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일부 동물은 임신해도 예정일보다 출산을 수개월까지 지연시키는 능력이 있다. 인간에게는 없는 능력이다. 대신 인간은 출산 자체를 차단할 수 있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출산을 꺼리는 것은 먹고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맬더스)하지만, 감소할 때도 기하급수적(한국)이다.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의 나라, 한국은 고민이 깊다. 주변 선진국 중국과 일본도 저출산 걱정이 많고, 빠르게 성장하는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구촌 인구는 불과 11년 만에 70억 명에서 80억 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고민은 자기 나라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다.
한때 세계화를 추진했던 신자유주의가 종주국 미국의 쇠락으로 다시 신냉전의 광풍을 몰고온다. 각국이 이웃나라들과 함께 당면한 현안들을 해결하면서 새로운 냉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저출산 문제가 첫 공공외교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베트남과 일본,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주요 4국이 모여 저출산 문제해결을 모색하는 공공외교 플랫폼을 만들어 진정성 있게 추진, 엄혹한 신냉전의 냉기를 막아야 한다. 나무만 봐선 원인 파악이 어렵다. 나무와 숲을 함께 보며 해법을 모색할 때다. <편집자주>
못 깨어날 가능성 높은 ‘사회적’ 동면…인간은 정말 ‘고등동물’인가?
곰과 캥거루, 왈라비, 일부 노루와 오소리, 물개, 박쥐는 수정란이 자궁내벽에 붙는 시기를 지연시킬 수 있다. 임신했지만 먹이가 풍부하고 태아가 최적의 생존 조건이 될 때까지 출산을 늦출 수 있는 동물들이다.
이른바 ‘지연형 착상(delayed implantation)’이다. 먹이가 가장 풍족할 때 교미, 임신을 하고 갓 태어날 새끼의 생존확률이 극대화 되는 최적의 날씨일 때 출산한다. 온대지방 기준, 통상 6월(먹이)에 교미와 임신을, 4월(기후)에 출산한다. 수정란은 그 사이에 수개월 간 착상 없이 생존한다.
인간은 안타깝게도 이런 ‘지연형 착상’ 능력이 없다. 대신 ‘피임’을 한다. 물론 인간도 ‘먹이’와 ‘기후’ 조건이 좋을 때까지 출산을 늦출 수 있다. ‘지연형 착상’ 방식이 아닌 출산 자체를 차단하는 식이다. 동물계 종(species)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측면을 볼 때, ‘지연형 착상’을 못하는데 출산 자체를 차단할 수 있는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고등동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한지, 사뭇 혼란스러워지는 대목이다.
한때(!) 인간도 다른 동물들처럼 일정한 연령대가 되면 짝짓기를 하고 자녀를 출산했었다. 인간도 재생산 본능을 지닌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이 본능은 너무나 당연한 거라서 누구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부모는 적령기에 이른 자녀에게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고, 자녀는 이런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했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환경이 변했다. 자연환경 변화보다는 사회환경, 인문환경이 바뀐 탓이 크다. 바야흐로 인간은 출산 차단 능력을 본격 발휘하고 있다.
‘지연형 착상’을 하는 곰은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에 활동량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동면(winter sleep)을 한다. 비슷한 이치로, 인간은 먹이와 주거지가 부족한 기간에 ‘재생산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사회적’ 동면을 한다. 곰은 자연의 섭리로 봄이 되면 동면에서 깨어난다. 한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 반면 인간은 재생산 본능을 인위적으로 제거, ‘사회적’ 동면에서 영영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종의 재생산을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류가 이미 ‘사회적’ 동면에 들기 시작했다. 영영 깨어나지 못하면 인류는 결국 멸종에 이르는 것인가? 전쟁이나 괴질, 기후재앙 없이도?
고단한 벌새의 무의미한 경쟁…퇴화된 본능 되찾으려 탈출
1972년 중국 원저우에서 태어난 샹뱌오(项飙, 항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사회인류학 연구소장은 “현대 젊은이들은 소비의 재원인 돈(money)에서 해방되기 위해 다른 욕구를 모두 억누른 채 죽어라 일만 한다”고 했다.
