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가산세에서 자유로워진 1국 다(多)협정에서의 관세 절세 모델

2020.03.18 08:02:43

 

(조세금융신문=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한때 폐쇄적이었던 우리나라는 개방화에 대한 한을 풀듯 동시다발적으로 주요 교역국과 FTA를 잇따라 발효시켰다. 현재 2019년 10월 1일 발효된 한-중미1) FTA를 포함해 총 16개의 FTA 협정을 발효시켰고, 56개국(2020년 1월, 발효기준)과 FTA를 체결했다.

 

발효를 열심히 준비 중인 MEGA FTA, RCEP과 협상중인 MERCOSUR2), 한중일 FTA 등까지 따져본다면, 명실 공히 FTA HUB국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는 FTA 협정 대상이 겹치는 국가들이 꽤 있다. 협상의 상대가 여러 개로 뭉쳐있는 국가 연합과의 협정이 그러하며 동남아시아 10개국3)으로 이루어진 ASEAN과 같은 경우도 해당된다.

 

1) 중미 : 니카라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파나마


2) MERCOSUR(남미공동시장, 4개국) :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

3) 아세안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브루나이,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우리나라는 베트남이 속해 있는 ASEAN과 이미 2007년 FTA를 발효시켰지만 좀 더 수준 높은 협정의 필요로, 베트남과 개별 협정을 다시 맺었다. 한국의 제4위 투자국이며, 한참 성장·발전하고 있는 베트남과 좀 더 깊이 있는 FTA 체결은 양국 발전에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약 3년간의 협상 끝에 2015년 12월 20일 발효됐다.

 

인도네시아와도 같은 이유로 CEPA를 타결하여 대통령의 재가와 국회의 비준만이 남아 있는 상태다.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와도 협상 진행 중이다. 아세안의 맹주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와 각각 1:1 협정을 다시 맺고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중국, 인도 등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는 한-아세안 FTA와 한-싱가포르 FTA, 중국은 한-중 FTA와 APTA(아시아태평양무역협정), 인도도 마찬가지로 한-인도 CEPA와 APTA로 중첩되어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곧 발효가 기대되는 RCEP4)은 회원국이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하여 총 16개 국가에 이른다.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모두 우리나라와 이미 FTA를 체결한 나라들이다. 이런 협상들이 완성되면 1국 3개 이상의 협정이 비일비재 나올 것이다5).

 

여러 개 협정 중 유리한 협정 쓰면 돼

 

기업 입장에서는 같은 나라와 거래를 하더라도 여러 교차하여 있는 2개 이상의 협정을 어떻게 비즈니스에 활용해야 할지 여간 난감하기 짝이 없을 수 있다. 그럼 이런 경우 무역 당사자들은 도대체 어떤 협정을 적용해야 법 위반이 아니면서 최고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본인이 적용하고 싶은 협정을 아무거나 선택하면 된다. 어느 협정을 적용해야 처벌을 받지 않는가라는 방향으로의 접근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다만 본질적인 문제로 2개 이상의 협정 중 어떤 협정을 적용시키는 게 좋은가라는 고민은 해 볼 만하다. 그런데 이 경우에 대한 해답도 비교적 간단하다. 적용 가능한 협정에서 수출입 당사자에게 유리한 협정을 적용하여 신고하면 된다.

 

농구공을 중국에서 수입하는 업체라면 중국과 체결된 두 개의 협정 즉, APTA와 FTA 중에서 낮은 세율의 협정을 적용하면 관세를 아낄 수 있다. 농구공의 관세율이 APTA에서는 5.6%, FTA에서는 0%이기 때문에 APTA보다는 FTA의 적용이 5.6%나 되는 큰 세율 차의 관세액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수입자는 수출자에게 한-중 FTA 원산지증명서를 요청해서 이를 근거로 FTA 양허세율로 신고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 주의할 것은 원산지기준은 고려하지 않고 세율만을 둔 결정이므로, 만약 두 개 협정 중 세율은 FTA가 유리하나 원산지기준이 엄격하여 그 기준에 미달하고, APTA는 원산지로 충족이 된다면 APTA 세율이라도 적용받는 게 당연히 유리할 것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세율과 더불어 원산지기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더 유리한 협정으로 치유하기

 

그럼 다른 사례를 한번 보자. 현대인들이 건강하면서도 맛있는 식단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각광받는 음식이 베트남의 ‘월남쌈’이다. 채소가 거의 음식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저칼로리, 고 섬유질,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섭취할 수 있고 상큼하면서 구수하고 개운한 소스 맛과 소화 잘 되고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쌀 맛의 조화가 환상적이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각광받는다.

