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복의 세계경제 Story] 관세평가 제도의 역사②

2026.02.02 15:27:18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20세기 초, 각국 세관의 자의적인 평가 관행에 대한 불만이 점차 커져갔다.

 

그러나 국제연맹(1920-1946)의 주도하에 그러한 관세평가 절차의 불공정성을 해결하려는 초기 시도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관세평가에 관한 통일된 시스템을 찾는 노력은 거의 이상적인 꿈에 머물렀다.

 

UN이 창설(‘45.10.24)된 후에야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기회가 생겼다. 브레튼 우즈 체제하에서 23개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을 체결하고(제네바 라운드,1947년), 56개국 대표자들이 쿠바의 하바나에 모여 국제무역기구(ITO: The 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의 헌장에 대한 협상에 착수하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관세평가에 관한 일반 원칙에 대한 합의가 1947년 제네바에서 개최된 ’유엔 무역·고용회의‘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관세 평가에 관한 국제적 규범은 1948년 ’국제무역기구(ITO)를 위한 하바나 헌장‘ 제35조에 명시되었다. 유사한 평가 조항이 1947년 GATT 제7조에도 포함되어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안한 국제무역기구를 위한 하바나 헌장(공식 명칭은 "유엔 무역·고용 회의 최종 의정서")은 국제무역 및 기타 국제경제 문제에 대한 기본 규칙을 명시했다.

 

이 헌장은 1948년 3월 24일 56개국이 서명했지만,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해 결국 무산되었고, 미국의 거부로 인해 다른 국가들도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헌장은 오늘날 세계무역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을 제시한 문서였다.

 

비록 하바나 헌장을 근거로 추진했던 국제무역기구의 출범이 무산되었더라도 그 정신과 주요 내용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으로 계승되었으며 이후 1995년 WTO가 출범하면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하바나 헌장은 오늘날 WTO 관세평가협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본적인 관세평가 관련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헌장의 일부 조항은 이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의 일부가 되었고,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창설되기 전까지 국제 무역은 GATT를 통해 관리되었다.

 

원칙적으로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할 때에는 과세가격(customs value)을 산정해야 한다. 하지만 1947년 체결된 GATT에서는 처음부터 구체적인 과세가격 산정 방법을 규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GATT Article VII 은 “관세 목적을 위한 평가(principles for valuation for customs purposes)”에 대한 일반적 원칙만을 제시했다.

 

관세 평가에 관한 국제협약 조항들은 협상(Negotiating the Tariff Provisions)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고, 관세평가를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무형 관세(Invisible Tariffs)로 보아, 그 당시 제기되었던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참고하면 현재의 평가협정 이해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관세가 종가세로 부과되는 경우 높은 가치를 부과하는 평가방법을 이용함으로써 관세액을 인상시킬 수 있다. 상품가치를 임의로 설정할 수 있으며, 수입품에 가격을 부과하거나 비교가능한 국산품의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상품 가치를 매길 수 있다.(이하 생략)- - -”

 

그런 염려로 하바나 헌장은 이 같은 무역장벽을 자세한 규칙하에 규율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관세평가의 기준이 되는 수입품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 적용할 공통 정의 및 절차를 정하라는 의무에 따라 규정된 하바나 헌장 ’제35조(세관 목적상 평가) 제3항‘을 소개한다.

 

[ 3. (a) 수입 상품의 관세 목적상 가치는 관세가 부과되는 수입 상품 또는 유사 상품의 실제 가치(actual value)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자국산 상품의 가치 또는 임의적이거나 허구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

 

(b) "실제 가치"란 수입국의 법률에 따라 정해진 시점과 장소에서 통상적인 거래 과정에서 완전경쟁조건 하에 해당 상품 또는 유사 상품이 판매되거나 판매를 위해 제공되는 가격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품이나 유사한 상품의 가격이 특정 거래의 수량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 고려되는 가격은 (i) 비교 가능한 수량 또는 (ii)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무역에서 상품의 더 많은 양이 판매되는 수량보다 수입자에게 불리하지 않은 수량과 균일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c) 실제 가치를 하위 항목 (b)에 따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관세 목적의 가치는 그러한 가치의 가장 가까운 확인 가능한 등가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과도기적 조치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은 런던에서 작성되어 1948년 1월 1일 잠정 발효되었으며, 관세 평가에 관한 하바나 헌장의 핵심 내용이 포함되었다(제7조).

