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태풍 끝 찾아온 강(姜)바람, 국세청장에 닿다…제26대 강민수 국세청장 <上>

2024.07.30 09:41:56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오랫동안 칼을 갈아오셨죠.”

“그 자리 가려면, 날아온 돌 정도는 걷어찰 수 있어야 하죠.”

“겉으로야 허허 그러죠. 하지만 속은 절대로 좋은 사람만은 아니에요.”

 

꾹 다문 입, 흐트러짐 없는 눈매, 말 마디마디마다 단단히 묻어나오는 동남방언, 막힘 없는 답변, 때로는 말 대신 표정으로의 의사전달.

 


지난 7월 18일 22대 국회 첫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됐다. 그 첫 관문을 통과한 제26대 강민수 국세청장은 2년간 서울지방국세청장으로서, 그 이상의 기다림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국세청 본부, 국·과장 자리에서 이날을 위해 견디어 왔다. 국세청장으로 가는 길은 모두 순탄치 않았다. 지금의 얼굴을 갖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 갈 길 극히 일부를 짚어봤다.

 

◇ 고위공직자 목표로 한 전형적인 서울대생

 

강민수 국세청장은 1968년 경남 창원 출생이다. 1987년 동래고 졸업(63회) 후 1988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88학번).

 

서울대 경영학과는 기업 또는 공직, 아주 드문 경우 교수직 진출을 준비한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공직을 선택했다. 행정고시는 고위공무원으로 진출하는 핵심 통로다. 그중에서도 재경직은 수재 중 수재들이 도전한다고 알려진다.

 

1992년 2월 대학 졸업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다니면서 재경직 계열로 행정고시를 준비, 약 2년 만인 1993년 12월 행시 37회에 합격했다.

 

1994년 총무처에서 1년간 수습행정관 생활을 하면서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를 취득(1995년)했다. 석사논문 제출은 1995년 2월.

 

강민수 국세청장은 1995년 5월부터 18개월 21일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을 치렀다.

 

공익근무요원(4급 보충역)은 1994년 방위제도가 폐지되면서 들어온 제도다. 소위 있는 집 자녀들 비중이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행정고시 출신 국세청 고위직 중에서도 적지 않다. 겉으론 정상으로 보여도 속단해선 안 된다. 국가가 선천적 질환 등 신체적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경우다.

 

방위 생활을 마치고 1996년 제주세무서 총무과장으로 본격적인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안양세무서 소득세과장(1997년), 마산세무서 부가가치세 1과장(1998년)을 마친 후 국비유학(국외 훈련)으로 2년간 버밍엄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 운명의 수레바퀴, 프랑스 파리

 

강민수 국세청장이 국세청 중앙무대로 들어온 것은 2001년 8월부터였다. 그가 배치받은 국세청 본부 국제조세관리관실은 외환거래 전면자유화 조치에 따라 새로 만든 조직이었다.

 

국세청은 높아진 역외탈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국세청 법인납세국, 조사국 내 국제거래 기능을 일부 떼고,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고, 국세청 내 젊고 창창한 자원들을 국제조세관리관실으로 영입했다. 강민수 국세청장도 그 원년 멤버 중 한 명이며, 국제세원관리담당관 계장으로 배치됐다. 당연하지만 유창한 외국어 실력도 갖춘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4년 4개월 후.

 

2006년 1월 2일 강민수 청장은 국제조세관리관 국제세원관리담당관실에서 4급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승진 순번은 행정고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의 장이다. 서기관 승진까지는 별 차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이란 집중될수록 아주 미세한 차이로 극심한 변동을 일으킨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하필 강민수 국세청장과 같이 서기관에 승진한 사람 중 셋은 두고두고 강민수 국세청장과 부딪히게 된다.

 

김명준 전 서울지방국세청장(행시 37회),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국세청 차장, 행시 38회), 노정석 전 부산지방국세청장(행시 38회)이 그 주인공이었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국세청 조사기획과, 임광현 의원은 국세청 혁신기획관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국세청 재산세과에서 각각 승진했다. 같은 시기 국세청 법인세과 계장을 하던 이준오 전 중부지방국세청장(행시 37회)도 승진한다.

 

우연히도 이들은 모두 1급 승진하지만, 그 경로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서기관 승진 후 강민수 국세청장은 2007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본부로 발령받았다.

 

OECD 발령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IT버블(2000~2003)이 잠시 스치고 지나갔지만, 애플, 구글 등 디지털 기업과 다국적 기업들은 고속 인터넷 보급, 전자상거래, 개인 휴대전화기의 일상화,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주의 확산, 중국에 의한 대량 공급 등으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번영 뒤편에는 늘 그림자가 드리운다. 역외탈세였다.