“폭풍에 맞선다(项飙)”는 뜻의 샹뱌오 소장 이름처럼, 오늘날 젊은이들 다수는 쉼 없는 날갯짓을 하며 공중에 떠 있는(부유, 浮遊) 벌새처럼 살아간다. 샹뱌오 소장은 이런 처절한 몸짓에 대해 “기껏 시스템의 부속이 되려고 극한 경쟁을 자처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평범한 다수가 이미 초격차로 앞서가는 제3의 대상을 따라잡으려고 아둥바둥대는 경쟁으로도 읽힌다. 획일화된 인생 목표가 아니었다면, 그 제3의 초격차 선두를 따라 갈 이유도 없는데. 샹뱌오 소장은 이를 ‘안으로 돌돌 말린(내권, 内卷) 인생’이라고 정의한다.
샹뱌오 소장의 세번째 화두는 ‘윤(潤)’이다. 인류는 1990년대 초부터 2020년까지 대략 30년간 지속된 탈냉전시대 이후 지구촌을 휩쓴 코로나19로 국경 봉쇄를 경험했다. 유아는 부모형제와 주고 받는 오감을 총동원해서 언어와 인지체계를 갖춰간다. 그런데 유아기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자랐다. 심각한 인지 부진을 피할 수 없었다. 인간이 이렇게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실감케 해준 뼈아픈 경험이다.
‘부유’와 ‘내권’에 찌든 사회에서 국가 봉쇄까지 경험한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상하이 봉쇄를 경험했던 중국에서도 ‘윤학(潤學)’이 유행했다. ‘삶이 윤택해지는 학문’으로 해석되지만 실상 ‘탈출(Exodus)’을 의미하는 신조어였다. 공교롭게 ‘윤(潤)’의 중국어 발음표시는 ‘룬(run)’으로 영어 ‘런(run)’과 같다.
‘부유’와 ‘내권’, ‘윤’은 ‘지연형 착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인간의 ‘사회적’ 동면과 밀접하다. 마치 평생 고단한 날갯짓을 멈추지 못하고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공간. 이 공간에 머문다면 도저히 ‘사회적 동면’에서 깨어날 수 없다는 절박하고 오묘한 동물 본능이 발동한 것으로도 읽힌다.
닫힌 공간을 박차고 새로운 공간에서 ‘부유’와 ‘내권’으로부터 해방을 꾀한다. 성공은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고등동물의 잘난 ‘전유물’인 출산 차단 능력 대신 최적의 교미‧임신‧출산을 위한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섰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다.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퇴화된 생물학적 ‘지연형 착상’ 능력을 사회영역에서나마 되찾은 것이다.
미시에서 거시로, 일국에서 세계로…신자유주의의 지구화
경제학적으로, 소득이 일정할 때 식구 수가 늘어나는 건 작은 시련이다. 일정한 소득 수준에서 식구가 늘면 당초 자신의 소비 일부를 늘어난 식구 몫으로 할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 생산력 발전사를 보면 더 큰 매머드 고깃덩어리, 더 많은 곡식을 얻는 데 기여하는 노동력이 필요할 때만 출산을 해서 식구를 늘렸던 이유다.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서 필요한 것 이상을 생산할 수 있게 된 자본주의 시대가 되면서 전에 없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합리성은 ‘영적 결핍’, 곧 “인격을 가진 인간의 가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무시되는 현상(인간소외)으로 이어진다.
출판인이자 한국 인문학의 대가인 김규항 칼럼니스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성은 효율성, 좀 더 정확하게는 경제적 효율성의 수단이기 때문에, 합리적 삶의 추구는 영적 결핍을 낳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적 삶이란 자본의 증식 운동 메커니즘에 나를 효율적으로 욱여넣는 삶, 영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교환하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샹뱌오 소장은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탈소통’이 잔혹화(britalize)와 탈인간화(dehumanize), 도덕화(moralize)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규칙대로 제때 배달‧지불‧처리하지 않으면 거래상대방이 눈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오로지 자본주의적 합리성뿐이다.
자본가끼리는 임금이 단지 노동자 생존 수준을 넘어서지 않도록 긴밀히 협력한다. 초경쟁의 표상을 만들어 노동자들이 벌새처럼 ‘부유’하며 ‘내권’의 무한경쟁을 반복하도록 유도한다.
