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통 ‘버블’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모든 버블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포닌(saponin)은 오히려 몸에 이로운 ‘좋은 버블’을 만들어 내는 성분이다.
‘사포닌’이라는 이름에 비누를 뜻하는 라틴어 ‘sapo’가 담겨 있듯, 사포닌을 포함하는 물질은 물에 풀리면 거품을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사포닌은 인삼, 대추, 콩, 도라지, 더덕, 미역, 다시마, 퀴노아 등에 함유되어 있으며, 겉으로는 거품이 먼저 눈에 띄지만, 그 본질은 우리 몸을 보호하고 균형을 돕는 기능성 성분에 있다.
오늘날 AI를 둘러싼 논쟁도 이와 닮았다. 일부에서는 AI를 과도한 기대가 만든 ‘버블’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나쁜 버블은 기대만 크고 실체가 없을 때 생기지만, AI는 이미 산업과 행정, 우리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AI는 국가, 산업, 국민과 기업에 좋은 버블을 일으키는 '사포닌'과 같은 존재이다.
기업들은 AI로 업무를 자동화하고 비용을 줄이며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고객 상담과 번역, 소프트웨어 개발, 데이터 분석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는 이미 실무 도구로 자리 잡았다. 이는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경쟁력이다.
AI는 특정 산업의 유행 기술이 아니라 전기와 인터넷처럼 사회 전반을 떠받치는 기반 기술로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AI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는 공공 행정에도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무역은 디지털화되고 물류는 초고속으로 움직이며 범죄는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마약 밀반입, 불법 외환거래, 원산지 위반, 우회 수출 같은 위협은 국경을 넘는 속도가 빨라졌고, 방식은 더욱 교묘해졌다. 과거의 인력 중심 관리만으로는 이 복잡한 흐름을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다.
관세행정의 본질은 단순한 통관 절차 관리가 아니다. 공정한 무역 질서를 세우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기업과 국민이 정당한 기회를 얻도록 공정의 사다리를 지키는 것이다.
사다리가 무너지면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고, 성실한 기업일수록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결국 관세행정은 국경을 지키는 동시에 기회를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관세청은 AI 관세행정의 비전을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빈틈없는 경제 국경 수호”로 설정했다. AI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과 데이터를 결합해 국경 관리의 수준 자체를 끌어올리는 전략적 기반이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우범 화물 선별, 여행자 통관 등 11개 분야에서 AI 기반 위험분석·선별 모델이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 모델을 더욱 정교화하고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AI는 수많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해 위험의 패턴을 읽어내고, 사람이 놓칠 수 있는 미세한 징후까지 탐지한다. 이는 단순히 적발률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라, 위험은 정확히 차단하고 정상 거래는 더 빠르게 통과시키는 정밀한 국경 관리로 이어진다.
현장에서도 AI는 새로운 눈이 되고 있다. AI 융합 통관 영상 관리 시스템(X-Sync)은 X-ray 영상에서 마약, 총기류 등 위해 물품의 특징을 자동 분석하고, 과거 적발 사례와 유사한 영상을 즉시 찾아 판독자에게 알려준다.
경험 많은 전문가의 판단에 AI의 분석 능력이 더해지면서 단속의 정확성과 속도는 동시에 높아진다. 이는 국민 안전을 지키는 방패이자, 정당한 무역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AI 융합 통관 영상 관리 시스템은 기존에 판독자에게 분리되어 제공되던 X-ray 영상과 화물 신고 정보를 하나의 화면에서 동시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현한 AI 기반 통관 혁신 사업이다. 이를 통해 판독자의 작업 편의성을 높이고, 우범 화물 식별의 정확성과 속도를 함께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요 기능으로는 먼저 화물 신고 정보를 X-ray 영상에 동시에 표출하여 판독자가 화물 특성과 영상을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우범성 식별 능력을 강화한다.
또한 총기·도검류 등 위해물품에 대해 영상 판독 시 자동 알림 기능을 제공하고, 마약 등 특정 은닉 패턴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판독을 지원한다.
아울러 과거 마약 적발 사례 등과 유사한 이미지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통해 사후 정보분석과 위험관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향후에는 실증 라인을 추가로 증설하여 AI 모델의 정확도와 시스템 편의성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현재 인천공항세관 특송센터에 2기가 구축되어 있으며, 앞으로 인천세관 특송센터 등에 2기를 추가 설치하여 총 4기의 실증 라인을 운영할 예정이다.
AI 관세행정의 효과는 단속 강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효율성, 공정성, 국민 편의라는 세 축에서 행정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먼저 효율성이다. 반복적이고 저위험 업무를 AI가 처리하면 인력은 고위험·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행정 비용은 줄고, 수입신고 심사나 환급 처리 같은 민원 업무 속도는 빨라진다.
AI 위험도 분석을 통해 검사 역량을 고위험 화물에 집중하고 일반 화물은 신속히 통관시키면, 기업의 물류비용과 시간 부담도 줄어든다. 빠른 통관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다음은 공정성이다. 통관, 환급, 품목분류, 관세평가 등 복잡한 제도는 정보와 경험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AI 상담과 예측 서비스는 이러한 정보 격차를 줄인다.
특히 전문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에게는 공정한 출발선을 제공하는 도구가 된다. 규모가 아니라 실력으로 경쟁하는 무역 환경을 만드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최근 미국 통상정책 변화로 원산지 판정과 관세 문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AI 기반 지원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될 수 있다.
또한 AI 분석은 국산 둔갑 우회 수출, 관세 탈루, 불법 외환거래 등 공정의 사다리를 훼손하는 무역 범죄를 조기에 탐지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공정한 시장은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데이터와 기술을 통해 불공정을 차단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마지막으로 국민 편의다. 해외직구와 개인 통관이 급증하는 시대에 24시간 AI 상담 서비스는 국민이 언제든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 또한 AI X-ray 분석을 통해 마약, 총기류, 불법 식·의약품 등 위해 물품을 더욱 정밀하게 차단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국가의 기본 역할도 한층 강화된다.
AI는 거품처럼 사라질 기술이 아니다. 이미 산업과 행정의 구조를 바꾸고 있는 현실의 기반이다. 관세행정에서 AI는 더 빠르고, 더 공정하며, 더 안전한 무역 환경을 만드는 핵심 도구가 되고 있다.
관세청은 앞으로 내부 직원, 기업, 국민 모두가 쉽게 활용할 수 있는 AI 관세행정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공정을 위한 기술로서 AI를 활용하겠다는 의지다.
경제 국경을 더욱 촘촘히 지키고, 정직한 노력의 가치가 보호받는 무역 환경을 만들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누구도 걷어차지 못하는 튼튼한 공정의 사다리를 세우는 것. 그것이 AI 관세행정이 지향하는 미래이며,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다.
[프로필] ▲1969년생 ▲경남 밀양고 ▲서울대 경영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박사 ▲행시 36회 ▲관세청 서울세관장 ▲부산 세관장 ▲국무조정실 조세심판원 상임심판관 ▲관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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