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올해 세금이 정부 예상보다 32조원이나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세금 추정치가 큰 폭으로 빗나갈 가능성이 매우 커진 것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를 기록하는 가운데 정부가 나라 곳간만 걱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12월에 다음해 국가 씀씀이를 정한다. 씀씀이의 폭은 재정당국의 세금 추정치(세수추계)에 달렸다. 이 추정치에 따라 경제성장이나 정부민생지원 등이 큰 영향을 받는다.
정부의 씀씀이는 민간과 정반대다. 민간에서는 어려울 때 씀씀이를 줄이지만, 정부는 늘린다. 호황일 때는 민간은 지출을 늘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만, 정부는 씀씀이를 줄인다. 정부는 어려울 때는 민생지원, 호황일 때는 경기거품을 막기 위해 씀씀이를 조절한다.
◇ 빗나간 세수추정, 오차율 6%대로 폭증
세수추계는 예측‘값’이 아닌 추정‘치’지만, 빗나간 폭은 크고 거칠었다. 한해 거둔 나라곳간에 쌓인 세금은 정부 세금 추정치보다 2016년에는 19.7조원, 2017년 23.1조원, 2018년 25.4조원 더 걷혔다. 조선업 등 제조업군에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동났고, 여당에서는 확장재정을 강조하던 시점이었다. 반면 정부는 보수적 세수추계로 마중물을 잠갔다.
재정당국의 추정이 항상 빗나갔던 것은 아니다. 기획재정부는 2019년 2월 세수추계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어가며 2019년과 2020년에는 ‘실제 거둔 세금-세수 추정’ 오차를 1%대에서 잡아내는 성과를 냈다.
기존 세수추계모형이 경제성장률, 물가, 소비 등 거시경제지표 총량의 통계적 변동추세를 토대로 했던 반면 2019년부터 기재부는 보다 세부적인 사안을 고려하게끔 추계모형을 짰다. 예를 들어 법인세에서는 외부 요인에 변동이 심한 기업 영업이익이나 자산과세에서는 부동산과 주식으로 지표를 세분화하는 식이다.
그러나 올해는 성공의 기록이 끊겼다. 정부가 전망하는 올해 세금 수입은 정부 세금 추정치보다 32조원 더 거둔 315조원이 될 전망이다. 이대로라면 추정치와 실제 세수간 오차율은 6%대로 솟구치게 된다. 약간 출렁인 수준이 아니라 역대급 이탈이다. 1분기에서만 19조원이 더 걷혔다. 소득세와 법인세, 유류세가 반등을 이끌었다.
지난해 9월 세수 추계 당시 정부는 세수 증감요인을 고려할 때 소득세에서는 부동산 양도소득세 등 자산과세분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 경우 명목 경제성장률 증가에 따른 임금상승이나 취업자 수 정도로 보수적인 세수 증감치를 전망하게 된다.
올해 법인세는 더 빡빡하게 추정했다. 지난해 9월 정부는 당시 코로나로 어려웠던 기업 상황을 반영해 3차 추경 대비 5.5조원, 2020년 본 예산대비 11.1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법인세는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 법인세수가 결정된다.
이러한 추정은 올해 1분기에 모두 빗나갔는데 요인은 부동산 양도소득세 증가,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이익 개선에 따른 법인세 증가, 납부를 유예해줬던 정유업계 유류세와 종합소득세 납부 등이 영향을 미쳤다.
이 요인들은 모두 관측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각 지표를 얼마나 추정에 반영할지는 고도의 전문영역이지만, 각 지표가 내비치는 신호는 뚜렷했다.
우선 코스피 상장사의 영업실적 개선세가 또렷했다.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 등에서는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19.8%나 늘어났다. 이 정도 개선 폭은 2019년 저조했던 실적을 고려해도 추정할 수 없을 수준이 아니다. 2020년 9월 정부 예산안 발표처럼 큰 폭의 법인실적 위축을 예단했었어야 하느냐고 묻게 되는 대목이다.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코스피 상장 12월 결산 법인 593개사의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보다 131.73%나 뛰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코스피 지수가 3200선을 돌파해 최대 3700선까지 기대하고 있다. 법인세수 대부분은 상위 1% 남짓한 대기업에 의존한다.
