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민생경제는 무모한 공공요금 민영화가 부른 물가대란 사태로 수습하기 어려운 비상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공공이 주도하는 물가상승이 민생분야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점차 그 강도와 범위를 더해가고 있다. 1차충격을 준 전 가수(전기·가스·수도)는 2차충격을 위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공공에서 출발한 물가상승 압력은 이제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민생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상반기 난방비 동결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이는 병 주고 약 주는 미봉책으로 결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주도하는 ‘공공요금 민영화’가 위험한 이유는 “보편 인상-선별 지원” 정책이 반복되면서 중산층과 서민을 집중 타격하기 때문이다. 난방비 사태처럼, 2,000만 가구에 충격을 주고 100만여 가구를 구제하면, 1,900만 가구는 맨몸으로 난방비 충격을 받아내야 한다. 위기의 본질은 공공이 적자가 나면 가격 인상을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태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생이 어수선한 틈을 타고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철지난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금은 물가상승이 실질소득 감소, 소비 충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물가대책을 마련할 때다. 물론, 유례없는 물가대란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서는 보편 위험을 보편으로 흡수하는 ‘물가지원금’으로 대응해야 한다. 지원 대상도 취약 차주가 아닌, 전국민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충격을 물가지원금으로 경감해 줄 책임이 있다.
1. 공공발 민생물가 대란이 왜 문제인가?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에서 공공발 물가인상은 사실상 민생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자해행위에 가깝다. 부동산경기 충격으로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민생부채도 금리 충격에 좌초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2019년 이후에 발생한 코로나부채가 900조원을 넘어섰는데, 대출금리는 2배 이상 폭등하며 민생경제를 파국으로 내몰고 있다. 여기에다, 공공요금 인상은 부채발 민생위기를 발화하는 트리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구간에서 공공요금 인상이 가계소득을 잠식하면 적자가구나 한계가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에 얼마나 심각한지 지표로 살펴보기로 하자. 2022년에 경제가 2.6% 성장했는데, 국민소득은 –1.2%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성장의 과실이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민생경제의 소비지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소비지출에서 연금, 사회성보험, 대출이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17년 31.7%에서 2022년 35.3%로 급증했다. 코로나 사태의 한복판에서 소득세도, 연금지출도, 대출이자도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다. 민생의 보편 위험을 선별로 대응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실질 GDP-국민소득 격차(좌) 및 세금/연금/이자 소비 비중(우)>
이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가 터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건전재쟁 기조를 유지하되 민생재정을 확대하겠다는 것은 곳간지기를 위한 캠페인일 뿐이다. 법인세 인하, 공공요금 민영화, 다주택자 중과 폐지 등에 관대하면서도 민생현안에 냉혹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금의 민생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대안은 민생재정 추경을 편성해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소득충격을 조기에 진화하는 것뿐이다. 그 안에 물가지원금을 담아 보편 위험을 보편으로 지원하는 특단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 '공공요금 민영화'는 공공의 문제를 국민에게 넘기는 '가격전가정책'일 뿐이다.
