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에 한화 약 2800억원을 배상하라는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판정이 나온 것에 대해 불복, 취소 신청을 검토키로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ICSID 판정이 나온 직후 “대한민국 국민의 피 같은 세금이 단 한푼도 유출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며 중재판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론스타 측이 취소 신청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2차 분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일 정부는 론스타 사건 중재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을 위한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판정 후 120일 이내에 취소 신청이 가능하므로 우선 판정문 분석을 시작하고, 향후 대응 계획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앞서 ICSID 론스타 사건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31일 우리 정부에 론스타 측이 청구한 금액인 46억7950만 달러(한화 기준 약 6조1000억원) 중 약 4.6% 수준인 2억1659만 달러(약 2800억원)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동시에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가 2011년 12월3일부터 이를 모두 지급하는 날까지 한 달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에 따른 지연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현재 수익률 기준이라면 약 185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정부가 론스타 측에 지급해야 하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순수 배상액 2800억원에다 지연이자 185억원, 변호사 보수 등 소송비용으로 지불한 비용 478억원을 합쳐 약 3463억원 세금이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법무부와 우리 정부는 중재판정부의 판정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한동훈 장관은 “정부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당시 승인심사 과정에서 국제 법규와 조약에 따라 차별 없이 공정, 공평하게 대응했다는 입장”이라며 “론스타 청구액보다 많이 감액됐으나 정부는 중재판정부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재판정부 소수의견이 우리 정부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만 봐도 이번 판정은 절차 내에서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 정부는 취소 신청 등 후속조치를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론스타의 악연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5조9000억원대에 외환은행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글로벌 위기가 발생, 계약이 파기됐고 2012년 하나은행에 외환은행을 3조9157억원에 매각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더 비싼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과 부당과세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46억8000만 달러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한국 정부가 가격 인하를 압박했고 국세청이 한국‧벨기에 이중과세방지협정에 따른 면세 혜택을 주지 않는 등 부당 과세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 소수의견서 실마리
정부가 중재판정부의 판정이 나온 직후 즉각 취소신청 절차를 밟기로 결정한 데에는 결정문에서 다시 따져봐야 할 여지가 있는 요소가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중재판정부 측 판정은 론스타가 청구한 청구금액 중 95.4%를 제외한 4.6%만 배급하라며 일부 패소 결정한 것인데, 패소 사유에서 소수의견이지만 우리 정부 측 논리가 그대로 수용된 부분이 긍정적이란 것이다.
결정문 내용을 쟁점별로 살펴보면, 중재판정부는 관할 쟁점 관련 우리 정부 측 주장을 인용해 2011년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 발효(2011년 3월 27일) 이전의 정부 조치 및 행위에 관해선 관할이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HSBC 관련 청구 및 일부 조세 청구는 본안 판단 범위에서 제외됐다.
금융 쟁점 관련해선 중재판정부는 론스타와 하나은행간 외환은행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행위는 투자보장협정상 공정‧공평대우의무 위반이라고 봤다. 일부 관할이 있는 조세 청구의 경우 우리 정부의 과세처분에 위 투자보장 협정상 자의적‧차별적 대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세 쟁점에 대한 론스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 중재판정부는 금융당국 심사가 지연된데 대해 우리 정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 2800억원과 그에 따른 지연 이자를 론스타에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한 것이다.
다만 중재판정부 소수의견을 보면 향후 현재 우리 정부가 준비중인 취소신청에 다소 유리한 지점이 있다.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으로 인한 유죄 판결로 인해 금융당국의 승인 심사가 지연됐으므로 이는 론스타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우리 정부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다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이는 정부가 론스타측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하며 가격에 개입한 적 없다고 주장했던 것과 맥락이 같다. 정부는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치는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바람에 매각 승인 일정 등이 늦어졌다고 지적해왔다. 론스타가 2006년 외환은행을 매물로 내놨을 때 검찰이 ‘헐값 매각’ 논란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고 2007년에는 외환카드 주가조작을 통해 부당이익을 챙긴 의혹이 제기되며 또 다른 수사가 진행됐으며 2010년 하나은행과의 협상 진행 시에는 국내 은행 매입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겼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는 것이 그 예다.
한 장관은 이같은 승인심사 지연에 대해 “론스타 임원들이 2003년 외환카드의 허위감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조작한 것에 대해 2012년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2007년에는 론스타의 미국 부회장 등에 대해 범죄인인도청구가 이뤄진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재판정부 3명 중 1명의 소수의견은 ‘론스타의 주가조작 수사가 유죄로 확정되며 금융당국의 승인 지연은 정당했고, 론스타가 스스로 자초해 우리 정부 책임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단에 따르면 우리 배상액은 0원이다”라고 강조했다.
◇ 분쟁 장기화 피하기 어려워, 시간‧비용도 고려해야
일각에선 정부가 중재판정부 판단에 불복 취소 신청을 해도 배상 책임을 완전히 덜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법무부가 지난 10년간 판정 취소 사례를 분석한 결과, 10% 정도 사건에서 일부 또는 전부가 취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인정 비율이 높진 않은 셈이다.
결과적으로 취소 신청을 제기함으로써 그만큼 시간이 소요되고 이에 따른 이자만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무부가 취소 신청을 할 경우 최종 판정까지는 1년 넘는 시간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취소 신청 사건이 장기화되면 그 기간 만큼 추가 지출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국제중재 소송에서 법무부가 소홀하지 않게 탄탄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는 점이 명확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어설픈 정책 판단이 향후 상상할 수 없는 법적 분쟁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즉흥적이고 단선적인 정책결정은 절대 지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 판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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