국내 코스피 상장사들은 과거 여러 가지 경제위기를 거친 경험이 있다. 반면, 지난해 경제상황은 외환이나 금융 등 직접적인 경제변수가 아니라 질병이라는 외생변수에 의한 것이었다. 같은 코로나 상황이어도 원청 위치에 있는 코스피 상장사는 원가절감 등 위기 관리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납부를 미뤄준 유류세나 종합소득세는 상대적으로 예측이 용이한 세금들이다. 두 세금 모두 신고시점에서 얼마의 세금이 걷힐지 윤곽이 드러난다. 법인세, 종합소득세 등 굵직한 항목의 세금은 지난해 납부유예해줬다고 해도 세법상 유예기간은 최장 9개월이다. 올해 2분기 정도면 미뤄줬던 세금이 나라곳간에 쌓인다는 뜻이다.
자산과세는 정부가 늘 추정을 어려워 하는 요소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단기 변동성이 크기에 얼마나 사고팔지를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주택매매회전율(전체 주택 가운데 사고판 주택의 비중)은 5.5% 정도로 미국의 1.2배, 프랑스의 2배 수준이나 된다.
지난해에는 주택가격 급등으로 매매량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양도소득세 등 관련 세수가 상당 규모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사방에서 나왔다. 지난해 11월 9일 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 부동산 관련 세 부담 증가를 지적하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은 주요국과 달리 주택 거래가 활발하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실제 2020년 11월~2021년 2월 주택 매매량은 2019년 11월~2020년 2월보다 6000호 늘어난 43.3만호에 달했다.
◇ 한국만 세수 추정 어려웠나
정부에서도 할 말은 있다. 세수추계는 추정의 영역이고 예측값이 아니다. 따라서 기업 목표처럼 시장에 대한 기대치를 반영할 수 없다. 법인세나 소득세 등 경제성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세금 추정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자산과세 등 일회성 변수에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
연도별 국세수입은 2018년 293.5조원, 2019년 293.4조원, 2020년 285.5조원으로 떨어졌는데, 미중무역갈등, 코로나 19로 인해 세계경제에 빨간 불이 켜진 시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1년 세수호황을 장담하는 건 쉽지 않다.
경제성장률 등 거시지표와 세금 수입간 괴리의 폭이 점점 커지는 것도 세수추계를 어렵게 한다.
2015년 재정학연구 ‘세수오차가 재정운용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는 경제성장률과 국세수입 증가율 간 상관계수는 1980년대 0.89, 1990년대 0.78이었는데, 2000년~2014년에는 0.42로 떨어졌다. 1980년대에는 경제성장률이 1 증가할 때 국세수입이 0.89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2000년대 넘어서서는 0.42 정도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즉 거시지표만으로 추정하면 그 정확도가 80년대에 비해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게다가 5년마다 호황과 불황을 오간다는 경기변동이 변동 속도가 3년 정도로 짧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오차율 6%는 2019년 세수추계 TF 이전으로 돌아간 것 이상의 결과다.
한국에서 유독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다. 연도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013년 3.2%, 2014년 3.2%, 2015년 2.8%, 2016년 2.9%, 2017년 3.2%, 2018년 2.7%, 2019년 2.0%, 2020년 –1.0%였다. 2020년 코로나 19로 마이너스로 빠졌다고 하지만, 수 퍼센트에서 십수 퍼센트까지 경제성장률이 떨어진 해외 주요국보다 한국의 상황은 월등히 양호했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내에서 기업 간 그리고 가계간 소득-자산격차 확대, 부동산 등 자산가격 폭등과 거래량 증가는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요국들의 공통분모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지난 3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DC에 위치한 싱크탱크 어반 인스티튜트가 발표한 미국 주(州)들의 1분기 주(州)세 수입 총합은 2020년 전년대비 0.4% 감소한 데 그쳤다.
