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이판식 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이 소설로 쓴 ‘탐진강’이 출간 달포 만에 영풍문고 베스트셀러(문학분야 1위)에 링크되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 5일 초판을 출간한 뒤, 열흘만에 2쇄(10월14일)를 인쇄한 후 현재는 3쇄 인쇄한 책 마저도 재고가 딸릴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는 4쇄를 준비하고 있다.
조세전문가라면 전문서적을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인문교양도서를 출간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다.
사실 역사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저자 ‘은산 이판식’은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문학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문학소년’이었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받은 느낌, 생각 등을 소설형식으로 쉽게 풀어냈다.
동학혁명의 4대 격전지, 전남 장흥 탐진강 석대들의 함성을 소설로 쓴 저자는 우리에게 알려진 역사의 내용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비하인드스토리를 담아냈다.
조선후기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인 전봉준 녹두장군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이후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주역 이방언 남도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저자 이판식은 역사적 사료가 없고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방언 장군의 활약상을 수집하기 위해 틈틈이 자료를 찾아 다녔다.
저자는 정읍세무서장으로 부임하면서 동학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되었으며, 2014년부터 집필을 준비했다. 집필준비를 하면서 고향 시골에서 자료수집은 물론 역사도 다시 공부하고, 사건 현장에서 많은 분을 만나 고증을 했다.
현재 장흥에는 동학군 후손과 관군 후손들이 조상의 같은 제삿날을 위해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슈퍼 등에서 만나더라도 서로 시기하고 반목하고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서로 혈투하다가 전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양쪽 후손끼리는 서로 결혼도 안 한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흘러가는 탐진강에 이러한 반목의 세월을 흘려버리고 이제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판식 저자는 “장흥부 대접주 이방언 장군 후손들의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동학농민군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있으나 아직도 그분들의 원혼을 달래주기엔 미흡할 뿐이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 되새기는 것은 후세를 사는 우리들의 책무이고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책의 의미를 두었다.
저자는 역사적 현장을 사료로 부록편에 담아내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 부록편은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탑, 장흥동학농민혁명기념관, 장흥 남외리 일대, 용산면 묵촌일대, 남도장군 이방언 묘소, 도르뫼 들판(농민군 훈련지), 벽사역 터, 자울재, 모정등(현 장흥고등학교 뒷산), 영회당, 장흥향교, 장흥부 및 장영성, 관아터(농민군 점령지), 장대터(현, 장흥서초등학교 일대), 장평면 흑석장터(농민군 주둔지), 사창터(곡물 보관창고), 장평면 흑석장터 및 사창 일대, 병영성, 사인정, 탐진강과 석대들(영남 금정산에서 발원하여 장흥 석대들을 적시고 강진만으로 흐르는 강으로, 강상류는 예양강, 강 하류는 탐진강이라 부른다), 억불산, 월산재, 월림동 서당터, 월림동 이방언 생가터, 수리재골, 부용산, 천관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135년 전의 조선 민중들을 일본 제국주의와 민씨 척족들이 무참히 학살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던 전남 장흥 ‘탐진강 석대들’(전적 사적 제498호)에서 장렬히 전투하다가 산화한 이항언 남도장군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이다.
‘장흥 석대들’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의 최대, 최후 격전지이자 당시 강진현과 전라병마절도사영, 벽사역, 장흥도호부, 자울재를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지리적 요충지로서 동학농민 혁명군과 관군사이에 많은 사상자를 배출한 전적지이다.
특히, ‘장흥 석대들’ 전투는 동학농민 혁명과정에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군 주력과는 별개로 이뤄진 전투로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부가 모두 체포된 이후에도 항전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다.
농민군 최후의 결전지인 장흥전투, 그 중심에는 남도장군 이방언(1838~1895)이 이끌었다.
이방언(영암) 장군은 일찍이 충남 예산의 임헌회 문하생으로 김한섭(강진)과 함께 성리학을 익혔다.
어느 해에는 장흥지방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는데도 규정대로 조세를 바치라는 독촉이 빗발쳤다.
이 책에서 이방언 장군은 감연히 일어나 장흥부사에게 조세(租稅) 탕감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라감사와 담판해 해결했다고 한다. 그는 향약계를 이끌며 평민을 억누르는 토호가 아니라 의협심이 넘치는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이방언 장군을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은 장성전투에서 장태(대나무 망에 볏짚을 넣음)를 사용한 일이었다.
이 책 ‘탐진강’의 콘텐츠는 파문 장흥부 남면 월림 서당 동백꽃 필적에 남도바람이 천둥을 만나다 사람이 곧 하늘님 여산접의 접주 백산행 장태를 굴려라 집강소 비밀회동 이 나라가 뉘 나라냐 붉은 탐진강 아 강진성, 오남 김한섭 병영성에서 통곡 아 석대들 모략, 석연치 않은 무죄 동백꽃은 떨어지고 등으로 다루고 있다.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고 2019년에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11)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다시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인천이씨 장흥파 일가인 ‘저자 이판식’(전 광주지방국세청장)은 동학농민혁명을 “잊지 않아야, 잃지 않는다”고 외치고 있다.
