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철의 유럽 관세 이야기] 관세외교의 중심 WCO

2025.12.01 21:50:16

 

(조세금융신문=임현철 주EU 관세관) 이번편에서는 EU와 함께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세계관세기구(WCO)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필자는 현재 '주벨기에 EU대사관'겸 'NATO 대표부'에서 관세관의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타이틀로 가지고 있는데 그게 바로 세계관세기구(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 관세관이다.

 

아마 세계무역기구(WTO: World Trade Organization)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지만, WCO에 대해서는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세계관세기구는 전세계 관세당국이 모여 관세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관세외교에 있어서 UN의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관세가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으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관세라 하면 수입품에 부과되는 세금뿐 아니라 관세액을 얼마로 정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관세평가, 제품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품목분류, 국경관리, 통관 등 매우 다양하며 이를 통틀어 관세제도라 부른다.

 

이러한 관세제도는 국제무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관세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놓으면 국제무역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핸드폰에 대해 어떤 나라는 전화기로 분류해 전화기에 배정된 관세를 매기고 어떤 나라는 사진기라고 고집해 사진기에 맞는 관세를 부과한다면 무역의 촉진은 커녕 국가간 다툼만 늘어날 것이다. 비단 관세부과뿐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통관을 까다롭게 만들어 정상적인 수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곳이 WCO다. WCO는 다양한 관세제도를 표준화하고 공통된 시스템을 구축하여 전세계 무역을 촉진시킬 방법을 마련하고 이를 전세계에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당연히 WCO에서는 회원국간 치열한 관세외교가 펼쳐진다. 만일 자국의 관세제도가 전세계에서 사용되는 표준적인 제도로 채택된다면 국가의 위상제고는 물론 세계 관세제도를 선도할수 있게 되어 그 이익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WCO에서는 소규모 회의를 제외한다 하더라도 일년에 수십번의 대규모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된다. 회의 기간에는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관세전문가들로 인해 북새통을 이룬다. 양자회의 다자회의 등 치열한 관세외교의 장이 펼쳐진다.

 

한국도 WCO 주요 회원국중 하나이기 때문에 중요한 회의때 마다 대표단이 파견된다. WCO 관세관으로 필자는 회의에 앞서 의제를 파악하고 대표단의 일원으로 때로는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해 우리의 입장을 대변한다.

 

WCO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는 크게 두부류로 나뉘는 데 첫째는 WCO 사무국이다. UN 사무총장처럼 WCO도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이 존재한다.

 

바로 이 사무총장이 WCO 사무국의 수장이며 그 밑으로 사무차장(Vice Secretary General)과 두명의 국장(Derector)이 WCO 사무국의 최고위층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을 도와 약 150여명의 사무국 직원들이 WCO 사무국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어 전 회원국에 배포하는 한편, 번역 및 통역을 지원하며 WCO에서 채택된 관세제도를 전세계에 전파하고 교육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WCO를 이끌어나가는 두 번째 부류는 각국을 대표하는 관세관들이다. WCO에는 60여개국에서 파견한 관세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회원국 대표로 WCO에 자국의 입장을 전달하며, WCO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각종 회의에서 대표를 맡아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WCO 사무국 도 관세관들의 동향에 관심이 많다.

 

왜냐하면 이들이 WCO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에 이들의 반응이 어떠냐에 따라 WCO의 미래 방향설정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도국에서 파견나온 관세관들은 대부분 자국 관세당국에서 최상위계급에 근무했던 사람들이다.

 

일부 관세관중에는 관세관을 마치고 자국에 돌아가서 관세청장이나 차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개도국과는 사정이 좀 다르지만 선진국에서 파견나온 관세관들도 엘리트 직원들이 파견되기 때문에 관세관들의 반응에 WCO 사무국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관세관들은 정보수집 차원에서 종종 모임을 가진다. 재미있는 것은 전체가 다모여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관세관들끼리 모임을 가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가치있고 유용한 정보는 이러한 모임에서 나온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하는 회의를 앞두면 모임이 갑자기 늘어나고 교환되는 정보의 양도 엄청나게 증가한다. 따라서 여기서 배제되면 관세관으로써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모임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정보를 교환한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초면에 내가 어느 어느 나라의 관세관입네하고 소개해봤자 말짱 도루묵이다. 먼저 다가가 대화를 시도하고 지속적인 접촉을 통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과 그것도 외국인에게 모국어도 아닌 영어로 접촉을 시도하고 정보를 교환할정도로 신뢰를 쌓는다는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다.

