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가업승계신탁을 활용하려면 가업상속공제, 유류분, 소유규제 해소가 관건이라는 전문가 제언이 나왔다.
안경봉 국민대 교수는 28일 오전 10시 전경련 컨퍼런스센터 2층 루비홀에서 열린 ‘주식신탁 활성화를 위한 법제 및 세제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창업주 의사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고 사후에는 지정된 수익자(후계자)에게 안전하게 주식을 이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수익자 연속신탁과 결합할 경우 대를 이어 가문이 가업을 유지할 수 있게끔 유연한 승계플랜 설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 기업들이 사용하는 승계방식은 유연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회사를 주식을 관리하는 투자회사와 사업만을 영위하는 사업회사로 나누고, 각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를 창업주가 직접 지배하는 방식은 지주회사가 배당이나 브랜드 사용료를 받기는 하지만 물적분할 및 지주회사 설립에 일시적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물적분할하되 해외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우회 지배하는 방식은 앞선 방식보다 주식평가금액을 줄여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바뀌면서 그 격차가 메워져 장점을 상실했다.
자녀 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방식은 부의 불공정한 승계란 측면에서 금지됐다.
반면 가업승계신탁은 생전에는 창업주 뜻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사후에도 창업주 뜻대로 승계가 이어지기에 위와 같은 리스크에서 다소 자유롭다.
하지만 넘어야 할 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려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지분을 10년간 보유해야 한다. 그런데 형식적으로는 신탁으로 넘어간 지분은 명의상 소유자가 이전된 경우다.
비록 실질적인 재산행사 권리는 위탁자(창업주)에게 있더라도 가업승계신탁으로 넘어간 지분을 보유주식으로 볼지에 대해서는 입법적 고려가 필요하다.
가업승계신탁에 맡겨진 주식을 가업상속공제 대상으로 본다고 해도 유류분 문제가 남는다.
유류분이란 고인의 자녀들에 대한 법정상속분을 말하는데 유류분을 고수할 경우 형제자매로 지분이 쪼개짐에 따라 상속인의 경영 영향력이 위축된다.
이에 대해 지난해 수원지법 성남지원과 수원지법에서는 신탁재산을 법정상속분에서 제외시킨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이는 다소 특별한 케이스로 모든 신탁재산에 적용하려면 법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경봉 교수는 가업상속공제와 유류분의 고비를 넘는다 해도 소유제한 문제까지 극복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탁회사는 특정 회사 지분을 20% 이상 소유(신탁 받으려면)하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당국은 현재 유언대용신탁 등 가업상속공제에 대해서는 20% 소유 제한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질의회신을 한 바 있다.
이러한 회신의 주된 이유는 수탁재산에 대한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위탁자에게 있기에 신탁회사 명의의 재산이라도 그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은 위탁자에게 있고, 그 소유권한 역시 위탁자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탁재산을 신탁회사 명의의 위탁자 소유물로 볼 때 가업상속공제에서는 사주 일가가 보유한 주식, 즉 보유 주식으로 인정받을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이는 유류분 판결과 어긋난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수원고법에서 유언대용신탁 재산을 유류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위탁자 소유의 재산이 아니며, 따라서 위탁자(고인)의 법정상속분(유류분)에서 제외된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가업상속공제와 소유규제 측면에서 위탁자 실질 소유를 인정하면, 유류분에서 법정상속분 대상 제외 법리가 흔들리게 되므로 안정적인 승계 측면에서 유언대용신탁의 입지 역시 뒤틀리게 된다.
안경봉 교수는 “유류분은 그간 상속인 간 분쟁을 해소한다는 명목에서 운영됐으나, 유언자의 의지를 무시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라며 “가업상속신탁, 가업상속공제, 소유규제란 큰 틀에서 유류분에 대한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특례 법규가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현재는 신탁이 자산가들의 전유물이란 인식이 있지만, 신탁은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해결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감안해 서민들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수익수익권, 의결권행사 지시권 분할 상속
안경봉 교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신탁재산(주식)에 대한 수익권을 수익수익권과 의결권행사지시권으로 이분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주식에 대한 수익권을 배당 등 경제적 권리를 의미하는 수익 수익권과 의결권지시 및 잔여재산분배청구권 등 지분적 권리를 뜻하는 원본 수익권으로 분할해 가업 승계자에게는 원본 수익권을, 다른 자녀나 상속인에게는 수익수익권을 각각 상속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언대용신탁이 형태는 생전 사주(위탁자)가 수익 수익권, 원본 수익권 모두를 갖되 위탁자 사후 사전에 정해진 신탁계약을 통해 상속인들에게 수익 수익권을 취득하게 하고, 원본 수익권이나 의결권행사 지시권은 가업 승계자에게만 상속하도록 설계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만일 수익 수익권을 상속받은 사람이 수익 지분을 임의처분하려 할 경우 기업 이사회, 수탁자 또는 제3자 동의를 조건으로 처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안경봉 교수는 특정 사유로 수익 수익자가 주식매수청구권과 유사하게 수익권 매수청구를 하면 후계자에게 우선 매수권을 준 후 신탁설정을 하는 등 지분율을 유지해 가업을 잃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다고도 전했다.
이밖에 여러 후계자를 수탁자로 설정하거나 주된 후계자 1인을 설정하거나 전문적인 제 3자를 수탁자로 하는 방법 등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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