저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135년 전 조선 민중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동학을 했다. 외세로부터 제 나라를 구해보겠다고 나선 백성들을 일본 제국주의와 민 씨 척족들은 무참히 학살했고 15년 뒤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저자는 “아직도 우리는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변화의 물결에 눈과 귀를 막고 있지 않은지 130여년이 지난 지금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고 일깨우고 있다.
소설가 한승원은 추천사에서 “이 소설의 진짜 숨은 그림은, 어느 다른 고을과 달리 왜 장흥에서 그렇듯 동학이 성하였으며, 이 나라 동학혁명의 마지막 햇불이 왜 장흥에서 타올랐는가에 대한 해답속에 있다. 이 작가의 시각은 장흥, 아니 우리 모두가 나아갈 길을 멀리 내다보기 위한 렌즈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철승 우원장학문화재단 이사장은 격려사에서 “오랜기간 저자가 땀과 집념으로 엮은 동학농민군 이방언 남도장군의 활약상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동학농민운동사에 숨은 뜻밖의 인물, 이방언 장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수하고 은근히 취기가 올라오는 막걸리 맛처럼 전라도 사투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다음은 저자 ‘은산 이판식’(세무법인 비케이엘, 회장)를 만나 ‘탐진강’ 집필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一問一答이다.
▲ 우선 영풍문고 베스트셀러 문학분야 1위를 링크하고 있는데요. 우선 축하말씀 드립니다. 현재 인쇄가 4쇄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한 말씀.
먼저 제 책을 이렇게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말씀드림니다. 동학을 소재로 썼지만 주제는 화해와 용서입니다. 동학난때 두갈래로 나눠 싸웠기에 갈등과 반목도 심했지요. 이제 유유히 흐르는 탐진강처럼 화해하고 용서할때라 생각했고 그 진실을 알아야 하기에 필을 들었습니다.
▲ 치열했던 역사적 현장을 소설형식으로 풀어냈는데, 소설형식을 선택한 이유는.
독자들에게 다가가기에 소설형식이 편했습니다. 논문등은 고증과 집필이 상대적으로 어렵구요. 소설은 쓰는법 책 몆귄 읽어봤고 몆분의 소설가한테 말씀도 들어습니다. 삼국지는 대여섯번 읽었구요.
▲ ‘탐진강’은 ‘역사소설’인데요. 평소 역사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는지요.
2014년 정읍세무서 부임하고 나서 동학을 알았고 학창시절 배우지 못했던 동학을 재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흥에서 마지막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8년 정도 준비했습니다.
▲ 저자 입장에서 책의 중요한 페이지 또는 문장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잊지 않아야 잃지 않는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즉 사인여천이며, 있는사람 없는사람 함께사는 세상 즉 유무상자 등 입니다.
▲ 공직에서 명예퇴임후 책이 출간되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공직중 보다는 공직후가 마음편해서입니다.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 저자께서는 인천이씨 장흥파 일가인데요. 남도장군 이방언과의 후손인지요.
그냥 먼 일가입니다.
▲ 에필로그에 “기미년 만세운동 당시 유일하게 만세를 부르지 못하는 지역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동학난때 장흥지역 남자들이 많이 희생되어 ‘만세’ 부를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 역사적 현장의 흑백사진으로 담아냈습니다. 사료인지 아니면 직접 촬영한 것인지요.
사료도 있고 저자인 제가 직접 찍은 것도 있습니다. 평생을 장흥지역동학연구에 힘쓰신 위의환 선생님의 자료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처절했던 전투를 입체적으로 묘사됐는데, 상상력인지 아니면 특별한 작업들을 했는지요.
전투장면은 사료를 바탕으로한 저의 상상입니다.
▲ 저자의 출생지가 어디인지요. 책속에 우금지 전경(254~255), 장흥부 전도(274~275)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장흥입니다.
▲ 장태를 굴리며 일본군 총포에 맞섰는데요. 당시 이 부분이 획기적인 것 같습니다. 이방언 장군을 ‘이장태’ 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는데요.
우리 시골에선 닭을 장태에서 길렀습니다. 어렸을때 자주봤던 모습입니다. 그 속에 볏짚과 솜을 넣어 방탄물건을 만든것이지요.
▲ 저자는 ‘작가의 말’ 말미에 “有無相資의 동학사상의 세상을 꿈꾸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몰살되었다. 우리 땅에서 우리 사람들이 부르짖었던 동학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라고 밝히셨는데요. 개인적으로 동학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불교 유교는 외래사상이지만 동학은 우리민족의 자주적인 인본주의 반봉건 반외세 사상입니다. 오늘날 혼탁한 사회현상도 일본에 의해 말살된 우리의 사상민족혼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기위해 저항세력인 동학을 처절하게 말살했고 그들의 의도하는 대로 조선은 15년 뒤 식민지가 되었지요. 다시는 그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
▲ 끝으로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태어난 저는 겨울방학땐 서당을 다녔고 학창시절엔 역사를 제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소설속에 조선 주자학의흐름 즉 이기논쟁 사단칠정논쟁 예송논잼 호락논쟁을 제 나름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제사때 조율이시는 왜 올리는지는 우리들이 궁금했던 전통문화도 소개 했구요, 3쇄 찍었고 독자들의 지적도 반영할 겸 4쇄에는 수정 보완할 예정입니다. 이책이 우리의 근대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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