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정부가 올해 30조원으로 추산되는 세수펑크 대응을 위해 환율대응 및 서민주택 관련한 곳간을 헐어 쓸 계획이다.
부자감세로 인한 세금손실부담을 서민 주택 재정(주택기금)과 전 국민 생명줄과 같은 환율 방어막(외평기금)에 떠넘기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전 국민을 담보로 올해 추가 부자 상속‧증여세 감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것이 관철될 경우 연간 수조 단위의 기금 재정 및 지방재정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고질병인 취약한 내수를 더 악화시키게 되며, 한국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게 된다.
2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
이날 기획재정부는 올해 29.4조원 세수펑크 대응 방안을 밝혔다.
기금재정에서 돈 빼 쓰고, 국가 보유 재산을 팔고, 지자체나 각 국가사업에 주기로 되어 있는 돈도 주지 않겠다는 방안이다.
기업으로 치면 자산 팔고, 하도급 대금 안 주겠다는 것과 유사하다.
기금은 나라 재정의 일종으로 특수한 나라 사업 목적으로만 쓰는 돈이다.
정부가 돈 급할 때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기금법이라는 벽을 쳤지만, 윤석열 정부는 각 기금의 연골에 해당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을 통해 편의적으로 돈을 빼 쓰고 있다.
정부가 올해 기금에서 쓰려는 돈은 외국환평형기금에서만 4.0~6.0조원, 주택도시기금 2.0~3.0조원, 다른 여러 기금에서 모은 돈 4.0조원(공공자금관리기금), 국유재산관리기금 등에서 3.0조원 가량이다.
◇ 주유소에서 불장난
외국환평형기금(이하 외평기금)은 전 국민의 생명줄과 같은 환율 방어선을 관리하는 기금이다. 주택도시기금은 서민주택사업 곳간이다.
기재부는 외평기금에서 4.0~6.0조원 정도 빼 쓰겠다고 모호하게 계획을 밝혔다. 여기엔 배경이 있는데 현재 환율이 심상찮다.
28일 기준으로 1달러 당 1388원에 달하는 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7일 미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달러 환율은 한은이 원하는 것보다는 굉장히 높게 올라 있고 상승 속도도 크다며 우려했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 압박이 굉장히 커지기에 내수는 물론, 국내 제조업체 수입단가를 목 조르게 된다.
이 마당에 외평기금을 빼 쓰면 당연히 단기 환율대응력이 떨어지게 되고, 환율대응에 실패하면 세수손실보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외평기금을 쓰지 않으면, 다른 데서 빼 쓸 돈이 없다.
정부는 주유소(외환 방어선)에서 불장난(사실상 외평기금 전용)을 하고 싶은데 불장난하다가 주유소(외환 방어선)를 날려버리면 안 되니, 달러환율상황이 안 좋게 가면 4.0조원,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가면 6.0조원까지 빼 쓰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관건은 외평기금 예탁금 문제가 있다.
외평기금은 지금 상태가 안 좋아서 돈을 빼주기는커녕 돈을 꿔와야 하는 상황이다. 외평기금은 달러를 사서 창고에 쌓아둔 게 아니라 달러로 여러 자산을 사두는 데 그렇게 사둔 자산에서 손실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외평기금을 빼 쓰면 그 부담은 더 커지는데, 외평기금이 갚을 빚을 깎아버리겠다는 방안이 외평기금 예탁금 축소다.
외평기금이 투자도 하고 덩치를 불리는 건 외환방어막을 일정 수준 두텁게 유지하기 위해서인데, 예탁금 축소는 그 방어막 두께를 얇게 만든다.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에 있어 환율은 국가안보와 다름없다. 환율방어막 약화는 국가안보의 약화라고 볼 수 있다.
