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재회 기자) 우리는 매달 세금을 낸다. 급여명세서에서 빠져나간 숫자를 보며, 혹은 카드 영수증 속 부가세를 떠올리며 한 번쯤 묻는다. 이 돈은 과연 내 삶을 바꾸고 있는가. 지방자치는 제도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의 하루가 실제로 달라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 변화가 체감될 때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세금이 아깝지 않다’고.
신간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에이에프앤커뮤니케이션 펴냄)’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33년간 현장을 지켜온 행정가 오영수가 서울 동작구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부구청장과 구청장 권한대행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정책의 실패와 성취, 그리고 그 결과 시민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담아낸 기록이다. 이 책은 행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행정이 시민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준다.
행정은 삶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행정은 단순한 관리나 집행이 아니다. 삶을 지탱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민원 한 통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데이터 분석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는 불편은 정책으로 구체화 된다. 수첩 속 메모가 지역의 제도를 바꾸고, 한 사람의 절박한 요청이 복지 체계를 새로 짜는 출발점이 된다.
특히 저자는 데이터 기반 행정을 ‘차가운 기술’이 아니라 ‘따뜻한 관찰’로 해석한다. AI 기반 민원 분석, 맞춤형 돌봄 행정, 어린이집과 도서관 운영에 접목된 데이터 사례는 기술이 시민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더 세심하게 살피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시대에도 행정의 중심은 여전히 사람이라는 메시지다.
고립을 관계로 바꾸는 복지
복지에 대한 서술은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노인 돌봄, 장애인 복지, 고독사 예방, 가족 돌봄 체계를 하나의 생활정책으로 연결하며, 행정이 개입할 때 ‘고립’이 어떻게 ‘관계’로 전환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고독사를 막기 위한 촘촘한 관찰, 어르신의 일상을 지키는 돌봄 구조, 장애인의 이동과 교육을 지원하는 정책, 아이와 부모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공간 마련까지.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공동체의 품격이라는 점을 사례로 증명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세금이 복지로 쓰일 때, 그것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공동 투자라는 사실을.
책과 민주주의, 그리고 참여하는 시민
저자는 도서관과 책 문화 정책을 단순한 문화 사업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로 제시한다. 주민참여형 도서관 운영, 책문화 시민총회, AI 기반 독서 추천과 디지털 접근성 확대는 ‘읽는 시민’을 ‘참여하는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토대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도서관, 마을과 연결된 책 정책은 지역공동체를 다시 묶는 실천이 된다. 책을 매개로 시민이 토론하고 제안하며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과정은 지방자치의 성숙을 보여준다. 행정은 그 무대를 마련하는 조력자로 자리한다.
청소년과 청년, 미래를 공동 설계하다
책의 또 다른 축은 청소년과 청년 정책이다. 보호의 대상이 아닌 정책의 공동 설계자로 청소년을 세우는 구조, 마을과 예산, 정책을 연결하는 참여 경험은 지방자치의 미래를 현재의 삶 속에서 준비하는 방식이다.
청년의 도전이 실패로 끝나지 않도록 기록하고 지원하는 행정, 작은 실험을 통해 배우는 구조는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변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참여의 경험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한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거리’에 달려 있다
저자인 오영수 전 동작구부구청장은 말한다. 지방자치의 성패는 권한이나 예산의 크기에 달려 있지 않다고. 행정이 얼마나 시민의 삶 가까이 내려와 있는가, 그 거리의 문제라고. 현장에 서서 듣고, 데이터를 통해 읽고, 정책으로 응답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시민은 행정을 신뢰하게 된다.
『바람이 속삭이는 행정의 노래』는 거창한 이론서가 아니다. 대신 33년의 시간 속에서 쌓인 질문과 답의 기록이다. 정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AI 시대의 행정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지방자치는 어떻게 시민의 하루를 바꿀 수 있는가.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의 의미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은 단순한 재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돌봄이 안정되고, 어르신의 외로움이 줄어들며, 청년이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골목이 살아나고, 도서관에서 토론이 이어질 때 우리는 그 말을 하게 된다.
행정이 데이터 위에 서되 사람을 향해 노래할 때, 정책이 책상 위 문서가 아니라 시민의 식탁과 골목에 닿을 때, 그때 비로소 우리는 확신한다. 세금이 아깝지 않은 행정이 가능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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