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민주연구원 부원장) 최근 대선토론에서 기축통화 논쟁이 불거지면서 기득권 지식인들의 공격이 도를 넘어서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골자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축통화국이라 국채를 늘려도 되고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해 정부부채를 타이트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기축통화 여부와 한 나라의 재정 및 부채운영과 무슨 상관이 있으며, 코로나 경제 하에서 재정을 위해 가계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우기는 것은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엄밀히 따지면, 국제간 결제나 거래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국은 미국이 유일하다. 유로화나 엔화 등도 국제통화로서의 위상을 지닌 것은 맞으나 기축통화국은 아니다. 물론, “G10”에 진입한 우리나라 역시 선진국 경제로 평가받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기축통화국은 아니다.
그렇다면,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은 부채를 발행하면 재정제약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부채를 미국보다 낮게 관리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논리도 맥락도 없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선험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한 나라의 국가부채는 크게 정부부채, 가계부채, 기업부채의 합으로 구성된다. 하여, 정부가 빚을 내지 않으면 가계나 기업이 빚을 내야하는 구조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의 재정운영에는 명확한 방향성이 존재한다. 비상경제 상황에서는 정부가 과감하게 빚을 내 가계와 기업 등 민간의 부채팽창 위험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다. 펜데믹 위기 국면에서 재정을 조이면 민간의 부채의존도가 높아져 금융리스크가 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신흥국 등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들이 재정부채를 늘려 코로나 위기 극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부채를 늘려 가계와 기업이 짊어질 부채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정말 그러했는지 수치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세계 주요국들은 유례없는 펜데믹 위기국면에서 정부부채가 급증하는 가운데 가계와 기업부채가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의 정부부채를 GDP에 견주면, 2019년 109%에서 125%로 급증했으나 가계부채는 74%에서 77%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비율은 기축통화국, 비기축통화국, EU, 신흥국, G20 등 어떤 준거지표와 비교해도 과도하게 낮은 게 사실이다.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인용되는 재정건전성 문제가 정부의 재정부담을 민간 주체에게 전가시키는 빌미로 활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추경이 통과되면서 국민경제가 코로나 재정 중독에 빠졌다는 언론 보도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입했으면, 다른 나라들은 멀쩡한데 우리나라만 재정이 파탄에 이를 지경이란 말인가?
작년 10월 기준으로 주요국들의 코로나 재정투입을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의 재정투입은 GDP 대비 6.4%로 OECD 평균인 14.6%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니 GDP의 25% 이상을 코로나 구제지원에 썼다고 치자. 그렇다면, 비기축통화국인 호주(18.4%)나 캐나다(15.9%) 등은 생각이 없이 막대한 재정을 구제지원에 퍼부었단 말인가? 우리나라가 얼마나 코로나 위기에 소극 재정으로 대응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세계주요국들이 과감한 확대재정에 나선 이유는 재정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민생존권에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재정을 중심으로 국민이 관치재정과 국민을 중심으로 재정이 움직이는 미래지향적 재정운영과의 차이다.
지금처럼 국민경제가 정부의 재정 공백을 가계부채로 메운다면 펜데믹 위기극복이 가능할까?
그 답은 민생경제가 부채가 부채를 부르는 부채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경제 하에서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1,862조원을 넘어섰는데, 얼추 계산해도 GDP와 비슷한 규모다. 여기에, 중소기업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대출(417조원, 작년 3분기)까지 포함하면, 실질 가계부채는 GDP 대비 118% 수준으로 늘어난다.
이 뿐만이 아니라, 900조원을 돌파한 자영업자대출까지 감안하면 민간의 부채위험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코로나 이면에 가려진 위험은 재정건전성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현안으로 부상한 가계부채 문제인 것이다.
재정을 위해 국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믿는 자들이나 기축통화 논쟁을 정쟁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기득권 세력들이 민생경제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이해할 리 만무하다. 기축통화국이든 그렇지 않든 국민이 어려울 때 국가가 확대 재정을 통해 민생 구제에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親기업∙親자본 사상이 뼛속까지 물든 자들의 눈에는 “가슴이 웅장해진다”거나 “최고의 똥볼 찼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축통화 이슈로 정부의 민생구제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행태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관치의 잔재들일 뿐이다.
끝으로, 바람직한 재정운영은 국민이 어려울 때 과감하게 곳간을 열어 민생 구제에 나서고, 경제를 다시 살려낸 후 다시 곳간을 채우는 재정운영 역량을 내재화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부채만 관리하면 된다는 협소한 사고에서 벗어나 그 범주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까지 넓혀야 할 시기임에 분명하다.
[프로필] 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dsong2@gmail.com)
◾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 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 전) NH금융연구소장(NH금융지주)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파급효과 진단,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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