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연합군'이 주주제안을 통해 내세운 이사 후보 중 한명인 김치훈 전 한국공항 상무가 닷새 만에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한진그룹 노조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비롯한 3자 연합을 비난하는 상황에서 3자 연합의 이사 후보마저 돌연 이탈하면서 3자 연합이 주주총회를 앞둔 명분 싸움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김 전 상무는 전날 한진칼 대표이사 앞으로 서신을 보내 조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 반도건설 3자 연합이 추천하는 사내이사 후보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 전 상무는 서신에서 "3자 연합이 주장하는 주주제안에 동의하지 않으며, 본인의 순수한 의도와 너무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진그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동료 후배들로 구성된 현 경영진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을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한 3자 연합 대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3자 연합이 13일 주주 제안을 통해 이사진 후보 명단을 공개한 이후 3자 연합과 김 전 상무를 향해 대한항공 노조를 비롯한 한진그룹 계열사 노조와 대한항공 OB임원회 등의 비난이 잇따르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한항공 노조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고 "3자 동맹이 허울 좋은 전문 경영인으로 내세운 인물은 항공산업의 기본도 모르는 문외한이거나 그들 3자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조 전 부사장의 수족들로 이뤄져 있다"며 "그들이 물류, 항공산업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전 상무는 1982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상무와 런던공항지점장 등을 지냈다. 2006년 대한항공의 자회사로 항공운수 보조 사업을 하는 한국공항으로 자리를 옮겨 상무와 통제본부장을 지내며 국내 14개 공항을 총괄했다.
다만 대한항공에서 상무보로 승진한 뒤 곧바로 한국공항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상 대한항공에서 임원을 한 경험이 없는 데다 한국공항에서도 램프 지상조업 등의 사업을 담당했다. 비상근 1년을 제외하면 2014년 1월까지 한국공항에서 근무하고 퇴직해 이미 항공업계를 떠난 지 6년이 넘었다.
특히 업계에서는 조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 인맥으로 분류된 탓에 조 전 부사장의 '대리인' 자격으로 이사 후보 명단에 포함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전 상무는 항공 경영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인물인데 한진칼 사내이사로 추천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OB임원회의 원로들이 김 전 상무에게 쓴소리를 한 것으로 안다"며 "김 전 상무 본인도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며 사퇴를 결정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3자 연합은 김 전 상무의 돌연 사퇴 소식에 당혹스러워하며 경위 파악 등에 나선 상태다. 3자 연합은 이날 오후 모처에서 이사 후보들과 상견례를 할 예정이었다.
3자 연합 측은 "현재 정확한 사실관계와 경위 등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조만간 (김 전 상무의 사퇴에 대해)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KCGI는 전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사장) 측에 공개 토론을 제안했다.
KCGI는 "한진그룹 경영진으로부터 그룹에 당면한 경영 위기에 대한 입장을 듣고 주주 연합의 제안에 대한 그룹의 수용 여부를 확인하며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한 동료 주주, 임직원, 고객들의 의견을 나누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2월 중 조원태·석태수 대표이사와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