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비화 ㊸]이철희·장영자 사건<下>

2020.01.25 06:00:00

 

(조세금융신문=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지난 호에 이어서>

이들의 사기 수법은 앞서 말했듯이 대화산업이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자금사정이 어려운 회사들을 대상으로 빌려준 사채를 갑절이 넘는 견질 어음을 받아서 이것들을 사채시장에 할인해서 증권투자를 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을 거래하게 되는 단면을 본다.

 

장영자는 주로 은행장만을 상대했다. 특히 장 여인의 경우 거액 예금을 미끼로 은행장들을 불러내곤 했다.

 


조흥은행과 관계를 맺기 전에는 장 여인은 당시 박동희(朴東熹) 주택은행장을 상대로 끈질기게 교섭을 벌였으며 정춘택(鄭春澤) 외환은행장을 불러내서도 해외투자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었다.

 

“이규광 씨 이야기도 꺼내면서 기100억원의 예금을 해주겠다기에 사실 솔깃했지요. 하마터면 나도 걸려들 뻔 했어요.” 박 행장의 말이다.

 

“거절하기 곤란한 사람을 통해 면담을 요청해 왔기에 어쩔 수 없이 한번 만났지요. 처음 얼굴을 대하면서 하는 첫마디가 ‘외환은행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꽤 젊군요’라는 것이었죠.

 

어쨌든 말하는 내용이 하도 엉뚱해서 정중히 거절했더니 날 더러 은행장이 뭘 그리 소심하냐는 식이었습니다.” 정 행장도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조흥은행과의 거래과정에 대해 임재수 행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하루는 반도지점장이 들어와 최근 들어 매일 20~30억원씩 예금을 해주는 새 고객이 있는데 행장이 꼭 한번 찾아가서 인사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빠서 송기태(宋基台) 상무를 대신 보냈지요. 그랬더니 상무 급은 만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 싶어 이들의 예금 실적을 챙겨봤더니 최고 700억원까지 올라가더군요. 은행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대단한 고객을 얻은 셈이지요. 그래 하는 수 없어 내가 직접 찾아갔습니다.”

 

이철희 씨의 이야기인즉, ‘내가 돈을 대고 있는 기업이 공영토건과 일신제강이다. 내 신용을 믿고 이들을 도와달라’는 것이었어요. 돌아와서 공영토건 측에 확인을 해 봤더니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사무실까지 있다고 해, 10~20억원 정도 당좌대출을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4월에 들어서면서 하루 이틀 결제가 늦어지고 연체가 생기는 등 낌새가 심상찮아 이철희가 살고 있는 집까지 담보로 챙겼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터져버렸던 것입니다.”

 

장 여인의 사채를 쓴 회사의 거래경위.

공영토건이나 일신제강 등은 자금사정이 매우 어려웠던 터라 견질 어음만 끊어주면 얼마든지 돈을 끌어 쓰라는 이들의 제의에 간단하게 걸려든다.

 

더욱이 높은데서 이들의 뒤를 봐 주는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판단되는 마당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막판에 걸려든 태양금속 관계자의 말.

 

“당시로서는 엄두도 못 내던 자동차부품의 수출주문을 받아 놓았는데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청와대 경제수석실을 통해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은 경로로 ‘젊고 유능한 기업인을 키우려는 분이 계신데, 대화산업이라는 곳으로 찾아가 보라’는 말을 듣고 가 봤지요. 마침 이철희의 방문이 빠끔히 열려 있었는데 모 단자사 사장이 이·장 앞에 서서 연신 굽신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을 만난 나는 잔뜩 긴장한 채 10억원이 급히 필요하다고 했더니 장 여인은 ‘그러지 말고 큰돈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소개해주는 대로 조흥은행 영업부장을 찾아갔더니 싹싹하기가 이를 데 없지 않습니까. 그 동안 아무리 사정을 해도 만나주지조차 않던 사람이 말이에요.”

 

그러나 이·장이 태양금속 측과 접촉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자신들의 사기행각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던 참이었다. 태양금속은 이·장이 빌려주겠다던 돈을 한 푼도 못 받은 상태에서 담보용으로 건네준 2장의 30억원짜리 견질어음이 교환에 돌려져 기절초풍을 하게 됐던 것이다.

 

그 동안 공영토건으로부터 받은 견질 어음 등으로 해오던 행각이 한계에 부딪히고 사정이 급해지자 태양금속의 어음까지 돌리게 된 것이다.