 

이 월남쌈이 인기를 끌면서 반드시 들어가야만 하는 ‘라이스페이퍼’의 한국 내 수입량이 증가했다. 베트남산(産) 물품에는 관세율을 결정할 때 한-아세안 FTA와 한-베트남 FTA 중 유리한 것을 자유롭게 선택6)해서 신고하여 수입하면 된다.

 

4) RCEP :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

5) 경제 상황은 고정되지 않고 생물과 같이 계속해서 진화하고 변화하기 때문에 더 많은 다양한 협정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체결될 것이기 때문에 더 복잡한 상황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6) 라이스페이퍼에 적용할 수 있는 관세율은 기본관세 8%, WTO협정관세 27%, 아세안 5%, 베트남 0%의 4가지가 적용될 수 있으나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협정관세율만 나타냈다.

 

라이스페이퍼의 한-아세안 FTA 협정 세율은 5%이지만, 한-베트남 FTA에서는 0%이다. 5%라는 관세율의 차이는 웬만한 알찬 기업의 1년 이익률보다 높은 수치이다. 수입자는 베트남을 원산지로 하는 라이스페이퍼에 대해서는 한-아세안보다는 한-베트남 원산지증명서를 받아 수입신고를 하는 것이 유리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부분의 수입자들은 수출자가 보내준 무역서류 즉, 인보이스, 포장명세서, FTA와 같은 원산지증명서를 받아 별 고민 없이 그대로 수입신고7)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위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7) 가격신고, 납세신고를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수입신고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수출자가 한-아세안 FTA 원산지증명서를 보내주어 이를 토대로 별 고민없이 그대로 수입신고를 했다면, 수입자는 내지 않아도 될 5%라는 큰 세율의 관세를 내야만 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중소기업에는 그 아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추후 수입자가 한-베트남 FTA 원산지증명서가 있다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보자.

 

그래서 수출자에게 한-베트남 FTA 원산지증명서를 요청하고, 수출자도 이에 기꺼이 응해 추가적으로 발급해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미 지나간 일이므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다음부터 잘하면 될까. 그렇게 하기엔 너무 아깝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납부한 5%의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보정과 수정절차를 통한 유리한 협정의 재적용

 

관세법에서는 ‘보정’ 또는 ‘수정’이라는 제도를 운영하여 납세의무자가 잘못 신고한 것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다.

 

위의 사례에서 애초에 불리하게 신고했던 5%의 한-아세안 FTA를 수정신고 등을 통해 최초의 협정관세 적용을 취소하여, 기본관세 8%를 모두 납부한 후 더 유리한 한-베트남 FTA 협정관세 사후적용8) 신청을 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0%의 관세율을 적용받아 1원의 관세도 내지 않게 되는 행복한 결말을 보게 된다.

 

8) 이 경우 당연히 새로 적용받고자 하는 협정의 원산지증명서가 협정에서 정한 바에 따라 유효하여야 하고, 당초 수입신고수리일로부터 1년 이내에 새로운 협정의 사후적용이 들어가야 하는 등의 기초적 조건은 갖춰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프로세스에서도 사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바로 가산세 부분이다. 수정신고를 하고 가산세를 납부해야 하므로 이에 대한 부담을 안고 가야하는 리스크가 있다. 따라서 다른 협정의 재적용을 통해 납부하지 않게 된 관세액과 그 과정 속에 납부해야했던 가산세를 비교해서 가산세보다 절세액이 큰 경우에만 저 복잡한 절차를 거칠 의미가 있을 것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있을 수 있나?

결국 내야할 세금이 없다면 납부할 가산세도 없어

 

그런데 최근 매우 유의미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전지분유를 수입하는 데어리팜(주)은 한-미 FTA에 따른 협정관세율(0%)를 적용하여 수입신고를 했다. 서울세관은 원산지증명서가 미국에 소재하지 않은 수출자 명의로 발급된 것을 발견하였다.