한 국가내에서 구현된 ‘부유’와 ‘내권’은 지구촌 차원으로 확장된다. 탐욕과 소비, 불평등, 지정학, 군산복합체, 우민화를 위한 교육‧미디어 정책은 시장자본주의, 정확히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너무 익숙한 장치들이다. 절대 패권국은 자신들만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나머지 지구인(Global South)들의 자율의지를 빼앗고 곤경에 처하게 한다. 국가 자원의 ‘부유’와 ‘내권’을 강요한다.
자신들의 모델과 잣대를 ‘숭고한 가치’라고 강변하면서, ‘규칙 기반으로’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동맹(ally)을 구축한다. 이 동맹은 반드시 제3자와 맞서는 나쁜 작당이다. 하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은폐한다.
샹뱌오 소장은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정부를 세계패권구조에서 도덕률의 수호자로 만든다”며 “영국과 미국처럼, 국제사회의 개입이 군사화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가까운 곳의 사람을 자세히 보라…자본주의 해독할 해법 찾을 것
샹뱌오 소장은 사회의 ‘잔혹화’와 ‘도덕화’를 떨쳐낼 화두로 ‘부근(附近, nearby)’을 꺼냈다. 멀리 있는 강대국들의 지정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 누군가를 ‘악마화’ 하는 식의 진영론적 접근에서 벗어나려면, 주변부터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모두를 받아들였으니, 외부도 없고 경계도 없다”는 취지의 중국 외교철학을 집약한 ‘천하무외(天下無外)’의 정신을 아래로부터 실천하는 ‘공동체 인민 교육 모델’을 제시했다. 자본주의가 인민을 욱여넣는 ‘물질주의’와 ‘초경쟁’, ‘잔혹화’와 ‘탈인간화’, ‘도덕화’로부터 벗어나려면, 모든 지도자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크고 작은 관계에 진심을 갖고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개입의 성공사례도 제시했다. 30년간 같은 곳에서 일해온 재래시장 사람들이 그동안 서로의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지냈다. 시장 점포, 노점은 간판도 상호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모든 점포와 노점에서 구입한 식재료를 빠짐 없이 넣고 죽을 끓여 나눠 먹는 실험이었다.
모든 점포, 노점마다 점주의 이름과 연락처를 도표로 만들어 모두에게 공유했다. 며칠 뒤 죽을 먹으러 모여든 시장 상인들은 저절로 다른 상인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게 됐다. 불과 며칠 전에는 수십 년간 얼굴만 알던 사람들이다.
샹뱌오 소장은 이런 ‘부근’을 확대하면 ‘탈소통’ 늪에 빠진 공동체와 사회가 복구되고, 급기야 지구촌 전체가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통이 잘 되면, 사람들은 더이상 뒤처지지 않으려고 끝나지 않는 날갯짓(부유)을 할 필요가 없다. 동료, 친구와 초격차 경쟁자의 잣대와 표상을 따라잡으려고 의미없는 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자신 안으로 돌돌 말린(내권) 삶에서 탈피, 이성과 만나 가족을 꾸리고 인생을 즐길 길이 열린다. 시종 인간을 고갈시켜온 자본주의의 본질이 이렇게 드러난다. 전화번호나 계좌번호 대신 비로소 인간의 얼굴과 이름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거래관계, 종속관계 대신 인간관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성찰부터, 원인부터…저출산이 쏘아올린 작은공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구독자 14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마크 맨슨은 다른 표현으로 샹뱌오 소장의 통찰을 재현했다.
맨슨은 “한국인은 위험한 지평선에서 벗어나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한국인들의 깊은 우울증과 외로움”을 거론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유교 문화의 나쁜 점,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대화했다고 꼬집었다. 체면과 선입견이라는 유교의 나쁜 점을 극대화하지만, 가족 및 사회와 친밀감은 내팽겨쳤다고 지적했다.
한국인들이 “자본주의 최악의 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만 빠져있다”고 혹평했다. 그는 “정신적 웰빙의 가장 큰 부분이 자기 삶의 자율성과 통제성, 즉 내가 어떠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인데 한국 문화에서는 그게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인이 없다 보니 자율성이 떨어지는 것 또한 스트레스”라고 덧붙였다.