공공요금 인상은 본질은 정부가 공공의 문제를 가격 이전을 통해 국민에게 100% 전가시키는데 있다. 책임의 주체인 정부와 관련 공공기관은 정부 재정, 관련 공공기관 자구노력 등의 수단을 통해 일차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요금인상이 불가피하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고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설령, 공공요금을 올린다 해도 그 방식이 선진적이어야 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물가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정부가 2022년부터 요금 인상에 착수했으나 국민 저항에 부딪혀 불과 1년 만에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 난방비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이미 오른 수준의 충격을 계속 맨몸으로 받아내야 하므로, 이전의 정상 상황으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공공물가 상승이 일견 멈춘 것처럼 보이겠지만, 기실 본격적인 이륙을 위해 몸을 푼 정도로 보면 된다. 올해에도 숨 고르기를 마치고 나면 전가수(전기·가스·수도)를 타고 더 높게, 더 멀리 활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정부가 계획했던 공공요금 인상로드맵이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무모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전기/가스/물가 지수는 2022년 1월 2.9%에서 12월 23.2%로 무려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작년 물가상승률이 5.1%인 점을 감안하면 5배에 가까운 높은 수치다. 특히, 도시가스는 2022년 4차례(4, 5, 7, 10월)에 걸친 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인상분만 5.47원(메가줄당)인데 연간 상승률로 따지면 42%이며, 이는 물가상승률의 8배를 초과한다. 올해 상반기까지 동결하겠다고 했지만, 원래 계획인 최대 10.4원(메가줄당)을 인상한다면 작년보다 2배 정도 더 오를 수 있다. 마치 방향을 잃고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다. 개인적으로, 요금 인상보다 터무니없는 요금폭탄도 국민에게 떠넘기면 그만이라는 발상 자체가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이 정도 충격을 받아낼 수 있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전기요금 인상계획은 더욱더 가관이다. 작년에 19.3원(kWh당)을 인상했는데, 올해 또다시 51.6원(kWh당)을 올려 지난해보다 2.7배를 올릴 계획이다. 전기요금 인상이 잠시 멈추긴 했어도 한전 적자가 33조원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정부의 인내력이 얼마나 갈지 예단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지하철이나 버스, 택시 등 공공요금 인상 압박이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공공적자만 나면 국민에게 가격으로 전가시켜버리는 천박한 시장 논리에 국민이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국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가격 인상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권한만 있고 책임지지 않는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신자유주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민생의 근간이 무너져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쌍팔년도 시장주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해온 공공의 보편적 가치가 철지난 시장 논리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공공기관 민영화가 여론의 벽에 부딪혀 좌초되자 절되자, 이번에는 ‘공공요금 민영화’로 방향을 선회해 민생경제를 집중 타격하고 있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곳간을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3. 보편 타격을 보편 지원하는 '물가지원금'이 유일한 대안이다.
민생위기의 본질은 정부의 “보편인상후 선별할인” 정책이 본질이다. 예를 들면, 비이성적 난방비 인상으로 2,200만 가구의 생활이 어려워지면, 약 1~200만 취약가구를 골라 지원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병 주고 약 주는 정책은 머리와 꼬리가 아닌 몸통인 중산층을 집중 타격하는 구조다. 국민부담을 늘린후 선별로 지원해주는 정책을 반복하면, 중산층이 서민으로 내려가고 서민이 취약계층으로 내려가는 하향평준화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해 민생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다면, 충격의 강도와 정도에 따라 보편으로 구제하는 것이 맞다. 그 해법은 공공물가 대란을 진화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긴급민생재정 추경을 통해 물가지원금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물가지원금을 지급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에서 물가지원금은 가장 넓게 물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소득보전대책이다. 둘째, 실질소득 감소가 내수업종 매출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차단할 수 있는 소비촉진책이다. 셋째, 공공 물가대란의 주범인 정부는 가정경제의 소비지출액 중에서 물가상승분을 지원해 줄 책임이 있다.
물가지원금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소득 수준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민생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보편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물가 충격에 취약한 소득 1분위(하위 20%)의 월 소비지출에 대하여 물가상승분 5%(작년 물가상승률)를 6개월간 한시적으로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이외의 차상위계층은 이를 기준으로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면 된다. 물가지원금을 보편으로 지급해도 소득에 따라 증가하는 소비지출 규모를 감안하면, 물가상승분을 차등으로 지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생재정 예산은 전체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 1분위 기준(소비지출액 * 물가 5% * 6개월)인 40만원을 지급하면 약 9조원이 소요된다. 만약 소득 상위 80%(2분위~5분위)에 한해 가구당 40만원을 지급하면, 약 7조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끝으로,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할 필요는 있으나, 이로 인해 민생재정이 축소되는 우를 범한다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특히, 친기업·친자본 정책에 힘이 실리는 작금의 상황에서 건전재정은 결국 민생재정을 축소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민생재정만큼은 확장재정 범주로 간주하고 금융위기에 준하는 특단에 특단의 민생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로필] 송두한 국민대학교 특임교수
◾ 전)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 전) NH금융연구소장(NH금융지주)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파급효과 진단,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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