 

이·장사건은 결국 5공 출범 이후 정권적 차원에서도 최대의 치명타였다. 가뜩이나 허약한 정통성을 단 한방으로 부숴 버린 사건이었다. 그 동안은 집권과정이 군부 쿠데타였다는 점이 세론의 비판을 받는 주인이었으나, 이·장사건은 집권과정의 부당성뿐만 아니라 정권의 도덕성까지 실추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금융관행 어음과다교부사건

 

이 사건으로 은행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 있다면 이 사건 발생 후 부도발생 등으로 공영토건, 일신제강 등 관련업체가 부실화됨에 따라 부실채권이 생겼다. 이것도 이자손해만 조금보고 동아건설 계열사와 동부제강에 각각 넘겼다.

 

그러니까 사건의 핵심은 어음용지 과다교부가 문제다.

예를 들어 공영토건에 대하여 적정교부량은 5953장인데 조흥은행 덕수지점과 상업은행 광화문지점에서 합계 11만 1장이 나가 7048장이 과다 교부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임재수 조흥은행장의 국회에서의 참고인 답변을 들어보자.

 

“이 어음장이라 하는 것은 일종의 인쇄물입니다. 점포장이 자기가 가지고 자기가 판단해서 이것은 얼마든지 내주거나 거절할 수 있는 그런 것입니다.

은행장한테 와서 내달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사후에 이런 문제가 터지고 난 다음에 제가 지점장을 불러서 어떻게 된 것이냐 그랬더니 공영에서 어음장을 계속 과다하게 달라고 해서 거절을 하면 매달리다가 거절하면 갔다가 오전에 갔다가 오후에 다시 와서 또 어음장을 달라 그래서 그것이 해외건설업체이고….

그러니까 어음장 수요도 많아지겠고 현금결제가 안 되고 어음으로 결제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그래서 어음장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인정을 하고 점포장이 다소 과다하게 오전에 거절했다가 다시 와서 달라고 그러면 내주고 그런 적이 몇 번 있다고 그럽니다.”

 

변명 같은 답변이지만 사실 그렇다.

이 어음용지는 은행에서 조폐공사에 의뢰, 제조해서 실비만 받고 당좌거래처에게 팔았다. 요구하는 대로 주는 것이 아니고 거래실적을 보아 은행감독원에서 정해준 ‘어음용지교부기준’에 따라 고등수학같은 수식에 의해 산출해서 적정량의 어음용지만을 교부한다.

 

사채에 사용된 어음은 은행에 교환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채세계에서는 금기사항이다. 사채에 사용된 어음은 어음으로 맞교환된다. 필자가 사채시장을 정화시킬 목적으로 명동에 위치한 단자회사(종합금융회사)와 은행에 장기간 파견돼서 은행에 교부된 어음과 단자사가 보관한 어음을 샅샅이 추적했어도 한 건의 사채어음을 발견하지 못했다. 사채에 사용된 어음이 돌아오면 소지했던 자들의 신원이 노출되므로 철저하게 꼬리를 감춘다.

 

다시 말해서 이 사건은 은행 측에서 보면 공영토건, 일신제강, 태양금속에 과다 또는 부실여신취급이 아니고 간단히 말해 어음과다교부사건이다.

 

금융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관행이다. 은행이 어음용지를 인쇄해서 팔 이유도 없고, 거래기업은 사서 쓰지도 않는다. 기업체는 자신이 직접인쇄서 사용한다. 결국은 우리나라는 은행이 사채시장까지 책임을 지고 후견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지금도 이 관행은 시정되지 않고 있다. 잘못된 금융관행이 은행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금융기관 임직원의 혐의는 업무상배임만이 아니다. 수재죄가 경합되어 있다. 임재수 행장의 증언이다.

 

“하루는 이철희 씨한테서 점심식사를 하자는 연락이 왔기에 롯데호텔 ‘벤케이’라는 일식집엘 갔지요. 가보니 장 여인만 나와 있어요. 남편은 급한 일이 생겨 늦을 거라며 먼저 식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법 큰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주면서 ‘은행장이 돈 써야할 데가 많을 텐데 보태 쓰십시오’라는 거예요. 그제야 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는지를 눈치 챘지요.

 

어쨌든 나는 장 여인에게 ‘한국은행 출신들은 고지식할뿐 더러 은행장 판공비로도 충분하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더욱이 수백 억원의 예금을 우리 은행에 넣어주고 있는 대고객이신데 인사를 하면 오히려 제가 해야 하지 않습니까’라며 거절했어요.

 

그러나 장 여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여자를 상대로 돈 봉투를 갖고 이처럼 실랑이를 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해서 남편인 이철희 씨를 만나 돌려주기로 마음먹고 일단 받았습니다. 그리고 2주일 후에 이 씨와 연락이 닿아 직접 그 사람의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돌려줬지요. 검찰 수사과정에서 하도 뇌물 받아먹은 것을 실토하라기에 답답한 나머지 바로 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게 잘못이었어요. 뇌물을 먹고 나서 나중에 겁이 나서 돌려준 것이니 만큼 쓸데없는 소리 말라고 덮어씌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래서 임재수 행장에게는 다음과 같은 귀책이 돌아갔다.

