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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약육강식의 정글로 회귀하는 국제무역통상환경

WTO는 정녕 그 수명이 다했는가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한 국내 기업이 영국 생산 수출자와 건강기능식품을 독점계약해 수입을 해 왔다. 그런데 이 기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관할 구청, 부산지방경찰청 급기야는 검찰로부터 조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수입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국내 광고가 국내법에 맞지 않았기 때문. 그 식품은 뼈에 도움이 되는 상품으로 수입을 하였는데 유통할 때에는 여성의 가슴을 확대시켜 준다고 광고하여 이에 대한 위법으로 조사가 들어간 것이었다.

 

이에 따라 동 물품에 대한 수입을 할 수 없자 주문을 더할 수 없었고, 수출길이 막힌 영국 수출자는 한국의 다른 사업자와 독점계약을 다시 맺었다.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처음의 독점계약을 휴지처럼 버리고 새로운 계약을 한다는 게 말이다. 그렇지만 처음의 원 계약자는 영국 수출자를 대상으로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등의 청구 절차를 진행하지 못했다. 계약서에 계약위반에 따른 준거법 조항 등의 분쟁해결조항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계약서 본문 내용이 아무리 좋고 멋져도 이를 위반했을 때의 처리 방법이 없다면 그 어떤 금과옥조의 계약서도 무용지물인 것이다. 특히 관습과 언어, 법체계가 서로 다른 나라끼리 이루어지는 무역에 있어서는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법체계는 법조항 후반부에 법을 지키지 않을 시의 처벌 기준을 중요하게 규정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발생하는 무역통상도 마찬가지다. 더 자유롭고 공정하게 무역이 확대되면 자원은 낭비 없이 효율이 극대화 되고, 인류 전체의 후생은 증대되어 모두가 잘 살게 된다. 과거 세계 경기 불황과 이의 여파로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1)에 의한 극단적 관세장벽이었다.

 

1) 참조 : 고태진, [전문가칼럼]1930년대 데자뷰인가

 

GATT체제를 이어받은 실효적인 WHO협정

 

이를 반성하고 다시는 무역장벽으로 인한 세계 공멸로 회귀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가 GATT이다. 그런데 GATT는 그 한계가 분명히 내재된 불완전한 ‘협정’에 불과했다. 체결국이 자유·무차별 무역의 원칙으로 관세의 자유화를 실현하는데 대단한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라간 통상(通商) 마찰이 이루어질 때 이의 해결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에 GATT체제는 1994년 12월 그 수명을 다하고 우루과이라운드의 오랜 협상결과로 자유무역이라는 큰 가치에 대한 준수여부를 감시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세계무역기구(WTO)가 1995년 1월 1일 출범했다.

 

즉 WTO의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가 간 통상 분쟁해결기구(DSB, Dispute Settlements Body)를 공식화 한 것이다2).

 

2) WTO 스스로도 WTO의 분쟁해결기구를 왕관의 보석으로 비유하고 있다.(Dispute settlement is sometimes described as the jewel in the WTO’s crown.)

 

분쟁해결절차에 있어서도 패널보고서(공식결정문)를 채택함에 있어 역총의(Reverse-Consensus, Negative Consensus) 방식을 전격 도입하였다. ‘역총의’는 모든 회원국이 패널보고서 채택에 반대하지 않으면 그 보고서는 자동적으로 채택되는 방식이다.

 

 

즉 일부 회원국들이 패널보고서에 반대를 하더라도 회원국 ‘모두’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패널보고서는 자동적으로 채택되는 시스템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WTO체제는 이전 GATT에 비해 강력하고도 실효적인 수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WTO 규정위반여부에 대한 패널의 결정이 실체적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게 새판이 짜인 것이다.