정책 측면에서 한국 저출산의 핵심 원인은 단연 수도권 일자리 집중이다. 그런데 해법은 완전 생뚱맞다. 인천광역시는 시에서 태어난 아기가 18세가 될 때까지 1억원을 준다. 충북 영동군은 역내 출산자에게 1억 2000만원을 준다. 이러면 경기도 부천 사람이 인천으로 이사를 간다. 영동군 인접 충남 금산과 전북 무주, 경북 김천 사람들이 영동으로 이사를 간다. 인천과 영동의 주거비가 오른다. 1억원, 1억 2000만원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변화시키는 것은 인구밀도, 더 필요한 것은 아파트다.
정책을 막 던지면 문제가 해결되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인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2022년 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선험적 판단이나 외국 제도 벤치마크를 통해 긍정적 효과가 예상되는 프로그램을 실시한 후, 그에 대한 예산 지출을 성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었다.
한국의 대표적 뉴스 검색 관문(Portal)인 네이버에서 ‘저출산’이라는 열쇳말로 검색해 보면, 1993년부터 관련 저출산 뉴스가 나온다. 30년 동안 저출산 문제가 국가정책 의제에 올랐지만, 합계출산율은 2013년과 2014년을 제외하고 모두 하락했다.
한국이 지구촌 출산율 꼴찌일 때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정책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확 던지기 전에 근본 원인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지구촌을 보면 인구급증이 걱정
여성의 출산 여부는 자유롭게 선택돼야 한다. 출산이 행복의 조건이 아닌 상황에서 강행하는 출산장려책은 여성억압정책일 수 있다. 출산이 행복을 보장하는 공동체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한국이 초저출산 고민이라도 지구 전체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구촌 인구는 되레 폭증하고 있다. 지구촌 절반 이상의 나라들의 합계출산율은 2.1명 미만이지만, 전세계 합계출산율은 여전히 2‧3명 정도로 높다.
게다가 70억 명대에서 80억 명대로 증가한 기간이 불과 11년이다. 아프리카, 일부 아시아에서 인구가 급증했다. 2023년 말 기준 지구촌 인구는 80억 4531만 1447명으로 집계됐다. 2022년 세계 인구가 79억 7510만 5156명이었다. 전년대비 증가율이 0.88%로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가뿐히 압도했다.
국경을 벗어나 숲(지구촌 전체)을 보자면,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닌 인구 불균형이고, 불평등이다.
주형환 신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취임일성으로 “취업‧주거‧양육 불안을 덜어주고 지나친 경쟁 압력과 고비용을 타개할 구조적 대책, 이민‧가족‧입양‧워라밸에 대한 전반적 인식전환까지 대대적 변화”라고 약속했다.
이민(emigration)이 주 위원장의 열쇳말에 포함돼 있어 이채롭다. 실제 이민을 통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물론 유럽과 미국은 이민자 문제로 엄청나게 많은 갈등과 비용을 치렀다. 이민정책으로 저출산을 극복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출산율에 대한 걱정과 논란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자신들의 문화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인종차별주의’ 측면이 감지된다. 인구 자체가 충분치 않은 게 아니라, 자기 종족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11년 만에 10억 명이 늘어난 지구촌과 출산율 세계 최저인 한국은 극명한 논리적 긴장을 조성한다.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모든 나라가 이민자를 원주민들처럼 처우하면 이론적으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된다. 자국민 전체와 이민자들에게 “인종주의자는 이 나라에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아시아 주요 4국들의 저출산 고민이 시작됐다
2024년 현재 합계출산율 2.1명 미만인 나라들은 대개 선진국들이다. 사회구성원들의 건강 관리 수준이 높고 정치가 안정돼 있으며, 경제성장세가 안정적일수록 인구가 더 적은 경향이 있다. 한국은 지난 2018년 합계출산율이 0.98명으로 1명 선이 무너졌다. 2022년 기준 0.778 명, 2023년에는 0.6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일본도 ‘인구절벽’ 가속화로 최근 일본 자위대 임기제 대원 채용도 어렵게 됐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저출산이 가속화, 2040년에는 18세 인구가 80만 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도 혼인율 감소→출산율 저하→인구 감소의 악순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2022년 말 현재 중국 인구는 14억 967만 명인데, 전년 대비 208만 명이나 감소했다. 아이가 사라져 오는 2035년까지 190만 명의 선생님들이 일자리를 잃을 전망이다.