지난해 1~2분기 코로나19로 올해 1분기 세수가 대폭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으나,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증시 등 자산 활황, 고소득 일자리의 유지로 세수가 유지됐다. 그리고 한국과 미국은 EU와 달리 상위 소득자들에게 주로 세금을 걷는 나라들이다.
편성된 예산이라도 잘 썼느냐라고 묻는다면 답변하기가 다소 곤란해진다. 예산은 짰지만 실제로 지출은 하지 않은 불용액이 매년 6~7조원 정도 된다. 불용액은 한해 예산에서 쓰지 않은 나랏돈의 비중을 말하는데 2016년 3.2%, 2017년 2.0%, 2018년 2.3%로 매년 2%의 돈이 남았다. 2019년에는 1.9%, 2020년에야 1.4%가 남았는데, 코로나 19를 감안해 정부가 특별히 관리한 탓이다. 기업이나 가계라면 돈을 남겨 이익을 쌓는 게 목표지만, 정부는 그 반대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돈을 축적하면 세금 수입의 동력인 민간지원에 쓰일 돈이 줄어든다. 민생경제가 어려워 보수적으로 세수추계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전체 정부 장부에서 쓰고 남은 돈인 정부 세계잉여금은 지난해 흑자가 났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은 5조7000억원, 특별회계 세계잉여금은 2조9000억원 흑자였다.
◇ 추경, 함부로 못 쓴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기재부는 늘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 재정지출 규모가 큰 나라는 코로나 19 확산이 심각한 나라이고, 양호한 국가는 상대적으로 지출규모가 작았다. 한국이 코로나 19 모범국이긴 하지만, 재정지출의 폭은 크다고 할 수 없다.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코로나 재정지출비중은 3.4%로 미국(16.7%), 독일(11.03%), 프랑스(7.7%), 중국(4.7%)보다 월등히 낮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6%대 세수 추정 오차는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올해는 정부가 경제 디딤판을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요국도 같이 뛰어오르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 여당은 기재부의 세수추계 오차에 대해 대단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양극화 완화 등 여당이 추진하려던 경제정책이 보수적인 세수추계에 막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코로나 19 추경 때는 여야 간 이견 이상으로 당정 간 이견이 주목받을 정도였다. 여론의 동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7년과 2018년 연이은 세수오차에 대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반성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세수추계 오류에 대해서는 당정 모두 말이 없다. 경기 반등과 양극화 격차를 줄이기 위해 재정확대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당정이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원 범위에서는 진통이 예상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연구기관장 및 투자은행 전문가 간담회’에서 추경예산을 백신공급·접종 등 재난대책, 하반기 내수대책, 고용대책, 소상공인 등 코로나 19 위기에 따른 취약 및 피해계층 지원대책 등을 중심으로 짜겠다고 말했다. 또한, 국채발행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추가 세입이 들어와도 지방정부에 보내야 할 교부금을 빼면 중앙정부에서 추경에 쓸 수 있는 돈은 최대 20조원 정도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다만, 지방재정 교부금은 쓸 수 없는 돈은 아니라 지방정부와 협의를 통해 쓸 수 있는 돈이다. 지방교부금을 추경 계획 자체에서 배제하는 것은 자칫 추경의 주도권을 오롯이 중앙정부가 쥐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지도부 일각에서 전 국민 2차 재난지원금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집합금지로 인한 소급적용까지 검토해서라도 자영업자 손실보상금을 최대한 확보하려 하고 있다.
결정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 19 경기 국면이 몇몇 특정 지점만 틀어막으면 해결되는 상황이냐, 아니면 광범위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냐에 대한 판단에 따라 지원의 폭이 달라진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