◇ 털리는 서민주택 재정
주택도시기금에서 2.0~3.0조원을 빼 쓰겠다는 건 외평기금에서 많이 빼 쓸 수 있으면 2.0조원만 빼 쓰고, 외평기금에서 적게 빼게 되면 3.0조원까지 쓰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을 빼 쓴다는 이야기는 이달 초부터 나왔다.
기재부가 9월 26일 세수재추계 결과 올해 세수펑크를 29.6조원 날 거라고 발표하자마자 보수매체에서는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정부 내부에서 올해 하반기 환율 상황이 좋지 않아서 외평기금을 마음대로 꺼내 쓰긴 어렵고, 어디선가 다른 기금에서 돈을 빼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퍼트렸다.
주택도시기금은 덩어리가 커서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사업계획에 따라 돈을 주지 않으면 하도급기업들이 힘들어지고, 게다가 서민주택과 관련된 재정까지 세수펑크 막는 데 빼 쓰면 부자감세로 인한 세금펑크를 서민주택재정으로 막는 꼴이기에 명분도 약하다.
그런데 거기까지 손을 댄다는 건 서민 쯤은 얼마든지 조를 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를 밝힌 셈인데, 정부 서민주거복지, 서민지원 계획이라는 건 말로는 수백조, 수천조, 얼마든지 약속할 수 있다.
그러나 실행의지는 오로지 돈만이 담보한다. 마음이 있으면 말 없이도 돈을 쓰고, 마음이 없을 때 말만 요란하다는 건 동서고금 똑같다. 돈 없으면 마음도 없다.
◇ 팔리는 나라 부동산
‘국유재산관리기금은 정부청사와 관사 등 국유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신설된 기획재정부 소관의 공공기금입니다. 행정목적 상 필요하지 않게 된 토지, 건물 등 국유재산을 매각해 기금의 재원을 마련하고 이 재원은 청사나 도서관 등을 건설하는 데 사용됩니다.’
캠코국유재산포털에는 국유재산관리기금의 뜻이 잘 나와 있다.
한 마디로 나라가 보유하는 부동산인데 그걸 팔아치워서 끌어 쓰겠다는 뜻이다.
급매물은 제값 못 받는다는 게 상식인데, 그걸 사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언론에선 퇴직 고위공무원들이 모여 저렴하게 이자 끌어다가 그 부동산 사서 공동건물주로 쏠쏠한 이익을 챙긴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온다.
만일 나라건물 입주자에 관공서 등이 있는데, 그 나라건물을 팔면서 새 주인이 그대로 임차계약을 승계하게 되면, 건물주였던 나라는 월세살이가 되고, 개인들은 그 월세 받아다 이자 내고 공짜 이익을 얻는 게 가능하게 된다.
기금 내 잔여 현금이 있으면, 그거 쓰면 되지만, 그게 없다면 부동산 팔게 된다.
정부는 이 국유재산관리기금에서 3.0조원 가량을 빼 쓸 계획이다.
공공자금관리기금은 각 기금들의 여윳돈을 모아서 굴리는 곳이다. 기금들의 연골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돈을 빼 쓰면 힘쓸 때 관절이 상하게 된다.
◇ 하청 대금 미루기
정부가 사업을 하면, 정부는 원청이 되고, 도급 사업자는 하청이 된다.
정부가 사업예산을 세웠다는 뜻은 도급 계획을 짰단 뜻이고, 하청들은 원청이 사업을 개시해서 돈을 주는 걸 기다리게 된다.
정부는 세수펑크로 인해 7.0~9.0조원 정도 통상적 불용을 하겠다고 밝혔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추가 사업을 미루거나, 돈 줄 걸 미루겠다는 뜻이다. 사업을 아예 안 하려면 국회 통해서 감액경정을 해야 하는데 야당이 다수인 국회와 전혀 소통을 하지 않으니 감액경정도 안 한다.
지방자치단체 교부세(금) 6.5조원을 배정 유보하겠다는 것도 본질은 같다.
