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신탁으로 기업 자금 조달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신탁법에 맞춰 자본시장법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왔다.
2012년 정부는 신탁법 개정을 통해 신탁을 통한 기업의 직접 자금 조달 수단을 열었지만, 신탁법과 궤를 같이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은 손대지 않아 10년간 사실상 유명무실화한 상태다.
오영표 변호사(현 신영증권 패밀리헤리티지 본부장)는 15일 ‘신탁 활성화 및 신탁산업 발전을 위한 법제 및 세제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금융산업을 활성화하고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 또는 법인대용화를 위한 신탁 도입이 필요하다며 기업의 사업신탁 허용을 위해 자본시장법상 자기신탁, 수익증권발행신탁, 신탁사채 등의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 원활한 자금조달 수단 ‘자기신탁‧사업신탁’
신탁은 내 재산을 늘리거나 보호하고 싶을 때 또는 급전이 필요할 때 내 재산을 담보로 돈을 끌어다 쓸 수 있도록 하는 전문 관리인 제도다. 전문 관리인에게 내 돈이나 재산을 맡겨 운용, 관리, 유동화를 하는 제도다.
기업의 경우 신탁은 대규모 자금조달이나 급전이 필요할 때 더욱 각별한 가치를 가진다.
회사는 주식‧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은행에서 돈을 꿀 수 있지만, 두 방법 모두 비용이나 절차가 만만하지 않다. 주식‧회사채는 증권사나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는 등 복잡한 중간 단계와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고, 은행의 경우도 담보가치에 대한 감정과 심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그 결과 만족할 수준의 대출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탁을 이용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과 간단한 절차로 자금조달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기업이 직접 주식‧회사채를 발행할 수는 없지만, 회사가 자기자신을 수탁자로 지정해 신탁계약을 걸면 금융사처럼 자신이 보유한 사업부나 수익에 대한 배분권을 증권화(수익증권발행신탁)해 팔거나 신탁한 재산을 담보로 직접 돈(신탁사채)을 빌릴 수 있다.
중요한 지점은 위탁자인 회사가 신탁계약을 통해 자신의 재산이나 사업부를 회사 자신(수탁자이자 신탁사)에게 맡긴다는 점(자기신탁)인데 타인을 통해서만 자금조달을 하던 회사가 신탁계약을 통해 한정적으로 금융사처럼 직접 자금조달을 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위탁자와 수탁자가 동일하고 100% 자기자신의 의익을 위한 신탁이라서 상법상 선관의무 등 각종 수탁자 책임이 적용되기에 회사의 다른 채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고, 책임 범위도 신탁으로 설정된 재산에 대해서만 유한책임을 지기에 일반적인 조달방법과 비교해 안전성이 뒤떨이지지 않는다.
게다가 신탁사채는 회사의 부채로 인식되지만 수익증권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자본으로 쌓이기 때문에 회사 사정에 맞춰 유동성을 확보하거나 아니면 자기자본을 확충하는 수단으로도 신탁이 활용될 수 있다.
◇ 신탁활성화 핵심은 자본시장법-신탁법 균형
다만, 자기신탁이 기업자금 조달 수단이 되려면 넘어야 할 벽이 있다.
정부는 앞서 2012년 신탁 선진화를 위해 자기신탁과 수익발행증권신탁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자본시장법에서는 회사의 자기신탁을 열어두고 있지 않다.
자본시장법은 신탁업자의 자격이나 신탁재산의 대상을 규율하는 데 회사가 자기 자산이나 사업부의 수탁자가 될 수도 없고, 이 때문에 회사 사업을 담보로 돈을 끌어모르거나 사업에 대한 수익증권을 팔 수도 없다.
신탁 가능 재산도 금전에 한해 제한하고 있어 회사가 자기 사업부를 사업신탁해 해상 사업부의 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리거나(신탁 채권), 배당이나 수익권에 대한 증권을 발행(수익증권발행신탁)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는 신탁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불가능해 결국 금융사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경제 실질적으로 이러한 처사가 법리적으로 합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회사와 금융을 분리하는 것은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예금자의 돈을 특정 회사나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융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회사가 자기신탁을 통해 자기 회사의 자산을 유동화하는 것은 주식발행이나 은행담보대출 과정보다 더 간편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자금을 빌리는 것일 뿐 예금자 돈을 가지고 융통한 것이 아니기에 금산분리 원칙 위배와 전혀 무관하다.
신탁으로 재산을 맡기면 그 재산은 수탁자 명의로 빠지기는 하지만, 그 재산 역시 회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100% 쓰이는 자익 신탁이므로 중간에 법적인 관리장치를 두었다 뿐이지 근본은 내 재산을 내가 융통한다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 변호사는 2012년 신탁법 개정 취지에 맞춰 자본시장법 범위를 수정하면 회사의 자금조달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자기자신을 상대로 자기신탁을 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신탁 재산 범위에 사업이나 기타 재산을 설정할 수 있도록 사업신탁을 허용해야 하며, 이렇게 설정한 신탁재산을 통해로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수익증권발행신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변호사는 현재는 집합투자기구여야만 수익증권 발행이 가능하기에 회사의 자기신탁을 통한 수익증권발행신탁은 실무상 어렵다며 회사의 자기신탁 허용과 더불어 수익증권발행신탁 범위에 현행 금전신탁 외에도 재산신탁과 영업신탁도 수익증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금조달 수단 다양화를 위해 사업신탁도 명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기업의 자기 신탁을 통해 자금조달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며, 2012년 신탁법 개정의 취지이기도 하다.
회사 자신의 재산을 회사 자신이 수탁해 자금을 융통한다고 해도 엄연히 타인의 돈을 조달하는 것이기에 발행과 수익증권이나 신탁사채의 유통에 대해서는 수탁자에 대한 적법한 규제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기신탁의 위탁자와 수탁자가 동일하고 근본은 내가 내 재산을 융통하는 것인 만큼 별도의 진입규제를 둘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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