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주택담보 수요가 지속되면서 지난 8월 은행권 주담대가 3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은행 가계대출 또한 5개월 연속 증가, 잔액 기준 역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디레버리징(가계부채 축소)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관련 정책 방향의 일관성이 중요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의 ‘8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이 8월 말 기준 1075조원으로 전월 대비 6조 9000억원 늘었다. 잔액 기준으로는 7월에 이어 또 다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 전월 대비 감소 추세를 이어갔으나, 4월 증가세(+2조 3000억원)로 전환된 후 5월(+4조 2000억원), 6월(+5조 8000억원), 7월(+5조 9000억원), 8월(+6조 9000억원)까지 5개월 연속 증가 흐름을 이어왔다.
특히 8월 가계대출 증가폭은 2021년 7월 전월 대비 9조 7000억원이 증가했던 이래 2년 1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었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가계대출 증가세는 주로 주담대에서 기인했다.
8월 은행 주담대는 주택구입 관련 수요가 몰리면서 7조원 증가했다. 2020년 2월 전월 대비 7조 8000억원 증가했던 이후 3년 6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반면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은 고금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에 따른 둔화 흐름이 지속되면서 8월 전월 대비 1000억원 감소했다. 기타대출은 2021년 12월 이후 1년 9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 가계부채 증가 핵심요인은 부동산?
이와 관련해 가계부채 증가 등 최근의 금융 불균형 현상의 핵심 요인은 ‘부동산’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통화정책의 긴축효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인한 주담대 확대로 인해 별 소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은 ‘2023년 9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통해 주택가격이 상승 전환하면서 주담대를 중심으로 은행 가계대출 규모가 확대, 통화정책의 긴축 효과도 제약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가계부채가 주요국과 달리 디레버리징 없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거시경제 및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 불균형은 부동산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자원배분의 효율성 저하와 부동산 경기에 대한 경제의 취약성 증대 등 부작용을 낳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4.5%로 임계치(80% 수준)를 상회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미국(74.4%), 일본(68.2%)보다도 훨씬 높다. 이처럼 과도한 수준의 가계부채는 장기성장세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고, 자산불평등을 확대하는 등 결국 우리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주택가격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내 주택가격은 지난해 8월 이후 하락세로 전환하긴 했으나, 여전히 고평가된 상황이다.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주요 80개국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율(PIR)의 중위값은 2023년 현재 11.9배이다. 그런데 한국은 26배다.
즉 26년간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집 한 채를 겨우 살 수 있다는 의미다.
홍경식 한국은행 통화정책국장은 이와 관련 “(PIR의) 적정 수준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평균이나 다른 나라 수준 등 추세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고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가계부채가 한동안 꺾였다가 다시 급증하는 것은 기준금리 인상 종료에 대한 기대로 인해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를 낮추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 요구되는 가운데 근본적인 대책은 주택가격 상승 심리를 꺾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금융당국이 펼친 일련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정부와 여당에서 청년표심 잡기 차원에서 장기 모기지론 도입이 힘을 받았고, 윤석열 정부 이어서 이같은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빚 내서 집 사라’는 시그널로 작용하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하는 결과가 나왔다. 실제 50년 모기지 상품 도입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2021년 3월이다.
당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이 부동산 가격 폭등 상황을 사과하면서 50년 만기 모기지 대출 국가보증제를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이후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도 이같은 내용에 대해 ‘(50년 만기 주담대를) 연구해 볼 만하다’고 언급하며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윤석열 정부가 2022년 5월 출범 후 3개월 뒤인 8월에 주택금융공사가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출시했는데, 소득이 적은 청년층의 월 상환 부담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이 연속해서 금리를 인상하며 가계부채 관리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것과는 반대 방향의 결정이었다.
◇ 정책 엇박자에 불어나는 가계빚
장기 모기지론이 도입된 결과는 어땠을까.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는 ‘관계부처 합동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은행 등의 50년 만기 주담대의 기본 산정 기한을 40년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지난 8월 기준 전 금융권 가계대출이 5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것에 대한 해법이다.
이에 금융위는 ‘당초 정부가 50년 만기 주담대를 장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으나 결국 시중은행으로 책임을 돌렸다. 금융위는 “정책 모기지 상품은 소득이 낮은 청년층의 주거 실수요 애로 해소를 위해 설계됐으나, 시중은행 상품은 다주택자도 이용할 수 있고 집단대출이 절반을 넘는 등 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설명이다.
올해 초 한화생명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가장 먼저 출시했고, 이후 7월 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시중은행들이 잇따라 해당 상품을 내놨을 때도 금융당국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차주 상환능력이 명백히 입증될 때만 50년 만기를 적용하라’며 규제에 나선 상황이다.
이마저도 ‘상환능력이 명백이 입증될 때’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은행 영업현장 일선에선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당초 금융당국이 대출규제를 완화했던 이유는 부동산 급락으로 역전세, 건설사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우려가 커지자 부동산 연착륙이라는 또 다른 정책목표를 세웠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 정부가 대출규제를 풀면서 전국 집값 하락이 멈췄고, 기준금리 인상 기대감 등으로 인해 다시 강한 반등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가계부채도 폭등하는 중이다.
최근의 금융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주요국의 사례를 참고해보면, 대출 규제 등 거시건전성 정책(MPP)과 통화정책(MP)이 공조할 경우 효과가 컸다. 이에 그간 우리나라에서 MPP와 MP간 정책 조합의 유효성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 역시 중장기적으로 디레버리징을 지속하기 위해선 정책당국 간 일관성 있는 공조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꺾는 정책 대응을 통해 가계부채 축소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형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금융불균형 누증 가능성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정책과 관련해선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통화긴축기 부동산시장 연착륙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 대응했으나, 결과적으로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감이 생기면서 주담대가 급증하고 있다”며 “가계부채와 부동산 연착륙은 상출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정책 균형이 맞춰줘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