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동진 변호사) 1. 들어가는 말
신탁에서 신탁재산은 수탁자 명의로 되어 있지만, 신탁재산에서 생기는 수익은 수익자에게 귀속한다. 그리고 신탁의 위탁자가 수익자가 겸하는 경우에는 신탁재산의 운용이 사실상 위탁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는 부동산개발을 위한 담보신탁, 즉 이른바 PF(project financing)신탁이다. 위 경우 신탁재산의 법적 소유자(수탁자), 신탁재산의 사용·수익·처분에 관한 사실상의 결정자 및 경제적 이익의 향유자(위탁자 겸 수익자)가 분리된다.
위와 같은 PF신탁을 포함하여 신탁에서 신탁재산의 관리·처분과 관련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 행해지는 경우, 누구를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로 정해야 하는가? 2017년 12월 19일 개정되기 전의 부가가치세법까지는 신탁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에 관하여 명문의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납세의무자인지는 부가가치세법의 일반원리를 고려한 해석에 맡겨졌다.
신탁재산과 관련한 재화·용역의 공급은 소득세 과세대상인 소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편, 부가가치세는 거래에서 생기는 수익 또는 비용을 과세대상으로 하지 않고, 거래 그 자체를 과세대상으로 삼는 거래세이다.
따라서 신탁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반드시 소득세의 그것과 동일하게 정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누구로 정할 것인지는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수하여야 하는 자가 누구인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하에서는 신탁과 관련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누구로 볼 것인지에 관하여, 먼저 2020년 12월 22일 개정되기 전의 구 부가가치세법(이하 ‘종전 부가가치세법’) 하에서의 처리를 살펴보고, 이어서 위 개정 이후 현행 부가가치세법상의 입장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2. 종전 부가가치세법
가. 2017. 12. 19. 개정 전의 부가가치세법
당초 대법원 2003. 4. 25. 선고 99다59290 판결은,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에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이 최종적으로 수익자에게 귀속하여 수탁자의 신탁업무 처리는 수익자의 계산에 의한 것이므로, 구 부가가치세법 제6조 제5항의 위탁매매와 같이,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수익자라고 판시하였다. 이는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신탁재산에서 생기는 소득에 대한 소득세 납세의무자와 동일하게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자익신탁의 수익자인 위탁자가 체납한 부가가치세를 수탁자 명의의 신탁재산으로부터 징수하지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수탁자 명의의 신탁재산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위탁자의 채권자는 강제집행을 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신탁 전의 원인으로 발생한 권리’ 또는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에 기한 경우에만 강제집행을 할 수 있다(신탁재산의 독립성). 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0두4612 판결은, 분양형 토지개발신탁의 위탁자 겸 수익자가 그 상가건물의 분양과 관련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자, 국가가 신탁재산인 수탁자의 예금채권을 압류한 사안에서, 위 부가가치세 채권은 ‘신탁사무의 처리상 발생한 권리’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위 압류처분은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에 따른 부가가치세의 징수에 큰 공백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 대법원 2017. 5. 18. 선고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여, 신탁재산의 관리·처분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수탁자라고 판시하였다. 그 주된 근거는, 부가가치세는 실질적인 소득이 아닌 거래의 외형에 대하여 부과되는 거래세이므로, 그 납세의무자는 거래에서 발생한 이익이나 비용의 귀속이 아니라 거래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나. 2017. 12. 19. 개정된 부가가치세법
위 2012두22485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내용 자체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지만, 종전의 판례에 따른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의 결정기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어서, 그 동안 종전의 판례를 기초로 이루어져 온 신탁거래의 실무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위 대법원 판결에 따른 거래계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하여 국회는 2017년 12월 19일 부가가치세법을 개정하였다.
위 개정된 부가가치세법은, 신탁재산을 수탁자 명의로 매매한 경우 원칙적으로 위탁자를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로 하고, 예외적으로 담보신탁의 수탁자가 위탁자의 채무이행을 위하여 신탁재산을 처분한 경우에는 수탁자를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로 정하였다. 위 개정된 부가가치세법은 2021년 12월 31일까지만 일시적으로만 시행되었다.
3. 현행 부가가치세법
2020년 12월 22일 개정된 이후의 현행 부가가치세법은, 원칙적으로 재화·용역을 공급하는 계약의 명의자를 기준으로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를 정하되, 예외적으로 위탁자가 신탁재산을 실질적으로 지배·통제하는 일정한 경우 등에는 재화·용역를 공급하는 계약의 명의자에 관계없이 위탁자가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인 것으로 규정한다.
4. 맺는말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신탁과 관련한 부가가치세의 납세의무자는 다양한 관점을 토대로 다양한 방법으로 결정될 수 있고, 절대적인 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여곡절 끝에 입법된 현행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신탁에 관한 부가가치세 과세가 합리적으로 처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위 글은 필자의 책인 《신탁과 세법, 삼일인포마인(2021)》 중 일부를 발췌하여 정리·수정한 것입니다. 더 상세한 내용은 위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프로필] 송동진 변호사
•(현)법무법인 위즈 구성원변호사
•(전)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 등 역임
•제42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32기)
•서울시립대학교 세무전문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저서 《법인세법(삼일인포마인, 2020)》, 《신탁과 세법(삼일인포마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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