 

기업들은 조세회피처 국가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각국 조세조약을 악용해 편법으로 세금을 회피했다. 역외탈세 의혹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구글과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이었으나, 미국 정부는 수수방관하는 모양새였다.

 

이에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OECD를 통해 비회원국인 제3국가들을 끼워 넣어 국제적 역외탈세 대응 체계를 만들었다. BEPS 프로젝트였다(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소득이전을 통한 세원잠식).

 

이 당시 한국 국세청에서 파견한 인물이 강민수 국세청장,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이었는데 강민수 국세청장은 국제탈세담당(ATP Unit)에서,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한국의 입장을 벱스에 녹여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2007~2009년까지 3년간 해외 주재관 생활을 마친 후 2010년 1월 용인세무서장으로 초임세무서장 업무를 맡게 된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서기관 승진과 더불어 2007년 북전주세무서장을 1년간 지낸 후 2008년 OECD로 갔기에 2010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강민수 국세청장 인생에서 첫 균열을 만들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 첫 번째 고비, 균열과 격차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은 권력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이현동 국세청장 시대(2010.8~2013.3)는 냉혹한 시대였다. 누가 더 권력에 가까이에 있느냐에 따라 대구·경북·영남 출신이라도 내쳐지던 시기였다.

 

강민수 국세청장이 OECD 파견·용산세무서장을 맡았던 시기, 행시 38회 후배들은 날아올랐다.

 

임광현 민주당 의원은 2007년 속초세무서장 발령 이후 6개월 만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행정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서울국세청 국제조사3과장 역임 후 2009년 1월 백용호 국세청장 마지막 보좌관을 맡았다.

 

백용호 국세청장 보좌관 자격으로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2010년 8월 취임)의 인사청문회 준비를 맡았으며, 후임 보좌관으로 노정석 서기관이 부임할 때까지 약 4개월간 이현동 국세청장을 보좌했다. 청와대-정책보좌관 다음 자리(2011년 1월)는 국세청 조사국 조사기획과장이었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서기관 승진 후 노무현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발령받았으며, 2009년 7월 북인천세무서장으로 이동했다. 2010년 6월 서울 내 대기업 세무조사 기획부서인 서울국세청 조사1국 1과장에 배치된 후 6개월 후인 2011년 1월 이현동 국세청장 정책보좌관으로 임명되는 파격 행보를 걸었다.

 

청와대 파견 후 국세청장 정책보좌관이라는 승진 꽃길 중 꽃길이었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도 2010년 7월 OECD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배치된 곳은 국세청 기획조정관 산하 정책조정담당관이었다. 정책조정담당관은 기획조정관(2급 고위공무원)의 수석 과장 자리로 부이사관 승진이 보장된 자리였다. 서기관이 본부 초임 과장으로 수석 과장을 받는 것은 대단한 파격이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그런 파격을 누리지 못했다.

 

2010년 용산세무서장 직을 마친 후 2011년 1월 배치받은 곳은 기획조정관 차석 과장인 기획재정담당관이었다. 인사 관행상 정책조정담당관이 먼저 3급 부이사관에 승진한 후에야 승진 순번을 받을 수 있는데, 어쩌면 3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었다. 기획조정관에서 1년 동안 두 명의 부이사관을 배출하게 되면, 다른 실·국으로부터 형평성이 없다고 반발할 수 있었다.

 

강민수 국세청장이 본부 과장을 맡은 지 1년 7개월 후 2012년 7~8월 부이사관 승진 인사가 발표됐다.

 

2012년 7월 김명준 국세청 정책조정담당관, 노정석 국세청 법인세과장, 1개월 후인 2012년 8월 임광현 국세청 조사국 조사기획과장이 나란히 3급 부이사관에 승진했다.

 

노정석 전 부산지방청장은 이현동 국세청장 정책보좌관을 마친 후 국세청 법인세 과장직을 맡고 있었다. 명백히 국세청장 보좌관을 한 것에 대한 대가였다.

 

임광현 의원은 국세청 조사국 조사기획과장이란 핵심 요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상관인 국세청 조사국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임환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훗날 박근혜 정부 제21대 국세청장에 오름과 동시에 국세청장 역사상 최장 임기를 누렸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기획조정관 산하 기획재정담당관에서 계속 밀려나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2012년 7월 인사에서 이현동 국세청장을 가까이 보좌하는 국세청 운영지원과장에 발령받았다. 당시 국세청 운영지원과장은 지금과 달리 국세청 인사라는 핵심 기능을 쥔 승진 명당이었다. 그리고 강민수 국세청장은 반발 늦었지만 2012년 12월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다음 中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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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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