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하청노동자 무덤' 오명 벗을 수 있나?…안전계획 수립해도 산재 여전

2025.12.02 15:22:59

산재 근절 위한 ‘안전특별진단TF’ 발족 이후 3개월만인 11월 한 달간 하청노동자 3명 사망
철강 계열사 포스코 최근 10여년간 하청노동자 50명 사망…시민단체 등 '위험 외주화' 지적

(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실행하고 산업재해 예방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즐겁게 일하고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는 산업안전문화 조성의 선두에 서겠다’

 

이는 지난 8월 1일 포스코그룹이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짐한 내용이다.

 


포스코그룹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건설계열사인 포스코이앤씨에서 4건,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1건을 포함해 총 5건의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포스코그룹은 산재의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 위해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안전관리 혁신계획’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포스코그룹이 당시 발표한 ‘안전관리 혁신계획’에는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직속의 ‘안전특별진단TF’ 신설 ▲안전관리 컨설팅 전문 자회사인 ‘포스코세이프티솔루션’ 설립 ▲안전예산 대폭 확충 ▲선(先)집행 후(後)보고 원칙 하에 안전예산 집행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한 ‘위험 외주화’ 방지 대책 준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중 장인화 회장 직속으로 설립된 ‘안전특별진단TF’의 경우 학계·공공기관 등 외부 전문가, 직원, 노동조합, 현장 대의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구성원으로 포함시켜 재계·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하지만 포스코그룹이 심혈을 기울여 마련한 ‘안전관리 혁신계획’도 끝내 노동자들의 사망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안전관리 혁신계획’ 발표일로부터 3개월 가량 지난 11월 5·11·14·20일 나흘 동안 연달아 철강사업 계열사인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산재로 인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간 동안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고 원청·하청 노동자 9명이 부상을 입으면서 시민단체·노조·업계 일각에서는 포스코그룹이 수립한 ‘안전관리 혁신계획’에 대해 무용론(無用論)까지 제기했다.

 

◇ 포스코, 10여년간 총 57명 사망…사망자 중 50명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포스코그룹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인 포스코의 산재 이슈는 단순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11월말 민주노총이 공개한 ‘포스코 2016~2025 중대재해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여년간 포스코 산하 포항제철소 및 광양제철소 등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해 총 5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중 87.7%에 속하는 50명이 하청업체·외주·계열사 소속 노동자다.

 

2016년에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총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이들 모두 지우건설 등을 비롯한 하청업체·외주·계열사 소속 노동자였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국내 포항 마그네시아공장 뿐만아니라 인도네시아, 태국 등 해외 공장에서 산재가 발생해 노동자 총 3명(원청 1명, 하청 2명)이 사망했다. 2018년에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7명이, 뒤이어 2019년에 총 7명(원청 3명, 하청 4명)의 노동자가 각각 포항·광양제철소에서 작업 도중 숨졌다.

 

2020년 한 해 동안 포항·광양제철소에서는 모두 9명(원청 2명, 하청 7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로인해 포스코는 당시 고용노동부로부터 기획감독·특별감독·정기감독·안전보건감독 등 네 차례에 걸쳐 집중 조사를 받았다.

 

이후 2021년과 2022년에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4명과 5명이 각각 사망했고 2023년에는 5명(원청 1명, 하청 4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다.

 

포항·광양제철소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올 3월 21일 포항제철소 냉연공장 코일 포장 설비를 정비하던 노동자 1명이 기계에 끼여 숨졌고 7월 14일에는 광양제철소 소결공장 노후 집진기 배관 철거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작업지지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추락사했다.

 

11월 한 달 동안에는 무려 4건의 산재가 연달아 발생하면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같은달 5일 포항제철소 스테인리스 압연부 소둔산세공장에서는 기기수리 사전 작업 중 유해가스(불산 또는 질산 추정) 노출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11일에는 광양제철소에서 개포작업을 위해 등반하던 노동자 1명이 숨졌고 14일 포항제철소에선 슬래그 운반 덤프트럭에 노동자 1명이 치여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다. 20일에는 포항제철소 STS제강 4제강 공장에서 청소작업하던 노동자 6명이 노출된 CO(일산화탄소)가스를 흡입해 부상을 입었다.

 

문제는 올해 포항·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산재로 숨진 노동자 6명 모두 하청업체 등에 속한 노동자라는 점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산재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이후에도 포스코에서는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사고가 줄지 않았다. 여기에 포스코이앤씨 등 다른 계열사에서 발생한 사고까지 더하면 산재 사망사고는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며 “이에 비춰볼 때 포스코그룹의 경우 가히 ‘하청노동자의 무덤’이라고 지칭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 시민단체·노조 “포스코, ‘위험 외주화’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시민단체, 노조 등에서는 포스코그룹이 실효성 있는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험 외주화’ 방지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 관계자는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 대부분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위험 외주화’ 관행이 흔하다 보니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피해를 더 많이 입는다”면서 “하청업체를 상대로도 안전장비 지급, 사전 안전교육 등을 실시한다고 하나 현장에서는 ‘수박겉 핧기’ 수준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고 발생 후 대처도 문제다. 일단 포스코는 다른 기업에 비해 산재 발생시 정보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노조나 노동자를 상대로 사고와 관련된 정보 공유가 일절 없다”며 “산재를 막으려면 노조·노동자들이 참여해 각 공정별 위험 요소, 작업구간별 주의점, 작업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상호간 확인해야 하는데 이러한 절차가 전혀 없다”고 문제삼았다.