 

WTO의 분쟁해결기구(DSB) 사실상 마비

 

그런데 2019년 12월 10일을 기점으로 WTO의 생명줄인 분쟁해결기구(DSB)가 흔들리면서 WTO의 존재 자체를 구조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WTO는 가입국의 의무이행을 강제할 수 있도록 준사법(準司法) 체계인 DSB를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 핵심은 WTO 상소기구(Appellate Body)이다. 상소기구의 정원은 7명이지만 미국의 몽니로 신임 항소기구 재판관 임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결과 재판관은 3명만 남는 상황이었고, 게다가 그나마 2명은 2019년 12월 10일 임기가 만료되어 오직 1명의 위원만 남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전까지는 재판관 7명이 다 채워지지 않아도 사건당 위원 3인으로 구성되는 상소기구의 특성상 힘들지만 최소인원으로 상소기구는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조차도 불가능하게 되어 ‘식물 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WTO 분쟁해결절차를 잠깐 살펴보면 회원국은 다른 회원국의 조치가 WTO 규칙에 위반되어 자국 이익에 침해가 있다고 판단되면 이를 WTO에 제소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선 분쟁 당사국간 스스로 ‘합의’를 볼 기회를 갖는 협의절차를 밟게 된다.

 

실상 양자가 협의를 통해 갈등이 해결될 것이었으면 WTO까지 올라오지도 않았을 것이기에 대부분 이 단계에서 분쟁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양자 협의가 불발되면 제소국은 1심격인 ‘패널’ 설치를 요구하게 되고 패널의 결정에 일방이 불복할 경우 2심이자 최종심인 ‘상소기구’ 절차가 진행된다.

 

최종심 결정에 패소한 국가는 판정 결과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WTO는 상대국가의 보복 조치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어 그만한 세기의 몽둥이로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WTO의 DSB라는 모범적 국제 법정이 있기에 힘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회원국일지라도 공정하게 무역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여 모든 국가들은 자유무역의 세계로 안심하고 진입할 수 있게 된다. DSB는 개도국에게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셈인 것이다.

 

실제로 WTO 자료에 의하면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보다 더 활발하게 WTO 분쟁절차를 이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WTO의 위기로

 

그런데 이전까지 미국 주도하에 자유무역을 외치는 주요한 틀로써 활용했던 WTO를 지금의 미국은 왜 무력화 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트럼프의 미국은 재임기간 내내 극도의 분쟁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WTO가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해왔다. 중국정부가 교묘하게 국유기업을 지원하는 관행을 WTO 보조금 규정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점을 들며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를 실효적으로 규제하지 못한다고 비판해 왔다.

 

또한 중국을 포함 164개 전체 회원국 중 3분의 2가 특혜의 지위를 갖게 되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가지고 있다. G20 국가 가운데서도 반이나 되는 10개국이 개도국 지위를 누리고 있다. 회원국 스스로가 자국의 지위를 결정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트럼프의 압력으로 2019년 10월 개도국의 지위를 최종적으로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자국 기준의 불공정 무역을 시정할 권리를 WTO가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덤핑관세3) 등을 활용할 권리를 방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3) 고태진, [전문가칼럼]블랙프라이데이에 담긴 덤핑

 

미국은 자국의 통상 주권을 침해 받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미국의 한 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은 WTO에서 제소를 당한 사건의 약 90% 정도 패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다자간 채널인 WTO가 자국에 절대 유리하지 않은 체제라고 생각하며 이 조직을 길들이는 한편, 자국이 다루기 쉬운 FTA 형태와 같은 양자 체제의 틀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WTO 다자주의의 종언’, ‘WTO의 죽음’ 등의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WTO의 부정적 미래에 대해 앞 다투어 말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법과 규칙에 의해 움직이는 WTO 다자체제가 아닌 힘에 의한 과거 체제로의 회귀는 세계전쟁이라는 극단적인 경험에서 교훈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WTO는 최근 다시 거세진 다양한 형태의 무역장벽, 보호주의의 만연과 전자상거래와 같은 과거와는 다른 교역형태, 기술 발전 등에 따른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다자주의 틀 내에서 인류 공존공영이라는 가치 하에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미국은 대화를 통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객관적인 대안을 만드는 장에 참여해야 한다. 거대 ‘미국라지’ 한 마리가 흙탕물을 흐렸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될 일이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관세청 공익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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