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약일까, 독일까. 방위산업의 한-미 FTA, RDP(상호국방조달협정)

2022.07.04 07:23:08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비즈니스는 돈을 벌기 위한 일련의 적극적 활동이다. 이를 기업 활동이라 하며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만들 수 있는 비교우위 경쟁력이 요구된다. 물론 희소한 상품에 대해서는 예외적일 수 있으나 통상 이러한 규칙을 따른다.

 

여기에 더해 매우 중요한 것이 마케팅이다. 이 과정에는 위법과 무리수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업의 적극적 마케팅이 아니어도 자연스런 환경이 만들어지면 무리하지 않고 영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마스크가 그랬고 이후 백신이 그랬다. 백신 제조사는 체결한 계약서 내용도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구매자에 군림하는 기업이 되기도 했다. 기업의 완전 우위시장이다. 이런 때에는 영업이 따로 필요 없다. 소비자의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얘기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함께 훗날 역사가들에 의해 태평성대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그 밑바탕에는 냉전체제의 종식, 과학의 획기적 발달과 세계의 공장으로서 중국이 있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비교우위 물건의 자유로운 이동은 평화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구현될 수 있다.

 

세계 경제 격랑 속 국내 방위산업시장 환경

 


그런데 최근 들어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은 과거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팽팽히 맞섰던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 대결을 연상시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결과로 끝을 맺을지 섣불리 예단하긴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평화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즉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스럽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불안정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전 세계는 이 전쟁으로 잠시 잊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다시금 일깨우게 됐다.

 

코로나 시국에 풀렸던 엄청난 금액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세계 경제는 물가상승의 압박이 이미 현저했다. 거기에 더해 전쟁으로 물자의 공급 또한 부족해지면서 인플레이션, 나아가 슬럼프플레이션1)까지 우려되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공포 속에 금리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올릴 예정이다. 국민들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1)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성한 말로, 경제 불황 속에서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정도가 심한 것을 슬럼프플레이션(slumpflation)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전시 상황의 위기는 오히려 한국에 호기로 작동될 수도 있어 보인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GDP의 2.8%인 502억 달러(63조 1300억원)가 군비 지출에 쓰였다고 한다.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렇지만 징병제인 한국은 모병제인 다른 나라와 달리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지 않는다. 이를 고려한다면 훨씬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위는 세계의 경찰이라 자임하는 미국이다. GDP의 3.5%인 8010억 달러(1007조 2600억원)를 지출했다. 흔히 ‘천조국’(1000조의 나라)이라 하는데, 그 이상을 썼으니 실로 대단한 규모다.

 

그래서 그런가. 한국의 방위산업 수준은 세계에서 수위에 속한다. 지난해 한국 방산 수출은 사상 최대 규모인 35억 달러의 천궁Ⅱ 요격미사일을 UAE(아랍에미리트)에 팔았고, 호주와는 약 10억 달러의 K9 자주포 수출계약에 성공했다. 전체적으로 지난해 기준 세계 6위권의 수출규모다. 올해는 그 이상의 실적을 예상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최강 전차로 알려진 독일 레오파드2A7과 한국의 주력 전차 K-2 ‘흑표’가 노르웨이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쉽게 독일 전차가 선정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70cm 이상 쌓인 적설 등 혹독한 환경에서 온갖 테스트에서도 독일 전차에 밀리지 않고, 더불어 가격 경쟁력도 있어 올 연말에 결정될 이 사업 결과에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다. 호주의 차기 장갑차(레드백‧50억~75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의 천궁Ⅱ 요격미사일, 차기 호위함, 비호복합 방공 체계(총 60억 달러 이상), 폴란드의 FA-50 경공격기(20여억 달러) 및 말레이시아‧콜롬비아의 FA-50 경공격기(총 17억 달러 이상), K-2 전차(최소 3억 달러 이상) 수출 사업 등이 착착 진행 중이다. 이대로만 간다면 지난해를 뛰어넘는 세계 5위권 방산 수출국으로 우뚝 서게 된다.

 

기술력 갖춘 국내 방산물자, 수출 위한 전략 필요

 

모두에 기술한 바와 같이 기업 활동은 기본적으로 좋은 물건을 좋은 값에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어야 하며, 이윤을 남겨 팔 수 있는 영업력이 있어야 한다. 통상 영업은 매우 힘든 업무영역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의 백신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이 우리에게는 그러한 때이다. 그동안 상시적 우리의 불안 요소로 평가받는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장본인으로만 작용해왔다.