인구 1억 명 초과에 합계출산율도 2명 선을 유지하는 베트남도 외의로 10년 전부터 출산율 감소를 걱정해왔다고 한다. 경제활동인구(15~64세)를 반영하는 황금인구비율이 정점을 지나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걱정이다. 특히 호치민 등 남부 지역과 하노이 등 주요 대도시 지역 합계출산율이 1.4명까지 떨어진 불균형으로, 또 다른 정책 목표인 도시화를 망설여야 할 지경이다.
지난 2023년 12월 16일 기준 아시아 인구는 47억 6775만 311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59.22%를 차지한다.
지구촌 시야에서 보자면 몇몇 못사는 나라 인구는 늘어나고 다른 잘 사는 나라는 줄어든다. 반면 한 나라만 보자면, 잘 사는 집이 자녀를 더 많이 낳고 못사는 가구는 자녀출산이 위축된다. 아시아 주요 4개국의 저출산 걱정도 사실 점점 부유해지면서 시작됐다.
베트남‧일본‧중국‧한국 등 네 나라의 잘사는 집은 청소나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을 외주화(outsourcing)한다. 네 나라 모두 자국민 가사노동자를 수출한 경험이 있지만, 어느덧 부유해지면서 가사서비스 분야 임금이 올라 덜 부유한 나라로부터 가사노동자를 수입해야 할 처지가 됐다. 국가가 나서서 사업서비스, 가사서비스 인력의 수출을 잘 준비해온 필리핀의 가사노동자들이 네 나라에 본격 취업하고 있다.
4국 저출산 공조, 공공외교 플랫폼 구축…신냉전 폐해 줄인다
외교‧안보 관점에서 신냉전(New Cold War)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공급망 재편 등을 앞세워 자국의 단일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다극주의(Multipolarism)가 세계사적 필연임을 강조하며, 미국의 단일패권에 맞서고 있다.
이런 외교‧안보환경에서 아시아 네 나라의 선택은 무엇인가. 오랜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바람대로 자국의 주요 교역국인 중국‧러시아를 등질 셈인가.
지구촌 전체 인구의 60%에 육박하는 브릭스(BRICS) 회원국이 지난해 11개로 늘었다. 아시아에는 중국과 인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포함된다. 인구 1위(인도)와 2위(중국)가, 상위 산유국 중 세 나라가 각각 브릭스 회원국이다. 지구촌에 절대적인 에너지와 곡물 공급원인 브릭스는 서방 중심의 G7, G20을 대체하려고 한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전쟁과 초국적 금융자본만 살찌우는 세계질서를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든 지구촌의 정황과 세계사의 흐름은 미국이 추구하는 신냉전을 거부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은 물론 전통적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도 사실 마찬가지다. 아시아 4국은 결국 외교‧안보적 목적을 위해서라도 경제수단을 활용하는 ‘지경학(geo-economics)’을 능동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아시아 지경학에서 저출산 문제는 중요한 주제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역내 인구의 이동이 자유롭고 안전한 아시아를 구현, 리더십과 소프트파워를 보여줘야 한다. 실질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는 한국과 일본도 이런 아시아 역내 인구이동(취업이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각종 장치를 더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다.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 유럽에서도 일자리를 찾아 베트남‧중국‧일본‧한국을 찾아올 수 있다. 이들 모두에게 안전하고 자유로우며 평등한 아시아 선진국임을 보여줘야 한다.
자국의 저출산 문제에만 갇힌 시야를 과감히 벗어야 한다. 이런 정신을 ‘인류공영’으로 표현하든 ‘사해동포주의’로 칭하든, ‘홍익인간’으로 부르든, 결국 다 같은 말이다.
베트남‧중국‧일본‧한국은 이런 정신으로 새롭게 공공외교 채널을 열어야 한다. 4개국 인구소멸 지방자치단체와 저출산 전문가, 미래정치인들이 모여 그 공공외교 채널을 시급히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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