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제주도의 맛, 고사리 갈치조림- 서귀포 두가시의 부엌

2024.09.03 07:34:11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제주의 봄은 유채만 있는 게 아니다. 유채가 한창일 무렵 숲으로, 산으로 들불처럼 자라오르는 고사리도 있다. 때마침 이 무렵에 잦은 비가 내리는데 고사리 생장에 큰 도움이 되기에 고사리 장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비가 지나고 나면 고사리는 제주 전역에서 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자라오른다. 제주 사람들은 자신만이 아는 고사리밭 하나쯤은 꿰차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밭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니, 제주 사람들에게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릴 만큼 귀하고 소중한 나물임이 틀림없다.

 

제주 고사리에는 먹고사리와 백고사리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먹고사리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숲속 습지에서 자라기 때문에 나라에 진상까지 했을 만큼 최상품으로 친다. 백고사리는 일반적으로 흔한 육지 고사리와 비슷하다.

 

 

제주에서는 일찍 고사리가 널리 알려진 탓에 고사리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고 있다.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몸국뿐만 아니라 고사리육개장 등 제주 토속음식에 고사리가 들어간다. 최근 들어서는 고사리철이 되면 고사리파스타를 비롯하여 고사리비빔밥, 고사리지짐 등 다양한 고사리 요리를 선보이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주도 갈 때마다 들르는 식당이 있다. 갈치조림에 제주 고사리를 넣어 내놓는 ‘두가시의 부엌’이라는 곳이다. 두가시는 ‘부부’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즉, 부부가 단일메뉴로 운영하는 전문점이란 뜻이겠다. 이곳의 주메뉴인 갈치조림에는 제주 고사리가 들어간다. 사용하는 갈치 역시 제주해역에서 잡히는 생물 갈치를 쓰며 곁들여 고사리와 큼지막한 제주 무가 들어간다.

 

 

 

비주얼은 빨갛게 매워 보이나 아이들도 먹을 수 있을 만큼 자극적이지 않다. 특히 부드러운 갈치살과 탄력있는 식감의 고사리 조합은 말 그대로 환상적인 맛이다. 흰쌀밥 두어 공기쯤은 눈 깜짝할 사이 비워지고 만다. 정성스레 나오는 반찬을 비롯해 든든하게 잘 먹은 한 끼 집밥 느낌이랄까. 두가시의 부엌은 서귀포시 강정동 한적한 곳에 있다.

 

서귀포 송악산에서 용머리해안까지

 

제주도 전체가 관광지이듯 서귀포시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딱히 어느 한 곳 명승지를 손꼽기 어렵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널리 알려진 명승지보다는 사계 해변과 용머리해안이 있는 안덕면 일대를 좋아한다. 마라도행 여객선이 오가는 송악산 부근 역시 경치 좋고 걷기 좋은 곳이다.

 

 

특히 사계 해변에서 보이는 삼방산과 용머리해안의 풍경은 용이 바다로 들어가는 풍경이라지만 내 눈에는 한 마리 갈라파고스 거북이 목 길게 내밀고 바다를 향해 걷는 형상으로 보인다. 거북 등 껍질 같은 산방산에는 해무가 걸려 신비롭고 스산한 기운마저 감도는데 바다로 향하는 거북은 왠지 고단해 보인다.

 

 

해안 길을 걷는 것이 지루해지면 사계리 마을 안쪽을 기웃거려 보자. 삼방산을 비롯하여 주변이 온통 관광지화되어 있으나 사계리 마을은 세월을 비껴간 듯 요란스럽지 않으며 전혀 관광지답지 않다. 군데군데 펜션이며 최근에 들어선 식당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오래된 2차선 길과 길을 따라 나지막이 늘어선 담벼락들, 그리고 돌담으로 둘러서 쌓인 채마밭 풍경은 그저 고즈넉하기만 하다.

 

걷는 길에 마주친 오래된 집 앞에서 발길을 멈춰섰다. 누군가에게는 한때 따뜻한 보금자리였을, 어쩜 지금도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는 안식처일 수도 있는 낡고 오래된 집, 그저 정겹다. 내 살던 시골집은 이미 오래전 허물어져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는데, 사계마을에서 만난 오래되어 낡은 집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늑하다.

 

 

 

 

걷다가 다리가 뻐근해지면 바다 저편 형제섬이 내려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해산물 노점에 들러 소주잔 기울이는 것도 사계리 해변에서 즐겨볼 만한 놀음이다. 도장을 찍듯 다니던 관광 일정 잠시 내려놓고 이렇듯 하루쯤은 제주 바다를 배경 삼아 망중한을 즐겨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고사리 갈치조림은 두가시의 부엌에서 맛보았으니 허기지면 인근 육개장집에 들러 제주고사리의 참 맛을 한번 더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현)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현)스튜디오 팝콘 대표

•(현)마실투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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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호 여행작가 ceo@anitou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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