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생명보험업계가 소비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디지털화를 시도하고 있다.
생보사 입장에서 디지털 전환은 기존 전통사업을 혁신할 수 있는 방법이고, 본업인 보험업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미래성장동력 확보도 꿰하는 수단도 될 수 있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이 본격화된 가운데 디지털 전환은 보험사들의 ‘영토 지키기’를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 업계 최초로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획득한 교보생명에 이목이 집중된다.
교보생명은 현재 디지털 전환에 전사적 역량을 결집중이다. 기존 보험 사업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동시에 디지털 기반 신성장동력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교보생명은 지난 7월 생보업계에서 최초로 금융위원회로부터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 본허가를 획득했다.
이미 교보생명은 지난해 말 기존 디지털 혁신지원실을 DT지원실로 확대 개편하는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대대적 조직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착수할 DT추진팀과 오픈이노베이션팀을 신설했고 업무 프로세스 혁신을 추진하는 AI활용팀, 빅테이터지원팀 등을 새롭게 꾸렸다.
또한 내년 초 선보일 마이데이터 서비스 도입을 앞두고 고객 스스로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생애주기에 따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규 상품을 계획중에 있다. 고객의 금융 이해도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금융교육 서비스에는 인문학적 요소도 담아낼 계획이다.
◇ 교보문고 현금실탄 두둑…8년만에 출자나선 이유?
최근 교보생명이 자회사인 교보문고와 손자회사인 포트리스이노베이션에 어떤 움직임을 보였는지 살펴봐도 디지털화 선점에 대한 강한 의지가 읽힌다.
먼저 교보생명은 지난 8월 자회사인 교보문고에 1500억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서점들의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업계 1위인 교보문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자 결국 모회사인 교보생명이 실탄을 긴급수혈한 것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교보생명의 자본 투입을 두고 두 가지 해석이 제기됐다.
교보문고 재무건전성 확보 차원의 ‘급한 불 끄기용’이라는 해석과 마이데이터 사업 확장을 위해 발편 마련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교보생명이 교보문고에 출자하는 것은 2013년 이후 8년 만이다. 당시 교보문고는 통합물류센터 구축 목적으로 200억원을 출자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서점업계 상황은 매우 열악한 상태다. 서점업계 3위인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던 서울문고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결국 지난 6월 부도처리 됐다.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교보문고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올해 상반기 3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지난해 역시 4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내며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재무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에 더 큰 문제는 오프라인 서점 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디지털화에 ‘문화적 DNA’ 담는다?
그렇다면 왜 교보생명은 지금 같은 시점, 교보문고에 통 큰 지원을 결정한 걸까.
먼저 교보문고는 그룹 내 상징적인 의미를 담당하는 곳이다.
교보문고는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부친인 故 신용호 창업주의 신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신 창업주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철학에 따라 교보문고가 적자를 내더라도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교보문고 운영 자체가 수익성 보다는 공익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교보생명이 교보문고에 대대적인 투자를 결정한 것은 해당 자회사가 신 회장 부친의 유훈이 깃든 곳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교보생명이 지난 7월 보험사 중 최초로 금융당국으로부터 마이데이터 본허가를 받은 것과 관련이 있다.
교보생명이 교보문고를 활용해 마이데이터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마이데이터는 은행, 보험, 카드사 등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신용정보를 한 곳에 모아 스스로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서비스다. 허가를 받은 업체는 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상품 추천, 투자자문, 대출 중개 등 개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교보생명은 일찍부터 마이데이터 사업에 공을 들인 만큼 청사진도 확실한 상태다. 오는 2022년 1월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때 다른 금융사와의 차별점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문화적 DNA’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본허가 획득에 대해 “본업에서 갖고 있는 금융·건강 분야의 경쟁력 외에 교보문고, 문화·교육 재단, 광화문글판 등 당사가 보유한 문화적 DNA를 활용한 차별화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문고는 이번 유상증자로 확보된 자금을 통해 온라인 사업 기반을 확충하는데 적극적인 투자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물류센터 등 기존 사업의 인프라를 확충하고, 디지털 기반 미래사업 추진에 자금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 포트리스이노베이션 지분 60% 매입
지난 9월 교보생명의 자회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이 금융 시물레이션 솔루션업체를 인수한 이유도 교보문고 실탄 충전 배경과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교보생명이 손자회사 확충을 통해 마이데이터 사업, 나아가 디지털 기반 미래사업 추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지난 9월24일 이사회를 통해 포트리스이노베이션을 자회사로 추가하는 안건을 결의했다. 포트리스이노베이션 지분 60%를 19억8000만원에 매입하는 방식이다.
교보라이프플래닛측은 해당 인수에 대해 “디지털 전문 관련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교보라이프플래닛은 교보생명이 지분 100%를 보유한 인터넷 전업 생명보험사로 2013년 설립됐다.
포트리스이노베이션은 GPU 병렬 기술 기반으로 금융사나 보험사에 자산 위험 관리 솔루션을 맡는 곳으로 역시 2013년에 세워졌다.
사실 교보라이프플래닛과 포트리스이노베이션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포트리스이노베이션은 지난 2015년 교보생명에 다이나믹 헷지 시스템을 납품한 바 있고, 2018년에는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 시스템 구축을 담당했다.
◇ 교보생명, 종합감사서 중징계 피해…승인절차 문제 없을 듯
보험사가 이같이 자회사를 보유하려면 금융위원에 자회사 소유 신고를 하고 수리를 받아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대주주인 교보생명이 종합감사 결과에서 중징계를 피하면서 이번 손자회사 소유에 대한 금융당국 승인 절차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게 보험업계 전망이다.
또한 보험업계는 이번 교보생명의 손자회사 인수가 정부가 3년 전 보험사의 핀테크 자회사 소유를 허용한 이후 첫 사례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2019년 인슈어테크(보험과 기술의 합성어) 활성화 목적으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보험사의 핀테크 자회사 투자 근거를 마련했다.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행보에 보험업계에서 한때 인슈어테크가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을지 검증되지 않아 보험사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보험업계 관계자 A씨는 “교보라이프플래닛의 사례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는 성공적인 사례가 될지 주목하고 있는 분위기”라며 “만약 성공한다면 (인슈어테크 분야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내는 첫주자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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