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임화선 변호사) 최근 시효이익 포기와 관련하여 중요한 대법원 판결이 나와서 소개하고자 한다. 기존의 대법원 판결을 변경한 것이어서 더욱 주목되는 사안이다.
원고는 피고로부터 4차례에 걸쳐 총 2억 4000만원을 차용하였는데, 그중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피고에게 1800만원을 일부 변제하였다.
이후 원고 소유 부동산에 대하여 실시된 임의경매에서 작성된 배당표에 관하여, 원고는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므로 피고에 대한 배당액이 실제 대여원리금을 초과한다는 등의 주장을 하면서 배당표 경정을 구하는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 소멸시효 및 시효이익의 포기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기존의 시효이익 포기 추정의 법리]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통해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한편 민법은 이러한 법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이를 미리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고(제184조 제1항), 반대해석상 시효완성 이후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허용된다.
시효이익의 포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채무자가 그 사실을 알면서 이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성립한다. 반면 소멸시효 중단사유 중 하나인 채무승인은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리고 이를 인정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므로, 단순한 채무 인식과는 구별된다. 즉, 시효이익 포기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감수하겠다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성립한다.
기존의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등, 이하 ‘추정 법리’)를 적용해 왔다. 이에 따라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거나 일부 변제한 경우에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사건 원심도 이러한 추정 법리에 따라 원고가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 일부를 변제함으로써 시효완성의 이익을 포기했다고 보아 원고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배당이의의 소]
그러나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위와 같은 추정 법리를 타당하지 않다고 보아 기존 입장을 변경하였다.
대법원은 “원고가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1800만원을 일부 변제한 사실만으로 곧바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일부 변제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동기와 경위, 자발성 여부, 변제액과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액 사이의 차이, 변제 당시 시효기간 도과 정도, 변제 전후의 언동, 당사자의 관계와 거래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권리 포기와 같이 중대한 불이익을 초래하는 의사표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며, 특히 묵시적 의사표시의 경우 그 의사를 쉽게 추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추정 법리는 일부 변제라는 사실만을 근거로 시효이익 포기를 쉽게 인정해 왔으므로 이러한 엄격 해석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론]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사정만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추정하고, 채무자에게 그 추정을 뒤집을 부담을 지웠다. 실제로는 번복이 가능하더라도, 일단 추정이 성립되면 이를 깨는 것은 쉽지 않았으므로 채무자를 법이 예정하지 않은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하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추정 법리를 폐기하고,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권리 포기 의사의 해석에 있어 엄격성과 신중함을 강조해 온 대법원 판례의 일반 원칙에도 부합하며, 타당한 방향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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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임화선 변호사
•법무법인(유)동인 구성원 변호사
•한국연구재단 고문변호사
•중부지방국세청 고문변호사
•법률신문 판례해설위원
•사법연수원 3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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