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우일 대우M&A 대표) 법인의 매출 및 경비, 이익을 계산하여 세금을 부과하고자 여러 가지 기준을 만들어 규정해 놓은 법인세법이 있다. 이 법인 세법이야말로 공기업은 물론 영리, 비영리법인을 망라하여 정의로운 공평과세를 위한 최고의 바이블이다. 이를 통해 국가운영을 위한 조세수입 대부분이 거두어지고 있다.
과거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구조조정본부장)가 그룹의 경영관리를 하면서 각 계열사의 재무회계를 감사해보면 가장 비리가 많은 부분이 바로 ‘기밀비’라는 항목이다. 기밀비라 함은 거래선 확보유지 등 업무수행 상 부수되는 필요경비로서 외부 증빙을 구비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세법은 모든 원가비용처리가 확실한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데 반해 유독 이 기밀비라는 항목을 두어 아량을 베풀었다. 천라지망이라 일컫는 정도로 세원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촘촘하게 그물망을 친 세법이 이상하게 한쪽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아 세원이 졸졸 빠지게 해놓았다. 물론 일정한도를 두어 초과하지 못하게 했다.
이 기밀비 지급은 주로 임원들에게 개인당 일정금액을 할당해 전부 현금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꼬리를 밟을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대부분 관공서, 거래선이나 사적인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지만 필자의 경험상 관공서, 거래선 쪽은 거의 비자금(회계장부조작하여 빼돌린 돈)으로 지급했고 기밀비는 대부분이 사적인 용도로 횡령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1999년도에 이 독소조항인 기밀비조항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16년 전에 세원누수차단이라는 명분으로 폐지한 기밀비항목이 정작 국민의 세금인 정부예산에서는 지금까지 특활비라는 항목으로 버젓이 존치되며 증빙자료 없이 막 꺼내 쓴 그 용도에 관해 의구심이 폭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에게는 유연한 잣대로 상대방에게는 엄격한 잣대로 들이댄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게는 로맨스, 남에게는 불륜)이며 멋대로 마음대로 휘둘러 쓰는 여의봉(如意棒)이 아닌 여의전(如意錢)인 셈이다.
여의봉을 쓴 손오공은 서천 서역국에서 대승 경전을 구해 중생을 구제하려는 일념으로 여의봉을 썼지만 국가기관의 여의전은 도대체 무슨 일념으로 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을 국가를 위해 쓰는데 증빙이 불요하다는 법칙이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증빙이 불필요한 용처일수록 더 증빙이 필요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대외적 보안만 유지된다면 말이다.
이 세상에 증빙서류가 필요 없는 예산이란 게 무슨 예산인가.
BUDGET(예산)이란 단어를 보면 BUD(새싹봉우리)와 GET(얻다)의 합성어다. 새싹봉우리를 얻기 위해 국가의 정책목적사업을 위한 필요 비용을 미리 헤아려 짠 것이다. 이것에는 반드시 목적과 용처가 있게 마련이고 영수증은 효율적 예산운용관리의 절대 필요사항이다. FEEDBACK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공평과세와 조세법률주의를 원칙으로 한 국민 세금으로 조달한 정부예산이 권력기관의 담당공무원을 위한 사적인 용도로 쓰게끔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은 예산이랄 수가 없다. 면죄부를 부여한 비자금에 불과하다.
필자는 아래와 같이 정부 당국에 주문하고 싶다.
첫째, 특활비 항목을 없애든가 규모를 축소해야한다. 국민의 피땀 어린 세금이기 때문이다.
둘째, 집행의 증빙서류를 갖추되 대외보안이 필요한 것은 철저한 극비서류로 보관한다.
국가운영에 필요한 세금이 특활비라는 이상한 예산항목의 이름으로 개인 공직자들의 사적필요에 의한 쌈짓돈이 된다면 이는 대한민국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셈이다.
서유기라는 소설에 등장한 손오공은 비록 원숭이에 불과하지만 삼장법사의 염불에 따라 여의봉이라는 무기를 들고 온갖 마귀와 요괴를 물리치고 임무를 마취고 성불하게 된다. 여기에 등장하는 마귀와 요괴는 인간의 삿된 마음을 일컫는다.
[프로필]김 우 일
• 현) 대우김우일경영연구원 대표/대우 M&A 대표
•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 이사
• 인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 서울고등학교, 연세대 법학과 졸업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