의 눈길이 쏠린 상태다.
분기별로 판매 한도를 관리하는 부산은행의 경우 올해 1분기 한도로 820억원을 배정받았고 지난 10일 기준 약 200억원을 소진했다. 오는 3월까지 취급 가능 한도가 약 600억원 남아 있는 상태다.
경남은행의 경우 빠르면 내달 첫째 주부터 적격대출 취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1분기에 배정받은 한도는 약 200억원인데, 경남은행측은 1~2주만에 1분기 한도가 모두 소진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공급이 딸리는 이유는 최근 몇 년 사이 적격대출 공급물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주금공에 따르면 적격대출의 연간 공급량이 2018년 6조9000억원, 2019년 8조5000억원, 2020년 4조3000억원으로 축소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 B씨는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 강화 기조가 여전해 적격대출 공급량을 갑자기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금융권에 가계대출 총량관리 증가율 목표를 연 5~6%로 제시했으나, 올해 들어 4~5%로 더욱 조이기로 결정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