 

 

당연히 협정위배에 따른 협정관세 적용을 배제하고 양허관세 미추천세율(176%)을 적용, 데어리팜에 관세와 가산세를 부과했다.

 

데어리팜은 미국 소재 생산자 명의로 발급된 원산지증명서를 재발급 받아 이를 보완 제출하는 동시에 협정관세 재적용을 신청하였고, 서울세관은 관세 본세를 전액 환급했다. 문제는 가산세는 돌려주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데어리팜은 이에 불복, 결국 법원 소송으로까지 비화됐다.

 

소송의 최종 결과로 법원은 관세청이 아닌 납세의무자인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가산세 부과의 근거가 되는 법률규정에서 본세의 세액이 유효하게 확정된 것을 전제로 납세의무자가 법정기한까지 과세표준과 세액을 제대로 신고하거나 납부하지 않은 것을 요건으로 하는 무신고·과소신고·납부불성실가산세 등은 신고·납부할 본세의 납부의무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에 이를 따로 부과할 수 없다.

 

이는 관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번 판결(대법원 2016두53180)의 주된 요지다. 즉, 부족한 관세액이 ‘없는’ 이상 관세 가산세 납부의무만 ‘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잘못 적용된 협정의 치유과정에서 완전하지 못해 찜찜했던 가산세 부분도 모두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완전한 치유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납세자 기업들은 수출자가 보내준 서류들을 그대로 믿지 말고 항상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빨리빨리 서둘러 일처리하다가 오히려 굉장히 큰돈과 시간의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초에 잘못 신고했다 하더라도 이를 빨리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며, 알게 되었다면 번거롭지만 수입신고수리일로부터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지 않도록 치유의 과정을 서둘러 밟아야 함은 마땅할 것이다.

 

행정이 기업 활동에 장애가 되어선 안 돼

 

다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오류 신고로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세금을 납부하여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다른 유리한 협정을 적용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본세율이든 MFN세율이든 관세를 내야한다. 더불어 가산세9)도 같이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협정관세 사후적용 신청에 의해 관세를 환급받고 또한 별도의 신청으로 가산세를 돌려받는 식이다. 협정관세 사후신청으로 관세를 돌려받더라고 가산세의 환급을 별도로 신청하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하는 체계이다. 이런 형식은 한편 매우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부당이득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의 치유 프로세스는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오는 아둔한 세무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처음의 협정을 배제하는 보정 또는 수정을 통해 MFN 세율의 관세와 가산세를 모두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협정을 재적용하면서 냈던 관세를 다시 돌려받고 또한 신청에 의해 가산세도 돌려받아야 한다. 어차피 돌려받을 것을 왜 납부케 하여 기업의 자금 융통과 복잡한 행정절차에서 오는 압박을 받게 하는지 모르겠다.

 

중간절차 생략하고 곧바로 재적용할 수 있게 해야

 

이런 방식보다는 애초 적용됐던 협정에서 곧바로 다른 협정으로 정정10)하게끔 해준다면 중간에 세금을 냈다 돌려받는 불편한 과정이 생략될 뿐만 아니라, 모르면 포기할 수밖에 없는 가산세도 애당초 발생하지 않는다.

 

9) 실무적으로 관세사에게 대행을 의뢰하면서 발생할 수수료도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10) 관세법에서 언급하는 정정이 아닌, 이미 신고한 것을 바꾸는 일반적인 의미로 ‘정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행정은 서비스다. 관세법은 경제법이며, 궁극의 목적은 국민경제의 발전에 있다. 관세법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다. 기업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걸림돌이 되어 쓸데없는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될 일이다.

 

 

[프로필] 고태진 관세법인한림(인천) 대표관세사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 관세청 공익관세사
• NCS 워킹그룹 심의위원(무역, 유통관리 부문)
• 「원산지관리사」 및 「원산지실무사」 자격시험 출제위원
• 중소벤처기업부, 중기중앙회, 창진원 등 기관 전문위원
• 고려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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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진 관세사·경영학 박사 telekeb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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