 

한편, 파리에서는 '유럽관세동맹 연구그룹'이 설립되었고, 공동 가치정의 초안 작성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이 그룹은 GATT 제7조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즉, 관세평가는 실제가치(Actual Value)를 기준으로 해야 하며, 실제가치란 '특정 시점과 장소에서 통상적인 거래 과정에서 해당 상품 또는 유사한 상품이 완전한 경쟁 조건 하에서 판매되거나 판매 제안되는 가격'을 의미한다.

 

연구 그룹의 결과물은 1950년 ‘브뤼셀 가치 정의(BDV)’의 개발이었다. BDV는 ’관세 목적의 재화 평가에 관한 협약‘을 통해 관세 협력이사회(CCC :1994년부터 세계 관세 기구로 명칭 변경)에서 채택되었으며, 이 협약은 1953년에 발효되었다.

 

1970년대에 BDV는 약 100개국에서 적용하는 가장 인기 있는 국제 관세 평가 시스템이었다.

 

이 체계는 1980년 7월 1일까지 EEC에서 사용되었으며, 실무적으로는 실제로 지불된 가격(송장 가격)이 계산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필요한 경우, 구매자가 판매자를 대신하여 부담하는 부가적인 의무 또는 송장 가격에 명시되지 않은 기타 가치 요소에 대한 추가 금액이 계산되었다.

 

GATT 제7조는 관세 평가 시스템의 조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있어 중요한 진전을 나타냈지만, 이미 기술한 대로 관세평가의 일반 원칙만을 담고 있어 실제 적용에 대한 지침은 거의 제공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각국이 자국세관 독자 방식으로 과세가격을 산정하면서, 평가 방식에 큰 차이가 발생했고, 관세부과가 예측 가능하지 않거나 임의적(arbitrary)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는 무역에서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BDV는 인기가 있었지만, 가치에 대한 가상적인 정의(‘정상 가치’)로 인해 수입품의 관세 평가액을 결정하는 데 있어 세관 공무원에게 지나치게 많은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미국과 캐나다 같은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이 BDV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고 자체적인 관세평가 시스템을 적용하였고, 기업들은 전 세계적으로 관세평가 시스템의 통일성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러한 자체 관세평가 규칙은 BDV 시스템의 규칙과 상충되었다.

 

관세 평가 문제는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진행된 GATT 도쿄 라운드(다자간 무역 협상)에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랐는데, 당시 당사국들은 각자의 관세평가 시스템 적용에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쿄라운드 초기에는 관세 목적상 서로 다른 평가 시스템이 공존하는 것이 (비관세) 무역 장벽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이에 동의했지만 미국은 반대 입장이었다. EEC는 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불투명하고 보호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미국의 관세 평가 시스템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관세평가 시스템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해당 국가들은 처음에는 관세평가 제도를 협상에 포함시키는 데 당연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의 무역·정치적 양보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고 이 문제를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들은 자국의 관세 평가 제도를 포기하는 것을 무역·정치적 양보로 간주하고, 그 대가로 유럽경제공동체(EEC)가 다른 양보(예: 관세율 인하)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세평가는 도쿄라운드 협상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되었다. 공정하고, 통일적이며, 중립적인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목표였으며, 이는 1947년 GATT 제7조에 명시된 원칙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초기 협상전략이 실패로 돌아가자 1977년 11월, 유럽연합(EU)은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입장 변화를 발표했다. 유럽 국가들이 긍정적인 접근법을 선택함으로써 평가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기로 합의했으며, 그들의 제안이 "미국 평가 시스템의 장점을 근거로 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제출된 협정 초안은 거의 모든 경우에 세관이 특정 거래에서 수입품에 대해 "지불한 가격 또는 지불해야 할 가격(PAPP)"을 기준으로 과세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한 제한된 예외적인 경우에만 거래 가치를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경우에 관세는 다섯 가지 정해진 방법을 나열된 계층적 순서대로(hierarchical order) 적용하여 이를 결정할 것으로 하였다. 유럽연합의 바뀐 입장 변화는 협상 중반에 상대방의 입장이 옳고 자신의 입장도 옳다고 동의하는 것과 거의 같았다.

