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만화방창(萬化方暢)계절이 따뜻하여 만물이 소생하니
이러함이 만화방창(萬化方暢) 아니면 그 무엇이겠는가!”
여수 밤바다
조용하고 아늑한 작은 항구였던 여수가 언제부턴가 밤이 없는 도시로 탈바꿈이 되었다. 어느 도시가 짧은 시간 내에 이처럼 변화무쌍해진 곳이 있을까? 여수를 대표하는 음식 게장백반으로 든든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여수 밤거리로 나선다.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돌산대교며 거북선대교, 그리고 여수항 인근 전체가 화려한 조명으로 밤을 밝히고 있다. 말 그대로 불야성, 예전에는 이른 저녁이면 벌써 파장 분위기였던 수산시장도 불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수산시장을 둘러보고 낭만포차거리는 스쳐 지나간다. 발 디딜 팀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이브하듯 한적한 곳을 찾아 봄바람 일렁이는 여수 밤 풍경을 돌아본다. 요란함에 휩쓸리지 않아도 마음은 어느덧 동요되어 콧노래 흥얼거리며 발걸음조차 사뿐하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여수 밤거리, 밤풍경의 모습이다.
해를 향해 자리 잡은 향일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여수 돌산도 끝자락에 있는 향일암을 최고로 손꼽는다. 향일암은 말 그대로 해를 향해 자리 잡은 암자다. 그 옛날 이 절을 세운 선사는 분명 웅장하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대오각성을 하기 위해 이곳에 암자를 세웠을 거다. 풍광이 너무 빼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보니 오늘날에는 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에 절에서는 작심한 듯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대시설들을 경내 곳곳에 설치해 놓았다. 보기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겠지만 수행을 중시하는 사람들 눈에는 저절로 눈살 찌푸리게끔 한다.
돌산도, 돌산 갓김치
금오도가 방풍나물 주산지로 섬 전체가 방풍나물 천지였듯 돌산도는 섬 전체가 갓 천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탈밭이나 벼농사 시작 전 논이나 갓들로 넘쳐난다. 갓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식물이다. 그 가운데 특히 돌산 갓은 솜털이 없이 매끈하며 연하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돌산 갓김치를 고를 때는 강한 양념으로 버무린 것보다는 심심해 보일 정도로 대충 버무린듯한 김치를 고르는 게 좋다고 한다. 그래야 돌산 갓만의 특유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산에서 자생한 품종은 아니지만 돌산 갓은 이곳에서 재배되며 돌산의 기후와 토양에 고착화된 식물이다. 향일암 가는 굽이길 한적한 곳에 덩그러니 있는 갓김치 가게, 들어서니 대뜸 밥을 퍼서 갓김치를 쭉 찢어 맛보라고 내놓는다.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맛, 돌산의 봄맛이다.
동백 꽃섬, 오동도
오동도를 빼놓고 여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섬에 오동나무가 많아 오동도라 부르게 되었다는데, 지금은 오동나무보다 동백나무가 더 많은 군락을 이룬 섬이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일제시대 만들어진 방파제로 인해 십여 분이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섬 아닌 섬이다.
작은 섬이지만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울창한 숲과 기암절벽 해안 등 섬 전체가 절경이다. 봄소식을 가장 빨리 알린다는 동백꽃이 섬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섬을 돌아서 처음 출발했던 제자리로 나오게 된다. 연인이 되었든 좋은 인연의 사람들과 오동도를 걷는다는 것은 분명 아름답고 기억에 오래 담아둘 만한 여행이 될 게 분명하다.
저녁놀 내린 낙안읍성
석양이 붉은 빛을 띌 무렵 낙안읍성에 도착한다.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조선 초기에 조성한 낙안읍성은 요즘으로 따지자면 계획적으로 건설한 계획도시라 할 수 있다. 건설 초기에는 흙으로 성곽을 쌓았으나 이후 석축으로 다시 조성을 하였다고 한다.
성 안에는 현재에도 사람이 살고 있으며 유적들도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곳 역시 관광지화가 되면서 아늑하고 정감 어렸던, 불과 몇 년 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여기저기서 호객하는 소리가 귓전을 불편하게 한다.
그래도 호객소리 요란한 입구를 벗어나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적당히 쌓아 올린 담장 너머로 남의 집 살림살이를 엿보기도 한다. 담벼락 따라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선명하다. 봄 소리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까지 마을을 서성거려 본다. 돌아서 나오는 길, 성 밖에서 쪼그려 앉아 봄나물을 다듬던 할머니에게서 고들빼기나물 한 봉지를 샀다. 인심 좋은 할머니께서는 떨이라며 통째로 한아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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