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관세 부과를 언급하면서 이미 경기침체(Recession) 근심에 빠진 글로벌 경제를 더욱 짓누를 것이란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EU의 에어버스 보조금 지급을 거론하면서 그에 대한 보복으로 110억달러 규모의 EU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EU가 여러 해에 걸쳐 무역에서 미국을 이용했지만, 이는 곧 끝날 것"이라며 지난해 중국을 겨냥했던 것과 같은 논조를 보였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검토에 들어간 관세 부과 목록에 헬리콥터부터 치즈까지 여러 산업부문이 망라돼 있다는 점도 중국과 벌인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무역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2019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그룹 춘계회의를 위해 워싱턴에 집결하는 세계 각국 경제정책 결정자들에게 무역전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 무역전쟁은 아직 안 끝났으며 약해지고 있는 세계 경제가 이것을 다뤄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외에(다른 나라와의) 관계도 재정립하길 원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대서양 무역전쟁'의 공포를 키운 에어버스 보조금 문제가 미·중 무역전쟁만큼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EU에 대한 관세부과 추진이 미·EU 무역협상에서 압박을 높이려는 목적의 움직임이라기보다는 항공산업 보조금 분쟁의 일환이라는 미 관리들의 말을 전했다.
한 무역 관리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14년간 걸려 있던 분쟁이며 별도의 무역 사안들과 연계되지 않는다"며 "미국과 EU는 언제나 관계에서 현안들을 구분지으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사이먼 레스터 무역정책연구 부실장은 블룸버그에 "좋은 징조다. 트럼프 정부는 WTO에 대해 엇갈리는 신호들을 보내왔으나 이번 움직임은 아직 원칙대로 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미국과 EU의 무역협상이 그동안 거의 진척을 보이지 못했던 만큼 양측이 앞으로 본격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중국, EU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그간 벌인 무역분쟁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철회를 위협하면서 협상을 벌인 끝에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을 체결했지만, 각국 의회 비준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더 중요한' 국경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멕시코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USMCA를 흔들어놓았다.
미국의 산업별 고율 관세의 서막을 올린 철강·알루미늄 관세도 계속 부과되고 있어 캐나다는 이에 대한 보복을 검토하는 등 미국에 관세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상도 이달 중순 미국에서 시작된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 새로운 물품무역협정(TAG) 체결을 위한 첫 협상을 오는 15∼16일 워싱턴에서 여는 방향으로 조율 중이라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미국은 최근 개발도상국에 무관세 혜택을 주는 일반특혜관세제도(GSP) 대상에서 인도를 제외하기로 했고 인도는 이에 대해 미국산 농산물 등에 대한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미·중 무역전쟁도 봉합국면이긴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양국이 합의안 작성의 막바지 단계에 들어선 가운데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좋은 합의'가 아니면 아예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끝까지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무역 공세를 펼치는 와중에 한국, 일본, EU, 멕시코 등 세계 여러 나라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도 검토 중이다.
미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토대로 수입 자동차와 그 부품이 미국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카드를 꺼내 보이지 않은 채 만지작거리고 있다.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미국이 수입 자동차에 최대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올해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각각 약 0.3%포인트, 독일은 약 0.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당분간 계속될 세계 무역전쟁에 대한 우려는 글로벌 경제를 계속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IMF는 9개월 만에 세 번째로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해 올해 전망치를 3.3%로 제시했다. 이는 3개월 전 전망치보다 0.2%포인트 하락한 것이며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기타 고피나트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CNBC에 "우리는 무역갈등의 고조를 중대한 리스크로 본다"며 "미국과 중국간 진전이 있었고 가까운 미래에 합의에 이를 수도 있지만, 자동차와 같은 다른 부문들에서 갈등 고조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무역은 이미 급격하게 얼어붙은 것으로 나타났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현재 상황을 나타내는 동행지수에서 올해 2월 세계 무역량은 작년 동기보다 0.5% 감소했으며, 3개월 이후를 보여주는 선행지수에서도 2% 감소해 추가 악화 조짐을 보였다.
미 경제매체 CNBC는 경제적 측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가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경쟁국들로부터 시장을 되찾으려는 것이라면 일시적 관세는 효과가 없고 보호조치가 영구적으로 보여야 한다"며 미국이 '영원한 무역 전쟁'에 갇힐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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