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현재의 경영권을 유지, 유고 시 경영권 공백 방지, 상속 분쟁 방지 측면에서 주식신탁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박민정 김앤장 변호사는 15일 열린 ‘신탁 활성화 및 신탁산업 발전을 위한 법제 및 세제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주식신탁을 활용하면 경영자가 경영권을 행사하다가 일할 수 없거나 상속을 해야 할 때 미리 정해둔 후계자에게 의결권 행사지시권을 승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70세 이상 창업자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 매우 많고, 대부분은 경영권을 가족에게 유지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전에는 증여세 문제로 가업승계가 쉽지 않고, 갑작스러운 유고나 심각한 건강 이상이 발생할 경우 가족 사이에는 수년 간 상속 분쟁이 발생한다.
소송 중에는 경영권 공백, 소송 후에도 지분이 쪼개져 회사가 타인의 손에 넘어가고, 이후 정리나 고용축소 등으로 일자리가 사라지기도 한다.
실제 경영자가 생전에 후계자를 지정하고 유증을 통해 지분까지 나눴음에도 생애 중도에 갑작스러운 치매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자 가족간 후견과 재산분할 문제로 장기간 법적분쟁에 휘말리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현행 주식신탁제도는 주식에 대한 권리를 경영권(의결권)과 수익권(배당)으로 쪼개 유능한 후계자에게는 경영권과 수익권 일부를 그 외 가족에게는 수익권만 부여해 경영권 공백과 유류분에 의한 상속분쟁을 동시에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주식의 권리 분할은 신탁을 통해 가능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몇 가지 제약으로 인해 실질적인 가업승계 수단으로 사실상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창업자가 신탁회사에 지분을 100% 맡기고, 의결권을 100% 후계자에게 넘겨줘도 현행 법체계에서는 신탁계약을 통해 후계자가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은 15%로 한정되어 있다. 금융사인 신탁회사가 산업을 경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가업승계를 위한 주식신탁은 위탁자인 창업자 생전에는 소유 명의만 신탁사로 넘어갔을 뿐 창업자의 100%가 주식에 대한 수익과 권리를 행사하는 수익자가 된다.
창업자 사후 후계자가 모든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설계하면 실질적인 재산 소유자인 후계자가 신탁회사 간섭없이 자유로이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임의후견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해야 후견계약이 발동되고, 임의후견인은 피후견인 사망 시 업무가 종료되기에 가업승계까지 법적 분쟁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활용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법조계와 금융계 모두 한입으로 가업승계 등 특정 경우에 대해 주식신탁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풀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공적신탁이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신탁이 대중화가 어려운 이유는 신탁 운용 수수료 부담이 크기 때문인데 싱가포르에서는 가업승계만이 아니라 장애를 얻은 사람들과 자산 운용이 어려운 고령자를 위한 저렴한 공적 신탁이 활성화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특별수요신탁은 정부가 신탁보수의 90~100%를 부담해 저소득층도 이용이 가능하며, 신탁된 재산은 사전에 잘 짜인 계약과 전문가들의 관리를 통해 생애 경제활동에 대한 버팀목이 된다.
특히 재산을 노린 소송에서 보호되고, 신탁으로 맡긴 돈이 투자수익을 위해 운용될 때 정부가 원금을 보장하기 때문에 노후보장 수단이 되며, 잠들어 있는 돈과 재산이 금융시장을 돌게 되어 금융 마중물 역할까지 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신탁은 가업승계 외에도 저소득 고령층 등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지만, 신탁 수수료 부담 때문에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우리 정부도 싱가포르의 특별수요신탁제도를 통해 저소득 고령층과 장애인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적 신탁기관 도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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