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초유의 ‘대출 셧다운’ 공포가 확산되면서 주택금융시장이 일대 대혼란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개발독제 시대에나 있을 법한 대출쿼터제(6%대 캡)는 관치 규제가 얼마나 무모하고 무능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총량규제로 자금중개의 신호체계가 망가져버리면, 자본력과 신용력이 취약한 서민들에게 그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나타난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실수요자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규제에 더욱 박차를 가할 태세다. 분명한 것은 맥락도 원칙도 없는 대출총량 규제로는 공정의 가치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를 키웠나? 그 책임의 8할은 바로 금융당국에 있다.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것처럼 가계부채가 지난 몇 년간 가파르게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당국의 책임이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애꿎은 실수요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지 도무지 애해하기 어렵다.
잠재리스크는 사전적 관리가 필요한 영역이지 사후적으로 부산을 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것도 거칠기 짝이 없는 총량규제를 들고 나와 시장의 자금중개 기능을 일거에 망가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시중은행발 대출중단 사태가 속출하고 있으며, 실수요자의 주거불안정 문제는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실수요자는 내집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있으며, 세입자는 대출이 막혀 전세난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전세대출을 줄이면 세입자는 평수를 줄여 이사하거나 지방과 외각으로 밀려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전세를 반전세를 바꿔 부족분을 비싼 월세로 내고 살아야 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길거리에 나앉게 될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굳이 금융당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번에도 실수요자를 보호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홍남기-고승범” 경제라인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가계부채 잠재부실을 방치한 책임, 실수요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 무식한 규제로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책임 등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 선무당이 사람 잡는 규제당국 리스크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총량규제는 당국이 은행에 한도를 할당하는 배급제와 유사한 조치로 규제 방식이 매우 원초적이고 비시장적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밑도 끝도 없는 “6%대” 총량규제를 갑자기 들이 밀며 대출 봉쇄가 임박했다며 연일 협박 수준의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출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기도 어렵다. 시중은행 대출증가율이 이미 5%를 넘어서고 있는데,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사전 예고도 없이 작전하듯이 “6%대” 기준을 제시하고, 누구든 걸리면 죽는다 하면, 시장의 자금중개 기능이 멈추게 된다. 사실상 6%대 총량규제를 달성하려면 전세대출, 집단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을 모두 막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금융시장은 규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고, 실수요자는 장기 주거계획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알고도 그랬다면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몰라서 그리 했다면 전문성을 수혈해 총량규제를 수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처럼 무지하고 몽매한 총량규제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딱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무지해서 용감할 수 있다. 둘째, 그것도 아니면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렇게 거칠게 국민경제를 압박하는 규제방식은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께서 실수요자 보호를 당부하셔도 규제해야 한다고 하고, 실수요자 피해가 발생했다 하여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홍남기-고승범” 리스크의 본질은 실수요자 보호 원칙이 규제의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규제인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 그렇다면, 지금의 총량규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규제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나?
구조적으로, 대출시장을 통으로 규제하는 총량규제 방식은 실수요자 보호대책을 탑재하기 어렵다. 현행 규제틀 안에서 실수요자 보호대책을 마련한다 해도 실효성 없는 대책에 불과할 것이다. 대출규제에 앞서 실수요자 보호 원칙을 먼저 세우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첫째,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총량규제에서 실수요자 대출을 제외하는 것이다. 실수요 시장과 이외의 시장을 엄격히 구분해 규제로 인한 충격이 실수요 시장으로 넘어오는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이는 작위적인 총량규제로 인한 신용대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수요자에게 원활한 자금중개가 이루어질 수 있다. 부동산투기와 무관한, 거주 목적의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까지 규제하는 것은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남용하는 처사다. 역대 정부에서도 전세대출만큼은 손대지 않았던 이유다.
둘째, 어떠한 경우에도 DSR 산정시 전세대출을 포함해서는 안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상환능력 내에서 실수요자 대출을 관리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DSR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떼일 염려가 없고 세입자의 상환능력과 무관한 전세자금대출은 DSR 규제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DSR 도입시 전세 보증금의 80%(공적 보증비율 80%)까지 대출해주는 기존의 제도 역시 유명무실해 진다. 소득에 기초해 차주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DSR 규제가 대출 한도와 보증비율 등의 안전장치를 무력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중 발표 예정인 전세대출 대책에 DSR 규제가 포함된다면, 금융당국에게 실수요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셋째, 인위적인 금리조정(우대금리 축소, 가산금리 확대 등)을 통해 실수요자 대출을 우회적으로 억제하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글로벌 금리사이클이 상승 주기로 전환함에 따라, 대출의 지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대금리가 사라지고 가산금리가 올라가면서 “금리 급등 ∙ 한도 급락” 현상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은보 금융감독원장까지 금리인상을 통한 대출억제 운동에 동참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뜬금없이 “가계부문 경기대층 완충자본”을 도입한다며 금융기관에 무언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은행대출을 줄이라는 얘기다. 불요불급한 실수요자가 금리를 올린다 해도 대출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실수요자에게 금융비용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은 금리인상 압박을 즉각 중단하고, 은행들이 저리의 실수요자대출을 공급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끝으로, 바람직한 가계부채 관리는 다가오는 위험을 조기에 감지하고 시장질서를 유지하며 부실 고리를 정밀 타격하는 전문성을 요구한다. 지금과 같은 뒷북 규제는 잠재부실을 그대로 둔 채 자본력과 신용력이 취약한 서민들만 집중 타격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현행 총령규제는 서민을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 불법 사금융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프로필] 송두한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부원장
(dsong2@gmail.com)
◾ 공정금융포럼 공동대표
◾ 전) NH금융지주 NH금융연구소장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향후 파급효과 진단(2007),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2012), 경영분석을 위한 고급통계학(2015)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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