 

또한 그는 “최근 포스코는 ‘안전특별진단TF’를 구성하면서 여기에 다수노조만 참여시켰다”며 “다수·소수 가리지 말고 전체 노조, 더 나아가 현장 실무 노동자를 대거 TF에 포함시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뒤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다수 기업에서 ‘위험 외주화’가 여전한 이유는 비용절감이라는 경제적 논리가 무엇보다 앞서기 때문”이라며 “위험 작업 등에 하청업체를 고용하면 원청은 직접 고용으로 인한 퇴직금, 보험료, 복리후생비 등의 고정 비용과 함께 산재 발생시 법적·도의적 책임 및 기업 이미지 손상 위험까지 전부 하청업체에 전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험 외주화’ 과정에서 원청이 1차, 2차, 3차 하청업체까지 계약을 맺는 다단계 하도급 형태로 번진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며 “이때 단기 계약직 등 비숙련 인력이 위험도가 높은 작업에 투입되고 이에 따라 현장에 안전 사각지대가 생겨나면서 산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반면 포스코그룹의 ‘안전관리 혁신계획’이 수립 초기단계인 만큼 산재 예방을 위한 향후 조치들을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한국노총 포스코 노조 관계자는 “그간 포스코그룹은 산재 예방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책정하긴 했다. 허나 항상 경영자 위주 즉 상급 관리직책 중심으로 안전관리 제도를 만들어 실효성이 적었다”며 “예를 들어 실무 노동자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바쁜데 준수해야할 각종 제도와 규정이 신규로 대폭 늘어나자 이를 회피하려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번 ‘안전특별진단TF’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경영진에 노조의 의견을 직접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 이후 TF 구성원들이 산재 예방 대책을 마련하고자 논의 중인 단계에서 사고가 연달아 터졌다”며 “현재 하청업체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등 안전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방안을 TF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1월 포항·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한 가스노출 사고 등도 조사결과가 나오는데로 경영진을 비롯한 TF 구성원들과 논의해 문제점 파악과 해결방안 마련에 나서는 등 노동자 보호를 위한 활동을 계속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 ‘위험 외주화’ 방지 위한 정부 당국 대책은 아직

 

포스코 등에서 발생 중인 ‘위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정부 당국의 대책은 좀 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더불어민주당 산재 예방 TF 관계자는 “앞서 지난 11월 17일 발표했던 연내 산재 사망자 3명 이상 사업자에 대한 최소 30억원 과징금 부과와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법안은 야당 반대로 인해 입법이 지연된 상황”이라며 “하도급 계약시 안전 관련 비용 계산을 규정하는 등 ‘위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여러 법안이 이미 국회에 올라왔기에 ‘위험 외주화’ 방지를 위해 별도로 산재 예방 TF가 준비 중인 사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 정부와 공동 논의해야할 과제도 있는 만큼 추후 정부와의 논의 과정에서 추가적인 산재 예방 대책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부 관계자는 “지난 9월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해당 대책에 ‘위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방안도 담겼다. 현재 관련 법률 개정과 예산 반영 등이 남은 상황”이라며 “내년부터 종합대책이 본격 시행된 이후 현장에 미치는 효과 등을 분석해 추가 대책 마련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고용부, 포항제철소 가스노출 사고 수사 이원화…중대재해 및 산업사고 각각 수사 중

 

지난 11월 5일 및 20일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가스노출 사고는 고용부가 부서별로 이원화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부 경북지청 관계자는 “11월 5일·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안은 광역중대수사과가, 가스노출 등 산업사고 관련 사안은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가 각각 담당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함께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사안에 대해 수사를 펼치고 있다”면서 “두 산재 사고는 각각 특별수사관을 투입해 별개로 수사를 실시 중이며 아직 수사 초기 단계인 만큼 수사 완료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다. 단 수사가 완료됐다해도 검찰이 수사 자료 검토 후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수사를 명령할 수 있는 만큼 수사 완료시점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세금융신문’은 ▲현재까지 ‘위험 외주화’ 및 산재 예방 대책 준비 상황 ▲기존 대책의 실효성 개선 방안 ▲안전예산 현장 적용 효과 ▲11월 산재사고 이후 TF 구성원간 소통 상황 ▲8월 이후 추가 산재 예방 대책 마련 현황 등을 포스코그룹측에 문의했다.

 

이에 포스코그룹측은 “지난 8월 ‘안전특별진단TF’를 발족하고 그룹 안전관리 체계 및 현황을 진단해 개선 과제를 도출하는 중”이라며 “TF에는 학계, 기관 등 외부전문가들과 직원, 노조 등 대의기구 및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포스코그룹은 안전 전문 컨설팅회사인 SGS, dss+ 등과 안전 관리 체계 혁신을 위해 협력 중이고 현재 컨설팅이 진행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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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주 기자 sierr3@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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