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면 변리사) 와인의 역사
와인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물이나 벽화를 근거로 와인을 인류가 마신 최초의 술로 추정할 뿐이다. 양조용 포도나무의 원산지는 카스피해(海)와 흑해(黑海) 사이의 소아시아 지방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서 노아가 홍수 이후 정착했다고 전하는 아라랏산(山) 근처로, 이는 성경 구절과도 일치하는 지역이다. 실제로 창세기 9장 20~21절에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와인은 수천 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이집트와 그리스를 거쳐 고대 로마로 전파되었다.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을 처음으로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긴 것도 로마인들이었다. 로마는 정복지마다 포도나무를 심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가 갈리아 원정으로 유럽 본토를 점령하면서 오늘날의 프랑스·스페인·독일 등지에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와인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데는 기독교의 역할도 컸다. 4세기 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미사용(用) 와인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포도 재배가 유럽 각지로 확산되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포도원이 조성되었고, 수도사들이 포도 재배와 양조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16~17세기 지리상의 대발견 시대에는 탐험가들의 선박에 와인과 포도나무가 함께 실렸고, 와인은 신대륙으로도 전파되었다. 미국·칠레·호주·아르헨티나 등의 와인을 ‘신세계(新世界) 와인’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글로벌 와인 시장 규모는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으나, 리서치앤마켓츠(Research And Markets)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약 3850억 달러 규모로, 2030년까지 528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경희, 「초보자를 위한 와인 가이드 ① 와인의 역사와 종류」 참조)
명품 와인이란?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는 그의 저서 『The World’s Greatest Wine Estates』에서 위대한 와인의 조건으로 다음 여덟 가지를 제시하였다.
1. 미각과 지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시음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 수 있는 흡인력을 지녀야 한다.
3. 강렬한 아로마와 향미를 제공하되, 무겁거나 둔탁하지 않아야 한다.
4. 한 모금씩 마셔 나갈수록 더욱 뛰어난 맛을 드러내야 한다.
5. 숙성이 진행될수록 와인의 품질이 향상되어야 한다.
6. 명품 와인만이 가진 비범한 개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7. 와인 산지의 떼루아(terroir)를 탁월하게 반영해야 한다.
8. 와인을 만드는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로버트 파커는 2006년 미국의 와인 소비 문화를 민주화한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국가예술훈장을 수훈할 만큼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가 제시한 이 여덟 가지 기준은 단순한 미각의 쾌락을 넘어 지성적·예술적 완성도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명품 와인이 왜 그토록 높은 가치를 지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짝퉁 와인의 등장
명품 와인에 대한 열망이 깊어질수록, 그 시장을 노리는 위조품도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다. 가격이 높을수록, 수요가 클수록 가짜는 반드시 따라붙는다. 와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1시간마다 3만 병씩 짝퉁 와인이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제품들이 중국 국내에 그치지 않고 해외로까지 수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매년 대규모 짝퉁 와인 적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 온라인 와인 시장 보고서(2024)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국제 세관 검사에서 적발된 위조 와인 병만 300만 병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 세계 짝퉁 와인 시장의 규모는 400억 달러(약 44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영국 노섬브리아대학교 연구진은 위조 와인 유통이 방치될 경우 전 세계 와인 산업의 직·간접 피해액이 2022년에는 3조 1000억 달러(약 3464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었다. 또한 와인 인증 전문가 모린 다우니(Maureen Downey)는 "위조 업자들은 디지털 프린터로 위변조 방지 씰까지 복제하는 등 기술적으로 단속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특히 피해가 집중되는 것은 고가(高價) 한정판 와인들이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와인일수록 짝퉁이 넘쳐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보르도 와인 중 1등급으로 취급받고 있는 샤토 라피트 로쉴드, 샤토 라투르, 샤토 무통 로쉴드를 비롯해 부르고뉴 지역의 로마네 꽁티 등이 꼽힌다.
짝퉁 와인을 만드는 방법
짝퉁 와인을 제조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정품 빈병 재활용 방식이다. 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법으로, 정품 와인을 마시고 난 빈병을 수거하여 저급 와인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정품 병과 코르크, 라벨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숙련된 와인 평론가조차 속아 넘어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암시장에서 고급 한정판 정품 빈병은 개당 1000달러(약 130만 원) 이상에 거래되기도 한다.
