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중용(中庸)의 덕(德)이 실로 지극하구나!

2024.07.12 09:16:46

 

(조세금융신문=나단(Nathan) 작가) 

 

子曰;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

자왈; “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용中庸의 덕德이 실로 지극하구나!


사람들 중에 이러한 덕이 드문지 너무 오래되었구나.” - 옹야雍也 6.27

 

여러분은 ‘중용(中庸)’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중용은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는 뜻으로,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과 뜻이 비슷합니다. 다만, 중용은 조금 더 큰 의미로 해석이 됩니다. 즉 어떤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것을 중용이라고 보면 됩니다. 꼭 중간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공자는 중용의 덕이 지극(至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용의 덕을 실행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는 것에 골몰했고, 뜻이 있는 선비들은 잘못된 세상을 한탄하고 은둔했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그 중간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면서 세상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비록 우둔한 위정자나 마음에 들지 않는 세도가가 정치에 대한 자문을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제자들도 정계로 보내어 자신의 철학이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중용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다소 극단적으로 정치를 혐오했던 예도 있습니다.

 

《논어》의 뒷부분인 〈미자 편〉에는 세상을 등지고 사는 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장자와 걸익이라는 은자가 쟁기질을 하면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마침 공자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이들을 보고 자로로 하여금 나루터가 어디인지 물어보게 했습니다. 그러자 장저가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공자)은 천하를 주유할 테니 잘 알 것이오.”

 

자로는 어쩔 수 없이 그 옆에 걸익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이번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뉘시오?”

“저는 중유입니다.”

“노나라 공구의 제자란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걸익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천하는 모두 이와 같이 흘러가는 법이라서, 누가 그것을 바꾸겠습니까? 어찌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찌 세상을 피해서 은둔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만 같겠소?”

 

이 말은 공자가 뜻이 맞지 않는 위정자를 피하면서 다니는 것을 은근히 비꼰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세상을 피해서 사는 자신들과 함께 하자는 제의였습니다.

 

자로가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자 공자는 실망하면서 답했습니다.

“짐승들과는 무리 지어서 살 수 없는 법이다. 내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고, 누구와 같이 산다는 말인가? 천하에 도가 있다면, 나의 도와 저들의 도를 바꾸는 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 〈미자 편〉 18.6

 

사회생활에서 발생하는 극단적인 선택

 

사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회사뿐만 아니라 세상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그중에서 극(極)과 극(極)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이런 유형입니다. 업무에 대한 열정이 너무 지나쳐서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부하 직원도 열심히 일하기를 원합니다.

 

다만 이러한 열정이 ‘진짜 노동’인지 ‘가짜 노동’인지 짚어봐야 합니다. 비효율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죠. 같은 보고서를 수십 번 고치기 위해서 매번 야근하는 것은 정말로 지양해야 할 일입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기진맥진해져서 병에 걸리거나 번아웃(burnout)이 되고 맙니다. 회사에서 근무한 지 20여년 차가 되자 주변에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습니다. 그 외에 심혈관 질환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회사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의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처음에 너무 의욕을 갖고 달려들면 금방 지치게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42.195km를 뛸 생각을 하지 말고, 100m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뛴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합니다. 주변에 유튜버들을 보면 구독자 수가 적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유튜버 대부분은 몇 년 동안 무명(無名)이었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도해서 마침내 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중용’의 삶이란 무엇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를 잘 안배해야 합니다. 쉽게 불타고 쉽게 꺼지면 안 됩니다. 내가 만약 작가의 꿈을 꾸고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나 정유정 작가처럼 새벽에 일어나서 4~5시간씩 글을 쓸 것이 아니라, 하루 1시간이라도 매일 성실하게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적어도 한 달을 지속하고, 나중에는 몇 년간 이러한 습관을 유지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매일 몇 시간씩 글을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릅니다.

 

‘중용’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멈출 때를 알고 또한 나아갈 때를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中)’을 통해서 적절히 조절함을 알았다면 ‘용(庸)’을 통해서 그것이 변하지 않고 일상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중용의 핵심 사상은 바로 ‘성실(誠實)’입니다.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중용의 시작입니다. 《중용》에서도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실을 갖춰야 그 본성을 다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중용의 도’는 나의 삶의 자세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중요합니다. 부부나 가족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회사 업무, 직원과의 관계 등 모두 해당합니다. 부부 사이도 뜨거운 열정 못지않게 시간이 지나면서도 관계가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도 마찬가집니다. 관계는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회사 업무의 성실함, 직원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성실함’이 근본에 있습니다.

 

공자의 인생 자체도 ‘중용’이었습니다. 그는 ‘입신양명’과 ‘도덕정치’를 꿈꾸며, 수없이 많은 환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인지하고, 더 이상 관직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성실한 자세를 잊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말입니다.

 

지금 나의 삶을 생각해보시죠. 나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고 있나요? 아니면 아직도 극과 극의 삶을 사고 있나요? 열심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멈출 줄 알면서 꾸준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프로필] 조형권(나단) 작가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논어를 읽다》 출간, 교보문고 MD의 선택

•《적벽대전 이길 수밖에 없는 제갈량의 전략기획서》 출간, 교보문고 북모닝 CEO도서 선정

•《공부의 품격》 출간

•(현)SK그룹 내 마케팅 임원

•성균관대학교, EMBA 석사 졸업

•고려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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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단(Nathan) 작가 chojaz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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