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당국이 종합병원장, 대형 학원장, 유명 사모펀드 전직 임원, 금융회사 지점장 등 이른바 사회적 ‘엘리트’로 구성된 시세조종 세력을 적발했다.
이번 사건은 약 1년 9개월간 단일 종목에 1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시세조종 사례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공동으로 꾸린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의 1호 사건이다.
23일 이승우 주가조작 근절 합동대응단장은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현재 경영권 분쟁 중이라고 공시된 코스피 상장사 단 한 종목이 주가조작에 이용됐다”며 “종목명이 알려지면 (해당 종목 주가는) 하한가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장이 종목명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해당 발언 직후 DI동일 주가는 장중 급락해 하한가에 도달했다. 시장에서는 DI동일이 금융당국이 언급한 ‘그 종목’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빠르게 퍼졌다.
DI동일은 섬유소재와 전기 및 전자 부품용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로, 연결 기준 연매출이 약 7000억원 수준이다. 실제로 지난해 DI동일에서는 과거 행동주의 펀드 KCGI, 라데팡스 등에서 부대표를 역임한 신민석 씨가 포함된 소액주주연합과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상장폐지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해 거래가 정지되기도 했으며, 주가도 비정상적인 등락을 반복했다.
◇ DI동일 “피해자일 뿐, 불법 세력과 무관”
논란이 확산되자 DI동일은 즉각 해명에 나섰다. 이날 서태원 DI동일 대표이사는 입장문을 통해 “당사는 해당 사건과 전혀 무관하며, 불법 세력의 주가 조작과 관련된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이 ‘피해 기업’이라고 표현했는데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회사는 직접적인 연루자가 아닌, 조작 대상이 된 기업일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당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엄정한 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초 2만4000원 수준이던 DI동일 주가는 올 1월 5만원을 넘기며 정점을 찍었으나, 이후 주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다가 이번 금융당국 발표 이후 급락해 2만원대까지 밀렸다.
◇ ‘작전 기간 1년 9개월’…1000억 쏟은 치밀한 시세조종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번 작전세력은 2024년 초부터 최근까지 약 1년 9개월 동안 특정 종목을 장기적으로 시세조종했다. 종합병원, 대형학원 등을 운영하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주축이 됐고 이들과 전직 사모펀드 임원, 금융사 지점장 등 금융 전문가들이 공모했다.
이들은 법인자금, 금융기관 대출금 등을 통해 1000억원 이상의 시세조종 자금을 조달했고, 해당 종목의 유통 물량 상당 부분을 장악한 후 고가 매수, 허수 주문, 시·종가 관여, 가장매매·통정매매 등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거래량과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은 수십 개 계좌를 통해 분산 매매를 시도하고 주문 IP를 조작하거나 자금 흐름을 은폐하는 등 정교한 수법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은 이들이 주가조작으로 얻은 부당이득은 400억원, 실현된 시세차익은 230억원, 현재 주식 평가액은 1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했다.
◇ 지급정지’ 첫 사례…과징금 2배까지
주목할 점은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올해 4월 도입한 ‘지급정지’ 제도를 처음으로 이 사건에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주가조작에 사용된 것으로 의심되는 수십 개 계좌에 대해 조사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자금 인출을 막는 지급정지 조치가 내려졌다.
합동대응단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증거 등을 기반으로 추가 조사를 마무리하고 엄정조치할 예정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금융당국은 부당이득의 최대 2배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금융투자상품 거래 및 임원선임 제한 등의 신규 행정제재를 적극 적용해 ‘원 스트라이크 아웃’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도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합동대응단이 수사 중인 사건은 해당 사건을 포함해 총 5건이다. 이들 사건 역시 모두 강화된 과징금 체계와 규제 대상에 해당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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