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감사인연합회 “주기적 지정제 없는 기업 밸류업은 본말전도”

2024.04.15 10:32:38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명분으로 감사인 주기적 지정제 축소를 검토하는 것과 관련 본말전도가 우려된다는 전문가 집단의 우려가 제기됐다.

 

김광윤 한국감사인연합회 회장(아주대 명예교수)이 최근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라도 주기적 지정제를 고수해야 한다’라는 성명서를 내고 지배구조의 개선과 회계투명성 향상 중 어느 하나를 취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킨다면 진정 기업의 밸류업을 극대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 두 가지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모두를 조화롭게 추구하여 서로의 상승작용을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정규모 이상 기업은 외부감사인으로부터 회계장부를 부풀리거나 축소했는지 감사(監査)를 받는다.

 


그러나 국내기업 경영진들은 외부감사인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이용해 기업 입맛에만 맞는 감사를 하도록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우조선해양 등 끊임없이 발생하는 대형 회계조작범죄가 그 사례다.

 

이러한 회계조작 범죄의 횡행은 한국기업의 대외신인도를 심각하게 낮추어 해외투자자가 한국을 꺼리게 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다.

 

과거 국회는 이를 막기 위해 일정기간은 정부가 지정해주는 외부감사인을 의무사용할 것을 법제화했지만(주기적 지정제), 현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주기적 지정제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열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대주주 일가가 타 주주의 이익과 반하여 독단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부감사인을 통한 회계감사(회계투명성) 역시 대주주 일가가 타 주주나 다른 투자자들의 눈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에 회계투명성 확보 없는 지배구조 개선은 필터 없는 정수기가 될 우려가 있다.

 

김광윤 회장은 한국 회계학의 대원로이자 산증인으로 회계학과 세법 전문가다. 1972년 제6회 한국공인회계사 시험을 거친 회계사이며, 아주대 경영대 교수, 아주대 명예교수를 거쳤으며, 재정경제부 세제발전심의회 위원,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 금융위원회(증권선물위원회) 감리위원, 회계학회장, 세무학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2014년부터 한국감사인연합회 회장 및 공동대표직을 맡아 국내 회계감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아래는 성명문 전문.

 

 

<성명서-2차>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라도 주기적 지정제를 고수해야 한다

 

과거 대형 회계부정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금융감독당국에서는 갖가지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으면서 이번만큼은 ‘특단의 대책’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회계부정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회계부정사건은 잊을만하면 또다시 습관처럼 터져 나오곤 했고 그래서 상당기간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19년부터 ‘회계개혁’의 완결판처럼 야심차게 도입한 제도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이다. 이 제도는 회계투명성을 향상시키는데 우리사회에 매우 효과적일 것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기반으로 6년간 자유선임 후 3년간 정부지정하는 방식으로 타협적으로 설계되어 외부감사법에 반영된 제도이고 그 정책적 효과에 대한 사회적 검증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주기적 지정제는 주권상장기업, 금융회사 및 소유·경영 미분리 비상장대기업의 외부감사에 처음 도입된 이후 점차 확대되어 관련법 개정을 통하여 공익법인과 사립대학의 외부감사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뼈아팠던 회계부정사건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가자 기업계 일각에서는 주기적 지정제를 일종의 ‘불요불급한 규제’로 몰아가며 제도가 도입되고 3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감사보수의 상승이 외국에 비해 낮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부담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이 제도의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는 그만큼 이 제도가 감사계약의 ‘갑’ 지위가 피감기업으로부터 감사인으로 바뀌고 감사가 철저하게 수행됨으로써 기업이 껄끄러워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법리적으로 외부감사계약은 단순한 사적계약이 아니라 제3투자자보호라는 부대조건이 있는 쌍방계약형태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계약당사자간 유착관계의 발생가능성을 배제하고 덤핑마케팅 없이 정부가 객관적으로 지정하는 감사인이 엄격하게 감사함으로써 회계투명성 향상에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원래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최근 기업의 밸류업을 지원하기 위한 2차 ‘당근’으로 외부감사인 선임‧감독시스템을 잘 갖춘 지배구조 우수기업은 주기적 지정을 면제해주는 방안이 금융당국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의 밸류업을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이고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회계투명성의 향상’이라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구동성으로 제시하는 처방이다.

 

물론 지배구조의 개선 그 자체는 해당 기업의 밸류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밸류업을 정책목표로 한다면서 특정 기업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면 그 인센티브로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를 면제해주겠다는 발상은, 회계투명성 향상의 중요한 버팀목인 주기적 지정제가 약화되어 시장 전체에 아주 나쁜 시그널을 주게 되고 오히려 ‘시장 전체의 밸류다운’을 초래하게 된다는 주객전도의 사실을 간과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초 회계개혁 강화를 위해 현행 외부감사법상 주기적 지정제의 예외를 (1) 과거 6년간 재무제표감리를 받았으나 회계위반지적이 없었던 경우와, (2) 자가신청에 의해 6년간 감리받지 않았으나 과거 3년간 감사에서 내부회계관리제도상 중요한 취약점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차후 3년간 감사인을 변경하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한 뒤 감리결과 회계위반이 발견되지 아니한 경우로 좁게 제한하고 있다(법 제11조 제3항, 동법 시행령 제15조 제5항).

 

이런 상황에 추가적으로 어떤 기업이 주기적 지정제의 면제를 기대하여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라면 시장은 그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결코 밸류업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금융당국은 주기적 지정제를 시행하는 이유가 ‘사적자치의 원칙에 맡겨둘 경우 감사인을 독립적으로 선임할 수 없는 기업환경’ 때문이므로 밸류업을 위해 그러한 기업환경을 개선한다면 주기적 지정을 면제해주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에는 필수적인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견강부회라는 중대 결함이 숨어 있다.

 

먼저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과 ‘감사인의 독립성’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회계투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감사인의 독립성이며,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은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을 위한 기업환경’을 고려할 때 기업환경을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으로 구분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한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 향상은 내부환경의 관점이고, 주기적 지정제를 통한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 향상은 외부환경의 관점이다. 그런데 감사인의 독립성 향상의 효과 측면에서 볼 때 전자가 후자를 결코 따라올 수 없으므로 전자가 후자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배구조를 개선한다고 해서 주기적 지정을 면제해준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손실거래’가 될 수밖에 없으며, 감사인의 독립성 확보 측면에서, 즉 회계투명성 측면에서 득보다 실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유선임제하에서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이 아무리 높아진다고 해도 감사인 지정제만큼 강력하게 감사인의 독립성을 확보해 줄 수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되기 오래전부터 특정한 기업에 대해서는 ‘감사인 직권지정제’가 먼저 도입된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현재의 사외이사 제도하에서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이 이미 실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등)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며, 감사위원회 제도도 사외이사 제도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감사위원회 등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외부감사인 선임‧감독시스템을 잘 갖추어 감사인의 독립성을 높인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주기적 지정제하에서 6년의 자유선임기간 동안 기업이 감사인 선임의 독립성을 일정 부분 높이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므로 지배구조의 개선을 권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금융당국은 지배구조의 개선과 회계투명성 향상 중 어느 하나를 취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시킨다면 진정 기업의 밸류업을 극대화할 수 없으며, 이들 두 가지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라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모두를 조화롭게 추구하여 서로의 상승작용을 이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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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주 기자 ksj@tf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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