 

필자도 지금은 관세관중 소위 ‘인싸’에 속하지만 초창기에는 꽤나 마음고생을 했다. 좌충우돌하면서 필자가 경험만 바로는 사람들의 마음은 동양이던 서양이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자주 만나고 사소한 것이라도 약속을 지키고 성의를 보이면 믿음이 생기는 법이다.

 

주역에 나오는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라는 글귀처럼 처음에는 어려웠지만(窮), 변화해보고자 노력했고(變), 노력한 결과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계속되어(久), 필자에게 지금도 여전히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관세관의 역할은 정보수집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수집과 네트워크 구축은 영업 마인드만 갖추면 어느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각국 대표로 회의장에서 발언과 질의를 하고 토론하는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부담이다. WCO 회의에서는 영어와 불어가 주로 사용된다. 불어의 경우 동시통역사의 정확한 발음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수 있지만 문제는 영어다.

 

WCO 회의장에서는 전세계인의 모든 영어 발음과 악센트를 들을 수 있다. 미국, 영국, 호주와 같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은 큰 부담이 없겠지만 그 이외 국가에서 온 대표단들은 다양한 영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WCO에서 열리는 회의는 자국의 이익이 걸린 관세외교의 최전선이기 때문에 회의장에서 나오는 모든 발언에 집중해야 한다. 보통 아침 9시반부터 저녁 6시까지 회의가 계속되는 데 수십명에서 때로는 수백명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영어나 불어로 진행되는 발언에 집중하다보면 파김치가 되기 마련이다.

 

필자도 종종 수석대표로 회의에 참석해서 발언을 하곤하는데 사전에 발언내용, 예상질의에 대한 답변, 토론내용을 모두 영어로 준비하는 것도 쉬운일은 아니지만 회의시간에 타국 대표단의 다양한 발언을 듣고 이에 대해 영어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더 힘들다.

 

하지만 나의 행동하나하나가 대한민국의 이미지이며 나의 노력여하에 따라 우리국익을 더 지킬수있다는 책임감과 보람으로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오늘도 관세관들을 만나고 WCO 사무국을 찾아가고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외교라는 활동이 그저 식사하면서 상대방 듣기 좋은 이야기나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곤 하지만, 실상은 총만 안 들었다뿐이지 국가의 이익이 부딪치는 최전선에서 명예와 애국심으로 무장한 많은 공무원들이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프로필] 임현철 관세관

•법학박사(국제법, 서울시립대) 

•제47회 행정고시

•외교통상부 2등 서기관

•주불가리아 대사관 영사(경제, 통상, 영사업무)

•관세청 국제협력과장

•국경감시과장

•김포공항세관장

•(현) EU 대표부 관세관

 

• 저서 : '관세를 알면 EU 시장이 보인다'(박영사)

• 논문 : EU PNR 제도 연구(박사학위 논문)

• 논문 : EU 국경제도(쉥겐 협정)의 두기둥: 통합국경관리와 프론텍스

• 논문 : EU 국경관리 제도 운용을 위한  EU의 입법적 역할 연구

• 논문 : EU 관세법 위반행위에 대한 패널티 규정 부조화(Non-Harmonisation)와 EU의 대응

• 논문 : 트럼프 행정부 관세정책에 대한 EU 대응조치 연구 - EU 권리행사규칙과 경제적강압보호규칙(ACI) 중심으로

• 논문 :  'EU 신이민난민법에 대한 고찰-통합국경관리와 난민정책의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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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철 주EU 관세관 tf@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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