원래 지자체의 본질은 중앙정부가 모든 지역 사정을 알 수도 없고, 알려면 중앙정부가 비대해져서 효율성이 떨어지니, 지역별로 지방정부를 만들어서 지역 맞춤형 사업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려면 중앙이 틀어쥐던 재정을 지방에 넘겨줘야 했는데, 누군가의 결사반대로 나라지출의 60~70%를 지방정부가 쓰는데, 나라세금의 65~70%는 중앙정부가 쥐는 기형적 구조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지방정부가 필요한 돈을 중앙정부에서 타 쓰는, 중앙-지방정부 간 기이하고도 실질적인 원하청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기재부가 교부세를 유보한다는 건 한 마디로 하청대금을 미루겠다는 뜻이다.
◇ 원인은 행정부 독단
기금 빼 쓰고, 나라재산 팔고, 하청대금 미루고 이런 기이한 일을 하면서 세수펑크를 방어하는 이유는 ‘윤석열 행정부 독단’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행정부는 2022년 법인세 감세 등을 추진했고, 다수 야당은 새 정부의 첫 정책은 어지간하면 수용한다는 여야 관행에 따라 수용했다.
그로 인해 2023년 경상성장률이 3.3% 성장을 했음에도 국세는 –13.1%로 역행하면서 경제성장과 국세수입 간 왜곡이 발생했고, 2023년 –56.4조원의 세수펑크가 발생했다.
세수펑크가 발생하면, 통상적으로 국회에 국채발행을 요청하거나(돈을 빌리거나) 추진사업을 몇 개 없애야(돈 쓸 곳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국채발행도, 추진사업을 줄이지도 않았다.
국채발행을 하면 국회에 사정해야 하는데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 돈 좀 달라고 허리 굽히는 꼴이 된다.
추진사업을 줄이는 것도 국회에 사정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하나 더 고려해야 할 게 여당이다.
추진사업을 줄이려면 여야 지역구에 분배해야 한다. 경상도 지지 정부라고 해도 호남 쪽 예산만 줄일 수 없다. 그런데 일부 경상남도 지역구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데, 세수펑크를 이유로 그런 곳의 예산을 깎으면 국회의원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자칫 여당 내 내분이 발생하는데, 국정지지도가 내려가는 상황에서 지역구 의원들을 붙잡으려면 돈 외에 딱히 방법이 없다. 지역구 예산을 챙겨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금을 빼 쓰고, 불용하고, 지방교부세(금)을 줄이고 있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기금은 전 국민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뜻이고, 불용을 한다는 건 내수를 끌어내리겠다는 뜻이며, 지방교부세(금)을 줄이면 여야 지역구할 것 없이 광역 데미지를 준다.
이때 특정 지역구 쪽의 데미지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대통령이 줄 수 있는 특별교부세다.
지방교부세는 법에 의해 정해진 만큼 주는 돈이고, 특별교부세는 특정 지역에 특정 사유로 돈이 필요할 경우 중앙정부가 내려보낼 수 있는 재량적 돈이다.
이걸 결정할 권한은 사실상 대통령에게 있고, 필요에 따라 여당 지역구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려운 게 특별교부세로 막는 것도 한도가 있다.
특별교부세도 –29.6조원의 초대형 세수펑크 영향권 내 들어가 있다.
같은 여당 지역구라고 해도 특별교부세의 상대적 격차가 발생한다. 그러면 지역구들 사이에서 말이 안 나오기 어렵다.
현재 윤석열 정부는 내년에 연간 수조원의 세금이 줄어드는 최상위 부자 상속‧증여세 감세를 추진하고 있다.
그게 관철된다면, 거액의 세금 손실이 발생하며 이는 전 국민이 부담하게 된다.
재정은 사람과 같아서 피(돈)가 팽팽 돌고, 몸(사업)을 자주 움직여야 튼튼해진다.
부종, 경맥동화, 일부 신체기능 약화 등이 누적되면 다수의 장기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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