임재수 은행장은 반도지점장, 남대문지점장, 덕수지점장 등과 공모하여 1981년 10월 12일부터 1982년 4월 27일 사이에 조흥은행 반도지점 및 영업부에서 당좌대출과 어음보증의 형식으로 일신제강에 389억원, 공영토건에 344억원을 각각 부정대출을 하였다.

 

1981년 11월말경 장영자로부터 일신제강 또는 공영토건에 대한 대출금회수가 불가능 또는 위험함에도 대출금을 원활히 하여 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1억 5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하였다.

 

한편 상업은행 공덕종 은행장은 1982년 2월 9일경부터 2월 22일까지 사이에 부실기업인 일신제강의 207억원 회사채발행을 지급보증하여 줌으로써 이 금액상당의 손해를 앞의 은행에 가하였다.

 

또한 1979년 12월 중순경부터 1982년 1월 4일경까지 사이에 일신제강 대표이사로부터 금융편의 청탁명목으로 5000만원을 수수하였다. 당시 공덕종 행장은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고 철저하게 부하직원을 비호하고 바람을 홀로 막아 ‘의리 있는 은행장’으로 칭송을 받았다.

 

1983년 3월 8일 3심 선고내용을 보자.

업무상배임 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흥은행 전 은행장 임재수에게는 징역 4년 추징금 1억 5100만원이 선고되고, 앞의 은행 전 영업부장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전반도지점장, 전 남대문지점장, 전 덕수지점장에게는 각각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리고 상업은행 전 은행장 공덕종에게는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4년, 추징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임재수 행장의 경우 장 여인으로부터 1억 5000만원을 뇌물을 받았다며 고등법원에까지 갔으나 무죄로 뒤집어졌고, 공덕종 상업은행장 역시 업무상배임부분은 무죄로 결말이 났었다. 죄없다는 확정판결은 나중 일이었으니 이들은 검찰발표라는 낙인 한방으로 간단히 속죄양 신세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업무상배임죄로 1년 6개월, 뇌물수재죄로 1년 6개월 등 모두 3년을 선고받았던 임 행장은 일단 대법원 상고를 통해 뇌물부분은 무죄로 한 뒤, 이내 업무상배임죄 부분도 재상고하려 했었으나 이미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고 났을 때였다.

 

장영자 사건 재발

 

1993년 10월부터 자금난에 시달리다 사채업자인 하정인(河貞仁) 씨를 속여 하 씨의 예금 30억원을 불법 인출하였고, 변칙어음거래로 서울소재 삼보신용금고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77억 5000만원을 대출 받아 가로채는 등 모두 175억원을 사취하였다는 것이다.

 

사건 내용은 이렇다.

동화은행 삼성동출장소 소장 장근복 씨는 장 여인을 통해 사채업자로부터 140억원의 거액 양도성예금증서(CD)매각을 통해 예금을 유치했다. 이때에 장 여인의 간청을 듣고는 사채업자의 실명확인절차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장 여인을 위해서 장 소장은 예금조성 대가로 유림상사가 발행한 50억원 짜리 어음에 불법지급보증도 하였으며, 또 입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CD를 선발매해 주었다.

 

서울은행 압구정지점에서 50억원의 CD를 장 씨 관련 인물에게 발매하면서 실명확인을 하지 않았다. 지점장 김득한 씨는 전 지점장 김팔선 씨가 하모 씨 명의 예금의 예금주가 장 씨라고 말해 도장도 없이 30억원을 인출해 줬다고 하지만 이 역시 CD예금조성의 미끼에 걸려든 결과라고 한다.

 

삼보신용금고 대표이사 정모 씨는 장 여인이 개설한 1억 2000만원의 수입부금 계좌에 장 씨 주변인물 5명의 명의를 빌리거나 몰래 사용해서 실명제를 위반했다. 또 동일인 여신한도도 초과했다. 이러한 사례는 사채세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은행 등 금융기관을 통해서 무통장, 무인감으로 거래하는 편의취급관행이 사건화된 것.

 

장 여인 어음부도사건과 관련하여 서울은행 은행장과 동화은행 은행장 등과 서울은행 한 상무(압구정지점 담당), 조상무(수신업무 담당), 동화은행의 이 상무(수신 담당) 등 모두 5명의 임원이 옷을 벗었다.

 

서울형사지법은 1994년 8월 22일 거액사기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장영자 피고인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죄 등을 적용,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장 여인은 이 형이 확정으로 1982년 사기사건의 잔여형기 5년을 포함, 10년을 복역한다. 장 여인은 지난 1983년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10년을 복역한 뒤 1992년 3월 가석방으로 출소했었는데 김영삼 정부가 제정시행한 금융실명제가 장 여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프로필] 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한은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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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영 前 은행감독원 검사역 stat1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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