 

그런데 한참 동안 누려왔던 평화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실전에 무기장비를 쓸 기회를 갖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는 곧 경험 없는 그 무기 장비가 과연 실전에서 유효하게 작동해 자국을 지켜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현존하는 북한의 위협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적의 침략 대응 훈련과 함께 한국 방산분야의 가열찬 연구‧개발의 원동력이 됐다. 한국의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극적 원인이 결과적으로 실전에 강한 방산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끔 작동했다. 이런 결과가 최근에 빛을 발하는 상황으로 반전됐다. 북한의 존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등극한 순간이다. 아이러니하지 아니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물거품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됐다. 그리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강력한 자주 국방이 그 어느 우방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됐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많은 나라들은 무엇보다 전비 지출에 인색하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

 

반면 방산물자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과 같은 나라는 세일즈 영업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졌다. 여러 심각한 경제지표들을 뒤집을 만한 화끈한 수출 실적을 낳을 수 있는 옥동자이기도 하다. 한국으로선 새로이 등장한 부가가치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선 천조국 시장인 미국에 적극적으로 진입할 필요가 있는 것은 자명하다. 시장 다변화라는 측면으로도 그렇지만 미국의 막대한 방산시장은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시장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차세대 장갑차 프로젝트(OMFV)와 150억~300억 달러에 달하는 미 해‧공군 고등전술훈련기 사업이 있다. 기술력과 실전력을 겸비한 한국 방산물자는 이 사업에 뛰어들 충분히 자격이 있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에 있다. 현재 미국의 국방산업 조달시장은 기술력 등만 갖췄다고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시장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미국산 우선구매법(Buy American Act; BAA)’이 있다. 미국산 구성품 비율이 55% 이상 되지 않으면 50%의 가격할증 패널티를 주어 미국 국방부 조달시장에 사실상 진입을 불허하는 법률이다. 즉 1억 달러의 가격으로 제안을 하게 되면 실제로 1억 5천 달러의 가격을 적용받게 되어 가격경쟁력을 현저히 떨어뜨리게 하는 법이다. 더 나아가 현재 55%의 미국산 비율이 올해는 60%, 2024년 65%, 2029년 75%로 계속해서 상향 조정될 예정이다.

 

대놓고 외국산 제품을 차별하는 법이다. 혹자는 WTO 정부조달협정과 한-미 FTA에 정면으로 위배되지 않느냐고 반발할 수 있다. WTO 정부조달협정은 기본적으로 내국민대우와 비차별적원칙을 기본으로, 대응구매(offset)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가지 협정 모두에 위배되지 않는다. GATT 제21조에서 ‘자국의 중대한 국가 안보의 이익보호를 위하여 취하는 필요한 조치에 대하여 GATT상 모든 의무가 면제’되도록 허용하는 포괄적 예외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2). 정부조달 분야에 대해 상호 개방을 약속한 한-미 FTA에서도 국방부 조달 품목 대부분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이 또한 힘을 쓸 수 없다.

 

2) 참조: “새롭게 떠오르는 국제통상의 핵심이슈, ‘안보’”(월간조세금융, 고태진, 2022.06)

 

RDP 잘 활용하여 美국방산업 조달시장에 참여해야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상호국방조달협정(Reciprocal Defense Production-MOU; RDP-MOU)이다. RDP는 원래 미국과 동맹 간 군 장비 등의 표준화 및 상호 운용성을 증진하고 국방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되는 양해각서(MOU)였다.

 

그런데 해당 MOU에 타국의 계약자들이 차별 없이 미국 기업과 같은 경쟁 체제로 국방조달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조항이 있어 우회적으로 BAA 장벽을 피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 MOU에는 이미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세계 28개 동맹 및 파트너국이 가입되어 있다. 즉, RDP 체결을 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의 방산 네트워크에서 제외된 외톨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새 정부는 지난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환영할만한 일이다. 거시적 방향성은 훌륭하다. 미안한 얘기지만 위기감(전쟁 상황)은 비즈니스 측면에선 최적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미 FTA 체결시 국방 분야를 제외한 이유 또한 타당하다. RDP 체결은 곧 한국도 미국 기업에 시장을 열어 주어야 하며, 이는 다시 말해 국내 영세 방산 기업들이 이미 고도의 기술이 확보된 미 방산업체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형 무기 도입 시 기술을 이전받는 절충교역 방식을 취해왔던 우리의 전통적 전략을 RDP에서는 제외해 달라 요구할 수 있다. 여러모로 쉬운 게 없다. 하지만 가야할 길이다. 예상되는 우려를 면밀히 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한 후 협상에 임해야 한다. 한국의 경제지형을 바꿀 만한 현재와 미래 산업이기 때문이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현)경인여자대학교 무역학과 겸임교수
• (현)관세청 공익관세사
• (현)「원산지관리사」및「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현)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전)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전)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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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telekeb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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