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박청하 기자) 대법원이 '사모부동산집합투자기구(펀드)가 투자해 신탁사가 소유한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투자 회사와 신탁회사가 공동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판단을 내놨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임차인(세입자) A사가 자산운용사와 은행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최근 확정했다.
앞서 2015년 12월 11일 성남시 분당구 건물의 1층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내부 일부와 외벽이 전소됐고, 6층부터 12층까지 입주해있던 A사가 보유한 각종 전산 장비와 집기 등이 훼손됐다.
이 건물은 자산운용사와 부동산투자펀드 신탁(자산관리 위탁) 계약을 체결한 은행이 2013년부터 매수해 보유하고 있었다.
A사와 소속 임직원은 화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자산운용사와 은행, 건물 관리회사를 상대로 2016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자산운용사와 은행이 공동으로 A사에 46억4천500만원을, 임직원에게는 1인당 16만∼61만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건물 관리회사를 상대로 한 청구는 인정하지 않았다.
양측이 판결에 불복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민법 758조에 따라 공작물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보수·관리 권한이 있는 개인이나 기관은 '점유자'로서 공작물의 하자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다만 타인의 지시를 받아 지배하는 이는 점유보조자에 불과해서 책임을 면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 건물 주차장 천장의 점유자로서 화재로 인한 공작물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는 집합투자업자(자산운용사)와 신탁업자(은행)이고, 부동산 관리회사는 점유보조자에 불과하여 공작물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자산운용사와 은행은 문제의 주차장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던 건물관리 회사에 책임이 있고, 간접 점유자인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자산운용사가 부동산 관리회사에 업무를 지시하고 예산 범위를 정하는 등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점, 신탁회사는 소유자 지위에 있으면서 대외적으로 건물에 대한 관리·처분권을 행사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책임의 범위도 문제가 됐다. 자산운용사와 은행은 건물의 가액을 한도로 손해배상 책임이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투자신탁재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 책임은 투자신탁재산의 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부담한다고 정하는 자본시장법 80조 2항이 근거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점유자로서 부담하는 공작물 책임은 투자신탁재산의 취득·처분 등과 관련한 이행 책임이 아니다"라며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만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고유재산(신탁하지 않은 재산)으로도 공작물 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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