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기현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 수신에 비해 작은 여신 규모, 막대한 유가증권 보유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면서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들의 안전에 문제 없는지 리스크를 점검하고 있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은행들은 SVB와 같은 미국 특화은행과 달리 수신 대비 여수신 비율이 높은 데다, 전체 자산에서 유가증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20% 미만인 만큼 지난해 이후 지속되는 금리 인상기에도 큰 타격이 없는 것으로 진단됐다.
미국의 벤처캐피탈 및 기술 스타트업 전문은행인 SVB 파산은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이어지면서 터졌다. SVB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그간의 금리 인상에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말 기준 SVB 총수신은 1747억달러인데 여신은 743억달러로 여수신 비율이 42.5%에 불과했다. 통상 은행은 가계나 기업들로부터 유치한 예금을 대출 등으로 굴려 수익을 얻는데, SVB는 이 비율이 매우 낮은 것. 반면 지난해 말 기준 보유 채권 규모는 1174억달러로 총자산의 55% 수준에 달했다.
실리콘밸리 내 기술기업들에 의존하는 특화은행인 만큼 일반 은행에 비해 수신 대비 여신 비율은 낮고 자산 중 채권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는 국내 은행과는 딴판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주요 은행의 총여신(은행 계정)을 총수신으로 나눈 여수신 비율은 모두 90% 이상이었다.
KB국민은행의 3분기 기준 수신 규모는 367조959억원, 여신은 365조1070억원으로 여수신 비율은 99.5%였다. 신한은행의 3분기 기준 수신 규모는 총 335조8759억원, 여신은 322조808억원으로, 여수신 비율은 95.9%였다.
우리은행은 96.3%(수신 312조753억원, 여신 300조6712억원), NH농협은행 92%(수신 314조9110억원, 여신 289조8151억원), 하나은행 91.6%(수신 346조2944억원, 여신 317조2952억원) 등이었다.
수신이 늘어난 만큼 대출 등을 통해 돈을 굴리고 있어 예대마진(대출금리-예금금리 격차)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구조인 셈이다. 따라서 주식과 채권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큰 유가증권 투자 비중도 높지 않다.
3분기 기준 신한은행의 총자산(은행계정)은 465조3937억원, 보유 유가증권은 86조8317억원으로, 유가증권 비중은 18.7%에 그쳤다. NH농협은 총자산 400조1072억원 중 유가증권은 71조2176억원으로 17.8%를 차지했다.
KB국민은 16.2%(총자산 517조5천632억원, 유가증권 84조580억원), 하나 16%(총자산 490조2003억원, 유가증권 78조5580억원), 우리 15.9%(총자산 440조9864억원, 유가증권 69조9812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총자산의 절반 이상을 유가증권에 투자한 SVB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것으로, 금리 인상으로 인해 보유 중인 유가증권의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손실이 은행 전체 자산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셈이다.
실제 지난해 3분기까지 각 은행의 유가증권 손익(누적)은 KB국민 -5천686억원, 우리 -2천100억원, 하나 -1천805억원, NH농협 1천691억원, 신한 1천688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SVB 사태와 같은 은행의 대규모 유가증권 손실과 이로 인한 뱅크런 발생 가능성은 작다는 지적이다. 다만 주요 시중은행들은 이번 SVB 사태가 시장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시장 상황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여파가 시차를 두고 발생하고 있는 만큼 단기적으로 리스크 관리에 주안을 두고 보수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은행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도 관련 파급이 국내 은행들로 전이되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특이사항 발생시 문제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경각심을 나타냈다.
한편, SVB 사태 발생 후 금융감독원이 금융권 리스크를 점검해보니 인터넷은행의 경우 1인당 평균 예금액은 200만원대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예금자보호한도가 5천만원인 데다 자금조달이 소액 또는 소매자금으로 이뤄져 단기간 내 자금 이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SVB 사태로 국내 인터넷은행의 고객 자금 유출을 일부 우려하기도 했는데 고객 평균 예금이 소액인 데다 SVB와 달리 소매 자금으로 이뤄지는 등 구조가 전혀 달라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저축은행과 카드회사, 캐피탈 또한 여신 위주의 자금을 운용하고 최근 자금 조달 여건이 호전되면서 유동성이 안정적인 상황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저축은행의 유동성 비율은 177.1%며 카드회사는 358.4%, 캐피탈은 202.3%다.
보험회사의 경우는 국공채 보유 규모가 크지만 자산부채 만기 구조를 매칭해 관리하고 보험 계약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으로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이 안정적으로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금감원은 평가했다. 증권회사의 경우도 유동성 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양호한 상황이다.
국내 은행의 외화 LCR도 지난 10일 기준 143.7%로, SVB 사태로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으로 금감원은 평가했다. 또 국내 금융회사들의 SVB에 대한 주식 투자 등도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이나 보험회사 등 해외에 투자하는 국내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봤는데 SVB에 대한 주식 투자가 없는 등 직접적인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간접적인 펀드에 들어 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 또한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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