 

길고도 종종 난항을 겪었던 협상은 주로 EEC와 미국 간에 이루어졌으며,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이 세 나라는 북유럽 블록으로 연합)와 개발도상국(주로 인도, 아르헨티나, 브라질)은 명백히 부차적인 역할을 했다. 협상은 마침내 새로운 관세평가 규범으로 이어졌다.

 

이 관세평가 규범은 분명히 타협의 산물이다. EEC가 배제하고 싶어 했던 요소들(예: 산정가치, 원가에 기반한 관세 평가액, 수출국에서의 조사)이 포함되어 있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여러 부분에서 EEC의 입장을 따라야 했다.

 

EU 제안에 대한 개발도상국들의 반응은 완전한 놀라움과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는 EU가 제안한 제도, 즉 수입업자가 신고한 거래 가치를 세관에 수용하도록 강요하여, 상인들이 저평가 신고하는 상품 및 기타 관세 관련 부정행위를 처리할 수 없게 해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거래 가치의 진실성이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관세 당국이 수입자의 신고내용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칙에 일정 수준의 유연성을 원했다.

 

EU와 미국은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제안의 기본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를 확보한 후에는 양보하지 않았다. 도쿄 라운드에서 개발도상국들이 고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한 양보는 개발도상국이 협정에 가입하면 이행을 5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협상을 통해 마침내 새로운 관세 평가 규정이 마련되었다. 유럽경제공동체(EEC)와 미국은 1980년 7월 1일부터 이 규정을 적용해 왔으며, 다른 국가들은 1981년 1월 1일부터 이를 도입했다.

 

1986–1994년 동안 진행된 Uruguay Round 협상에서, GATT 체제가 대폭 정비되고 새로운 국제기구인 WTO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1994년에 “GATT 제7조의 이행에 관한 협정 (Agreement on Implementation of Article VII of GATT 1994)” — 즉, WTO 관세평가협정이 채택되었다. WTO 출범과 함께 이 협정은 단순한 선택사항이 아니라 WTO 회원국에게 의무적인 규범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WTO 회원국들이 관세평가협정의 적용 대상이 되었고, 국제적으로 통일된 과세가격 평가 체계가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필 ] 이대복 (사)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 경영학 박사

• 2021.1. 15 ∼ 한국관세법판례연구회 고문

• 2022.10.28 ∼ 한국세관역사연구회 회장

• 2007.3.14.∼2007.9.30. 관세청 세관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 2010.06~2011.07 관세청 차장

• 2008.09~2010.05 인천공항 본부세관장

• 2003.~2008. 관세청 감사관, 조사국장, 통관관리국장

• 2006.~2007. 미국 관세청(CBP) 파견근무

• 2003.~2004. 서울본부세관 심사국장

• 2002.~2003. 미국 관세/무역전문 로펌(Sandler, Travis &Rosenberg, P.A.) 고문

• 1998.~1999. 천안 세관장

• 1988.~1989. 구미세관 수출(환급)과장

• 세계관세기구(WCO), 동국대, 외국어대 등에서 자금세탁방지론 강의

• 2005년 홍조근정훈장 수상

• 1994년 WCO 사무총장상 수상

• 저서 :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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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tf@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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