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미국·이스라엘-이란 간 ‘중동 전쟁’으로 인해 세계 최대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자 석유를 원재료로 한 화학제품업 등 국내 각 산업 분야의 피해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 수입의 약 70%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해당 중동산 원유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고 있기에 ‘중동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경제적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산 및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는 등 기존 중동산 원유에만 집중됐던 석유의 수입 경로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실제 올해 초 대한석유협회가 발표한 ‘2025년 석유수급 동향’ 자료에 따르면 작년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량은 총 10억2847만 배럴로 집계됐다.
국가별 수입 비중을 살펴보면 사우디아라비아 33.6%, UAE 11.4%, 이라크 10.4%, 쿠웨이트 8.5% 등 중동 산유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 반면 미국은 17.0% 수준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번 ‘중동 전쟁’과 같은 사례를 또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선 정부 당국이 지금부터라도 원유 수입 다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서는 기술 문제, 비용 증가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미국산·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 김태헌 선임연구위원 “미국산 원유 수입, 거리·자연재해 등 리스크 존재”
김태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조세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수십여년 전부터 원유 수입 다변화 정책을 시행해왔다”며 “특히 미국산 원유는 지난 2010년대 중반 ‘셰일 혁명’을 기점으로 현지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로의 수입량이 점점 늘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만 그럼에도 현재 미국산 원유 수입이 대폭 늘지 않는 것은 국내 정유사들의 설비 다수가 중동산 원유인 중질유에 특화됐기 때문”이라며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한 중질유는 고도화 설비(Heavy Oil Upgrading, HOU)를 거쳐 휘발유·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생산된다”고 부연했다.
김태헌 선임연구위원은 원유 수입 다변화가 필요하긴 하나 미국산·러시아산 원유 역시 리스크가 존재하기에 급격한 수입 확대는 생각해 볼 문제라는 입장이다.
그는 “의존도가 높은 중동산 원유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기에 원유 수입 다변화는 일정 부분 필요하다”면서도 “단 러시아산 원유는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산 원유도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중동산 원유에 비해 수입 경로가 상당히 멀기에 운송비 부담이 크다. 또 미국 원유의 주요 수출 통로인 멕시코만 지역은 계절에 따라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기에 공급에 차질을 줄 수 있어 다각적인 차원에서 수입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업계 “미국·러시아산 원유 수입 확대 현실적으로 어려워”
업계는 당장 미국산·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정유업체 A사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 수입은 이전부터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였고 러시아산 원유는 과거 수입해오다가 지난 2022년 러-우 전쟁 발발로 중단된 상황”이라며 “국내 정유사 설비는 중동산 원유 대부분인 중질유에 최적화됐는데 이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러시아 등 다른 산유국에 비해 중동 산유국으로부터 우리나라까지 운송 경로가 비교적 짧다”며 “즉 원유 수입 경로가 길수록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데 이 시기에 운송비 증가·유가 변동 등으로 인해 비용이 더욱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를 먼저 들여온다고 해서 바로 사용할 수도 없다”며 “경질유인 미국산 원유를 수입하면 우리 설비에 맞게끔 중질유 및 촉매와 혼·배합하는 ‘블렌딩(Blending)’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문제는 수입된 미국산 원유 위주로 100% ‘블렌딩’ 과정에만 집중하면 설비 효율이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정유업체인 B사 관계자도 “미국 정부가 러시아산 원유의 규제를 해제했다곤 하나 아직까지 러-우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정유사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기엔 불확실성이 크다”며 “더불어 러시아 원유 수입과 관련된 금융 조치 등 세부적 제재는 해소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산 원유 수입은 현재 경제적 효율성이 낮기에 더욱 확대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일단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 산유국에서 수입한 중질유를 고도화 설비 과정을 거쳐 휘발유·경유 등 다양한 부산물을 얻어 수익 창출하는데 최적화돼 있다. 경질유는 중질유보다 부산물이 훨씬 적어 효율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여기에 미국산 원유의 수입 경로는 중동산 원유 수입 경로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멀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며 “미국산 원유와 중동산 원유를 혼·배합해 제품을 생산하는 ‘블렌딩’ 작업도 만능이 아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라 현재 ‘블렌딩’ 과정은 한계치에 근접해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린다 해도 현재는 포화 상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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