실제로 2012년 홍콩의 한 경매업체는 크뤼그(Krug) 샴페인 1947년산을 1만 3500달러에 낙찰했는데, 이후 제조사인 프랑스 LVMH 산하 모에에네시(Moët Hennessy)가 해당 제품이 위조품이라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2010년에는 저명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921년산 샤토 페트뤼스(Château Pétrus) 매그넘에 개인 최고점인 100점을 부여했다가 이후 위조품임이 밝혀진 사건도 있었다. 제조사 측은 해당 빈티지의 매그넘은 애초에 생산된 적이 없다고 확인해 주었다.
와인 위조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인도네시아계 와인 딜러 루디 쿠르니아완(Rudy Kurniawan)의 사건이다. 그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캘리포니아 자택에 사실상의 ‘위조 와인 공장’을 차려 놓고, 저가 와인을 혼합하여 희귀 빈티지 와인으로 둔갑시킨 뒤 경매를 통해 판매하였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사 결과 그의 주방에서 각종 위조 라벨·인장·봉랍(封蠟) 등이 발견되었으며, 그가 판매한 위조 와인 병수는 약 1만 2000병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 남부지구 연방검찰은 2013년 12월 18일 쿠르니아완에게 우편 사기 및 전신 사기 혐의로 유죄 평결을 내렸고(미국 최초의 와인 위조 형사 유죄판결), 2014년 8월 맨해튼 연방지방법원 리처드 버먼(Richard Berman) 판사는 징역 10년과 피해 배상금 2,840만 달러를 선고하였다. 쿠르니아완은 2020년 11월 출소 후 곧바로 이민 당국에 인계되어 2021년 4월 인도네시아로 강제 추방되었다.
둘째, 완전 복제 방식이다. 정품 와인의 병·라벨·캡슐·코르크까지 최대한 정교하게 복제하는 방법이다. 인쇄·포장 기술이 발전하면서 외관상 구별이 쉽지 않아지고 있다.
셋째, 자유 제작 방식이다. 정품과 완전히 동일하게 복제하지 않고, 글자체나 라벨 디자인을 업자 임의로 변형하는 방식이다. 세 가지 중 가장 조악한 수준이지만, 와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소비자에게는 이 수준의 위조품도 충분히 통한다.
(2019. 1. 29. 머니투데이 기사 「천달러 정품 빈병에 가짜…시간당 3만 병 팔리는 中짝퉁 와인」; 미국 법무부(DOJ) 보도자료 2013. 12. 18.; Wine Spectator 2021. 4. 14. 참조)
짝퉁 와인 대응 기술과 시사점
짝퉁 와인 문제에 맞서 와인 업계도 기술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흐름이 블록체인(blockchain) 기반 정품 인증 시스템의 도입이다.
블록체인 기업 에버레저(Everledger)는 와인 검증 전문가 모린 다우니와 협력하여 2016년 말 ‘차이 와인 볼트(Chai Wine Vault)’를 선보였다. 이 솔루션은 고해상도 사진, 소유권 이력 등 90개 이상의 데이터 포인트를 블록체인에 기록해 위변조가 불가능한 디지털 ‘지문’을 생성한다. 소비자는 이를 통해 와인의 진품 여부와 유통 경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세계 4대 경영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EY)은 블록체인와인(Blockchain Wine Pte. Ltd.)을 위해 ‘TATTOO Wine’ 플랫폼을 개발하였다. 각 병에 고유 QR코드를 부여하고 생산자·유통업자·물류업자 등 공급망 전체를 블록체인으로 연결하여, 포도밭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출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온라인 와인 시장 조사 보고서(2024)에 따르면, 2024년 기준으로 전 세계 25개 이상의 와인 기업이 병에 인증 QR코드를 도입하였으며, AI 기반 라벨 스캔 앱을 활용한 진위 식별 서비스도 확산되는 추세다.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위조 수법도 진화한다. 모린 다우니의 말처럼, 위조 업자들은 이미 디지털 프린터로 위변조 방지 씰까지 복제하고 있다. 고가의 명품 와인을 구입할 때는 공인된 수입사나 검증된 판매처를 통하는 것이 기본이며, 출처가 불분명한 경매나 비공식 거래에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너무 좋은 조건’의 와인은 짝퉁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로필] 김종면 변리사
•(현)위고페어 대표이사
- AI기반 위조상품 토탈솔루션 서비스
•(현) 특허법인 아이엠 파트너변리사
•(전) 독일로펌 Stolmar & Partner 한국변리사
•(전) 한국 IBM, System Engineer
•<저서> 온라인 짝퉁전쟁(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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