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복의 세계경제 Story]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원초적 원동력'

2024.06.13 08:30:53

 

(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1776년 7월 4일 미국이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 동력(動力)은 무엇이었을까?

 

웅대한 애국심? 식민지를 착취하는 영국에 대한 반영감정?

 

그러나 미국의 독립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다수의 국민들의 자각, 쏠림 현상들이 커다란 동력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년 12월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배에 실려 있던 차(tea) 상자를 바다에 던져 버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이 미국독립 전쟁의 불씨를 일으킨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보스턴 상인 사회는 42 퍼센트가 미국 독립지지자(Independencist), 39 퍼센트가 대영제국 충성파(Royalist), 19 퍼센트는 추정 불가로 분석된다.

 

이러한 성향 차이에는 나이와 부(富, 재산), 종교와는 상관관계가 없었으며, 출생지와 사업의 종류가 큰 요인이었음이 드러난다. 즉,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 독립에 반대하는 대영제국 충성파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부분이 영국 회사의 중개인이나 지점 책임자 였다.

 

미국 독립에 대해 미국민들의 입장을 나눠 놓는 것은 무엇이 자신에게 경제적 이득인가 하는 개념 차이였다. 대영제국 충성파들에게는 영국 해군의 보호, 확립된 형태의 무역, 런던에 있는 상인들과의 신용등은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들이었다.

 

대영제국 충성파들에게는 본국과의 호혜적 무역이 그들의 생존과 생업이었으며, 대영제국의 속박을 푸는 것은 그들의 생활 터전과 번영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독립지지파가 가장 좋아했던 경제적 강제의 수단인 수입금지조치는 영국 충성파의 호주머니를 마르게 하는 것이었다.

 

전체 미국 사회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단행한 수입 금지 조치는 경제적으로는 거대한 도매상인들이 소규모 상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희생시키고 이득을 취하는 결과가 되었다.

 

미국의 독립을 위해 정치적 이데올로기만으로 미국민들이 미국 독립전쟁을 몰고 갔는가? 죽창 들고 미국 독립을 위하여 싸우러 벌판에 나갔는가?

 

공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경제적 요인 또는 이익이 더 큰 유인이 되었음을 미국 독립전쟁의 과정을 따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이해 사이에는 어떻게 관계가 형성되어 졌을까?

 

첫째로, 중상주의 정책에 따라 영국과의 무역만 허용되었던 식민지 미국도 이제는 스페인 등 남부 유럽 및 서인도 제도와의 독자 무역이 경제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미국 상인들에게 이들 지역은 고용 확대와 그에 따른 더 큰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미국 상인들은 이제는 그 지역들과의 교역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하에서는 중상주의적 견해를 가진 영국 행정부나 의회에는 이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암암리에 이들 지역과의 밀수가 성행하였다.

 

그러한 경제적 이익은 반드시 감추어져야 했다. 따라서 식민지에서 영국 의회에 보내는 수많은 청원에는 경제적 요인은 감추어져서, 외형상으로는 추가 관세 부담에 대한 트집 뿐이었지만, 실제로는 움트기 시작한 18세기 무역에서 살아 남기 위해 미국도 이제는 더 큰 운동장, 더 큰 무역자유가 필요하다는 읍소와 항의와 입장 표명이었고, 이는 미국민들에게 독립의 필요성을 자각시키게 해 주었다.

 

둘째로, 미국에서 태어난 상인(Independencist)들은 대부분 영국 태생인 수입상(Royalist)의 수를 줄이고, 중개상인과 공매인들을 쫒아냄으로써 무역에 대한 통제 권한을 되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미국 상인들은 더 큰 경제적 주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득권층인 영국 상인들의 지배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영국 경제의 부침에 따라 영원히 종속되어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독립전 15년 동안, 독립지지 상인들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미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의 상업적 제국 안에서 머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후 고종의 장례식이 치뤄진 1919년까지 10년 동안 대한제국 백성들이 참았던 것이 연상된다.

 

1760년대 초반 영국이 그처럼 강력하게 중상주의를 추구하고 식민지인 미국을 경제적으로 몰아치지 않았더라면, 미국 상인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이득이 제국 바깥에 널려 있다는 것을, 독립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깨닫지는 못했을 것이다.

 

보스턴 차 사건으로 시작된 미국의 독립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한 나라의 독립 과정을 경제적 분석 없이 정치 논리로만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탁상적인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역사 연구자들은 중요 사건들에는 그 사건의 배후에 흐르는 경제적 실체, 즉 일반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요인들을 정확히 집어내서 역사를 익히는 이들에게 정확히 알리고 이해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은 경영학박사로 31년간 관세행정에 봉직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세계관세기구(WCO) 등에서 자금세탁방지론(Money Laundering)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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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복 한국 FTA연구회 이사장 tf@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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